출근길 아침 엘리베이터 안이 싱글벙글이다. 사무실 안 공기도 들떠 있다. 일 많다고 투덜거리던 대리님도, 입버릇처럼 퇴사한다던 선임도 애사심 가득차는 오늘은 성과급 지급날이다.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는 업계 탑 성과급을 지급했다. 계약 연봉에 40%를 연 초에 입금했다. 갓도체인 삼성전자나, 하이닉스한테 비길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큰 금액이다. 쿵쿵쿵 동료들 심장 뛰는 소리가 합쳐진 BPM소리가 들린다. 사수는 한 번이라도 성과급을 맛보면 품었던 사표를 다시 캐비넷에 넣어둔다고 말했다. 오전부터 사무실이 어수선하다.
인턴은 해당사항 없다. 부러움에 손가락만 쪽쪽 빨았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오던 팀장이 성과급 받으면 뭐 하고 싶냐고 묻는다. 미천한 인턴에게도 성과급을 윤허해주냐고 묻자 연봉과 비례해서 들어오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많이는 아니지만 적당히 들어올 거라면서. 쿵쿵쿵 BPM소리가 한 명더 추가됐다.
그런데 우리 팀장은 헷갈리는 일이 많다. 혹시 내가 인턴인 걸 까먹으신 게 아닐까. 그 정도로 경우 없진 않으신데. 인사팀에 물어보면 확실하지만 서로 민망할까봐 꺼려진다.
일전에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다. 회사는 복지 차원으로 임직원에게 전화 영어를 지원했는데, 혹시 인턴에게도 해당 되는거냐고 인사팀에 물었다가 서로 곤란해졌다. 마치 그 송구한결정을 본인이 내렸다는 듯 동갑이었던 총무 담당 사원은 "죄송하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간곡한 메일을 "인턴에겐 지급되지 않습니다"로 마무리했다.
반신반의했다. 성과급이 지급될 거 같지 않았다. 그런데 팀장님이 허파에 호스를 꽂아 푸슉 바람을 넣었다. 작은 설렘과 함께 40%면 얼마인지 계산했다. 금액은 넉넉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 번 생긴 작은 기대감은 무럭무럭 상상력을 자양분 삼아 커갔다. 메종키츠네 가디건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성과급이 지급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든 건 여지껏 회사가 인턴에게 야박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으면서다. 명절에도 정규직과 같은 급으로 선물을 고르게 했다. 정규직이 명절 상여금으로 100만 원을 받으면 인턴은 20만 원이라도 챙겨줬다. 그리 생각하면 팀장 말도 일리 있다.
두시가 됐다. 약속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작년엔 몇 시에 입금됐는지 확인하며 입금 시간을 가늠했다. 여러 통계와, 증언과, 집단 지성에 의하면 두시에서 세시가 중론이다.
정확히 두시부터 네시까지 미팅이 있었다. 성과급 날이라고 있던 미팅을 취소할 수는 없지. 그런 식으로 일했다간 다음 성과급보다 퇴직금이 빠르다.
타 부서 미팅을 팀장, 그리고 사수와 같이 참석했다. 국가별 공급 우선순위를 정하는 미팅이었다. 나도 고사리 손으로 열심히 보태서 만든 자료다.
세시가 됐다. 10분 휴식 뒤 재개하자고 했다.다들 핸드폰을 열었다. 먼저 확인한 다른 부서 동료가 나지막이 "들어왔네"를 말했다. 좋은 뉴스를 처음 전할 때의 들뜬 목소리였다. 다들 핸드폰을 열어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 시큰둥하게, 혹은 머쓱하게 다시 뒤집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얼마 들어왔는지 확인해봤어요?"라고 물어왔다.핸드폰을 열었다. 조마조마하며 은행사 어플을 켰다. 아뿔싸. 거기엔 아무 입금 내역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팀장이 너무 큰 소리로 물었다. 사람들 시선이 모두 내게 쏟아져 있었다. 나는 팀장과 눈을 마주한 채 여러 시선을 견뎌내며 아주 작은 폭으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다시 한번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저었다.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다. 잘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모두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인턴이라 성과급이 안 들어온 나도, 그걸 잘못 물어본 팀장도,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부서 사람들까지. 모두가 성과급 패싱 현장에공범이 되었다.
나는 인턴이란 신분을 불평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감사히 다녔다. 인턴이라 성과급을 못 받아도 서운하지 않았다. 마땅히 그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인턴이란 이유로 남들이 내 눈치를 볼 때면 인턴이란 직함이 미웠다.
팀장은 "내가 인사팀에 물어보고 올게요"라면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팀장이 말한다고 규정이 바뀔 리 없다. 그저 이 민망한 순간을 벗어나려는 요량 같았다.
밖을 뛰쳐나갔던 팀장은 5분도 안 돼서 돌아왔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 씨가 알고 있는 게 맞다고, 인턴은 따로 지급되는 규정이 없다고. 하지만 팀장으로서 지난해 노고를 치한다고. 고생 많았다고.
봉투 안에는 10만 원이 있었다. 오만 원 권 한 장과 만 원 권 다섯 장이 들어있던 걸로 보아 현금이 부족했던 것 같다. 더 있었으면 더 주셨을까.
마음이 복잡했다. 무안을 준 팀장에 대한 원망. 나름 성의를 보인 것에 대한 고마움. 인턴이란 직급에 대한 설움. 동정하는 타 부서 사람들에 대한 겸연쩍음. 아무튼 인턴 중엔 가장 많은 성과급을 받았다고 기분 좋아하면 될 일이었을까.
오랜 터널 끝에 결국 다른 회사에서 정규직이 된 후 사진 속 천진난만한 하트를 보고 있자니, 당시 팀장님도 내 모습도 둘 다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