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메
퇴사가 펀하고 쿨하고 섹시해 보였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반대다. 오히려 퇴사는 쉽다. 매일매일 출근이 어려운 거지. 정년 퇴직은 제일 어려운 거고.
그 유명한 직장인 3년 차라고 하나. 작년 말부터 올해 초 나는 퇴사병을 앓았다. 그건 마치 아이패드 병처럼 결국 아이패드를 사야만 완치되는 것같이 오로지 퇴사로서 그 병과 작별 가능할 줄 알았다. 사무실 자리에 앉아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퇴사를 꿈꿨다.
특별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회사 밖에서 돈벌이할 재주도 없었다. 문과생 사무직이 그렇지 뭐. 작은 파티룸을 운영 중이지만 그것은 월급에 보탬이 되기보단 부양해야 할 것에 가까웠다. 월급에 세전, 세후가 있다면 내겐 세후, 그리고 파티룸 월세 후라는 공제액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니 파티룸은 퇴사에 여당보단 야당이었다.
나는 회사 안에서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퇴사를 소망했다. 그게 무슨 분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튼 유망주" 같았다. 아무 노래나 일단 틀으라는 그 지코의 노래처럼. 퇴사만 한다면야 아무 분야나 내가 다 잘할 것만 같았다. 고깃집을 하더라도 누구보다 고기를 잘 굽고, 스냅 작가가 되어서도 멋진 포즈를 뽑아내고. 뭐가 됐든 회사 밖에선 "열정"을 가지고 "잘"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것이 회사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니까.
알고리즘은 눈치도 빨라서 브런치면 브런치에 계속 "퇴사"라는 키워드가 나왔고,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도 비슷한 콘텐츠가 쏟아졌다. 마치 퇴사 포르노와 같이.
결국 퇴사하고 싶다는 그 욕망과 밀도는 계속해서 커져만 가다 절정에 이른 어느 2월에, 가까운 팀 동료에게 퇴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동료는 어쩐지 요즘 그래 보였다면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고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퇴근한 후 한두 시간 정도 뒤에 정말 김 빠지듯 카톡을 보내 말을 주워 담았다. 내가 했던 말을 잊어달라고. 아직은 조금 더 다녀보겠다고.
내가 퇴사를 번복한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막연한 자신감이 구체적인 불안으로 바뀌는 걸 체감했다. "모아둔 돈이 많지도 않은데 당장의 지출을 어떻게 하지?" "이젠 그러면 9-6시에 무엇을 해보지?"라는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면서 나는 그것이 즐겁기보단 무섭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게 퇴사 밖의 삶이란 그저 가능성의 상태였을 때에만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퇴사를 번복하고, 지금은 하루하루 열심히 회사를 다닌다. 다음번 퇴사는 번복하는 추함을 방지하기 위해 퇴근 후 시간에 더 부지런이다. 영어를 공부하고, 이직도 준비한다. 상반기에 면접을 본 곳도 몇 군데 있다.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글쓰기, 그것도 내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몰두하고 싶어 아등바등 한다. 스냅사진 팀에도 들어가서 웨딩 사진도 배우는 중이다. 그러니까 퇴사를 하긴 할 건데 그것이 이직이 될지, 아예 회사원을 그만두는 것일지는 유보중에 있고, 그 둘 중 무엇이 됐더라도 조금만 더 무르익으면 결정하자는 보수적인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쯤 되니, 무작정 퇴사하겠다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은 많이 사라지고, 걱정이 앞서더라. 그런 콘텐츠들이 더 이상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지도 않고. 괜한 오지랖이라 상대방이 듣게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혼자 생각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다음 달을 마지막으로 정년 퇴직을 맞이한다. 아버지는 회사를 30년 다니면서 한 번도 퇴사를 고민한 적 없었을까. 어쩌면 내가 파티룸 월세에 가졌던 부담과 책임감의 몇 곱절을, 아버지는 두 자식을 생각할 때마다 느꼈을까. 나는 그 무게가 가늠도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