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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Sep 29. 2022

강도를 기다리며

지방 근무가 힘든 이유

나는 일요일 저녁마다 강도를 기다린다.


두 번째 회사는 충청도였다. 본가인 인천과는 130KM 정도 거리다. 통근할 수 없어서 회사 근처로 전셋집을 구했다. 평일엔 충청도에서 지내다가 금요일 저녁이면 수많은 연어 떼와 함께 북으로 상경했다.  


첫 정규직 회사였다. 합격했을 땐 정말이지 1년간 서러웠던 인턴 생활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제 당당한 조직 구성원에 안착했다는 것에 들떴다. 그러니 근무지는 하등 문제없었다. 오로지 산업과 직무가 우선순위였고, 그 두 개는 꼭 맞춰 입사했다.  


그때는 내가 지방 근무를 힘들어할 줄 몰랐지. 오히려 입사 전엔 지방 근무에 대한 판타지도 가졌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맞이하는 퇴근 후 시간. 친한 선후배들과 보내는 저녁 자리. 자기 계발 시간까지. 취뽀 기념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피로하던 참이라 "충청도, 한적하니 오히려 좋아"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도시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 마주한 문제는 뻔하디 뻔한 "스타벅스 부재"였다.   


스타벅스가 없다는 건 단지 스타벅스 커피를 못 마신다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자몽허니블랙티를 좋아하지만 그거 좀 참을 수 있다.

 브랜드는 많은 걸 상징한다. 스타벅스 매장이 없다는 건 스타벅스를 소비할 만큼 충분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경제적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방에도 아메리카노에 4,500원 쓸 부자는 많다. 그보단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스타벅스까지 차로 30분 걸린다는 건, 나랑 비슷한 취향, 문화적 배경, 세대, 고민거리, 소비관을 가진 도시와 딱 그만큼 이격 된 기분이다.


로드킬은 지방 근무를 싫어하는 두 번째 이유다. 운이 좋게 아직까지 운전 중에 동물을 마주한 적은 없다. 하지만 사체를 보는 일은 많다. 개체도 다양하다. 큰 동물, 작은 동물부터 죽은 지 한 참된 동물들, 방금 막 사고 나서 아직 피가 안 굳은 사체까지.


인천과 서울에선 로드킬 된 사체를 본 적 없다. 간단한 숫자 문제로도 보인다. 지방은 동물이 많고, 수도권은 동물이 적으니까. 동물이 많은 곳에, 로드킬이 더 많다는 비례식처럼.


하지만 오래도록 방치된 사체는 절대식과 무관하다. 만약 올림픽대로 한복판에 로드킬 당한 고라니가 있다면 그것이 치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 한 시간? 아무리 길어도 반나절? 올림픽 대로는 제로백이 10초인 차들도 꼼짝달싹 못하고 꽉 막히는 도로다. 그렇게 바쁘고 비싼 도로에서, 죽은 고라니를 위한 차선은 없다.   


이와 달리 충청도 고속도로 위 사체는 오랫동안 방치된다. 하루 이틀은 고사하고 일주일도 걸린다. 나한테는 그것이 민첩성 문제로 보인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얼마나 재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문제 같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 지방 소멸과 같은 거대 담론을 제기하는 건 아니다. 단지 방치된 사체를 보는 일과, 언제라도 로드킬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지방 근무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외에도 지방 근무엔 많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있다. 간단히 친구들과 자주 축구할 수 없다는 것.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 치안이 좋지 못하다는 것. 월세나 전세를 살면서 비용이 더 나간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견디기 힘든 건 직장 동료가 이따금씩 내뱉는 냉소적인 자기 비하다. "만약 내가 더 좋은 대학을 나왔다면, 더 영어를 잘했다면, 더 나은 자격증이 있다면, 그랬다면 이 회사나, 촌 동네에 오지 않았겠지"란 말의 자가 회사 동료라면, 그것을 온전한 자기 비하라고 간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완전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력감 든다.


일요일 저녁이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충청도로 내려온다. 반대편 서울로 올라가는 길엔 차가 많지만, 내려가는 길은 아우토반이다.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재테크 유튜브를 켜 둔다. 주식으로 돈 많이 벌었다면 내려가지 않았을 길이었음을 생각한다. 저녁 10시가 되고, 자취방에 도착한다. 이 도시에, 이 공간에 복귀했다는 사실과, 출근하게 될 내일을 생각하면 단전에서 한숨이 차오른다.


이 동네는 치안이 안 좋다고 했다. 방문을 열었을 때, 어질러진 방과 뒤집힌 책상들, 마구 열려 있는 서랍장을 상상한다. 비웠던 주말 간 집이 도둑맞았다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탄 뒤 인천으로 복귀할 것이다. 집을 강도 맞았다는 건 충분한 퇴사 사유가 될 테니까. 누군가 왜 퇴사했냐고 묻거든 "치안이 너무 안 좋더라, 글쎄 집이 다 도둑을 맞았어"라면 후속 질문이 없을 테니까.


띠디디딕 비밀번호를 누른다. 문을 연다. 집은 금요일날 떠난 상태와 꼭 같이 정돈돼 있다. 치안이 안 좋은 동네에서 안전하다는 행운이, 문득 불행처럼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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