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삶 중에 하루, 하루 중에 삶

싱글맨

by 청년실격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 맨을 처음 접한 건, 동성애를 다룬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에서였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하루를 그렸지만 인생 전체를 말하는 소설”이라는 평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소설은 조지라는 한 남자의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를 좇지만, 그의 시선과 내면은 우리가 ‘살아낸다’고 믿는 감정들의 총합이었다. 그건 슬픔, 유머, 무력감, 소외, 성적 욕망,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으려는 노력이었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 깊은 점은, 1960년대에 쓰였음에도 동성애를 다룬 방식이 놀라울 만큼 세련됐다는 것이다. 조지와 짐의 관계는 자극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지는 배우자를 잃은 모든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일상을 견디고, 남은 것들을 회복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이 부분에서 성적 정체성보다 더 보편적인 ‘상실’과 ‘존재의 고독’이 중심에 선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조지라는 인물의 완성도다. 그는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다잡지만, 내면에서는 계속 질문하고 흔들린다. 지적인 동시에 육체적인 인물이고, 상실에 익숙해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연결되길 원한다. 이 복합적인 캐릭터 덕분에, 조지는 단지 ‘동성애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보인다.


그리고 책의 제목 "싱글 맨"은 단지 ‘홀로 된 남자’라는 뜻만은 아니다. 사회 안에서 ‘단독자’로 존재한다는 감각, 즉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역할만으로만 읽히는 고립된 개인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조지는 싱글, 즉 결혼하지 않은 남자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 분리된 사람이다.


이 책의 분명한 한계도 있다. 서사적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는 플롯보다는 내면의 흐름, 정신적 독백, 의식의 흐름에 가까워, 소설보다는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순간도 있고, 끝까지 끌고 가기에 지루하다고 느낄 독자도 있을 것이다.


특히 중반 이후 샬롯과의 대화나 케니와의 교류 장면은 서사의 힘을 단단하게 끌고 가기보다, 분위기와 정서 중심으로 풀어내며 독자의 집중력이 잠시 느슨해질 여지를 남긴다.


과연 지금 출간돼도 세련된 소설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특정 시대의 성소수자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인간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하루가 고통스럽든, 덤덤하든, 미세한 감정선들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안에서 공감할 수 있다.


오히려 오늘날 출간되었다면, ‘LGBTQ+ 정체성’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보편성"에 집중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더 큰 찬사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아래와 같은 질문을 나눌 수 있을 거 같다.


1) 조지는 왜 하루를 살아내려 했을까?
— 그는 끝까지 왜 루틴을 지키며,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을까?


2) ‘싱글 맨’이라는 제목은 조지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 단순히 짐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 읽히는가?


3) 조지가 죽음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 그는 죽음을 기다리는가, 받아들이는가, 또는 극복하려 했는가?


4) 만약 이 책이 지금 출간됐다면 어떤 평을 받았을까?
— 오늘날의 사회와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5) 당신의 인생에서 ‘하루로 말할 수 있는 날’이 있다면 언제인가?
— 어떤 기준으로 그 하루를 선택할 것인가?


이셔우드는 말한다. “조지는 영웅이다.” 그 말에 동의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삶을 ‘버티지 않고’ 살아내려 했고, 그 하루 안에서 자신만의 윤리와 감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태도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더 나은 이야기를 가질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