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벼르고 벼르던, 사피엔스를 드디어 읽었다. 서점에서 항상 보던 책이다. 사실 이번이 첫 번째 시도는 아니다. 2020년쯤 읽다가 반 정도를 읽다가 그쳤다. 책은 무척 재밌었으나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다시 읽을 수 있었고, 정말 즐겁게 읽었다. 책에 대해서 요약해 보겠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을 다룬다. 인간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언어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복잡한 사회를 구축하게 된다.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 허구를 믿고 공유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화와 종교, 공동체와 국가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집단적 상상은 수많은 개인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고, 그 결과 사피엔스는 다른 인류 종들을 압도하며 지구의 지배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2부는 농업혁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일반적으로 인류의 진보로 여겨지는 농업혁명은, 하라리의 시각에서 보면 ‘덫’에 가까운 사건이다. 인간은 유목 생활을 버리고 정착하면서 밀과 같은 곡물을 대량 재배하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더 긴 노동 시간과 열악한 삶의 질을 감수해야 했다. 더욱이 인구가 급증하며 계층화된 사회가 형성되고, 이는 불평등과 억압의 씨앗이 되었다. 즉,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곡물에 의해 통제당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2부가 가장 흥미로웠다. 유발 하라리는 밀의 입장에서 이것을 조명하면서 역사상 최고 사기극이라고 표현한다.
3부에서는 인류의 통합 과정을 조명한다. 이질적인 문명과 문화가 서로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인류는 점차 하나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그 중심에는 화폐, 제국주의, 그리고 보편 종교가 있었다. 돈은 낯선 이들 간의 신뢰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제국은 수많은 민족과 언어를 통합했으며, 종교는 가치와 도덕이라는 공통 언어를 제공했다. 하라리는 이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하나다’는 인식으로 나아갔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마지막 4부는 과학혁명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약 500년 전부터 시작된 이 혁명은 인간이 ‘나는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무지를 인정하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축적해 나간 결과, 인류는 기술, 의학, 경제, 정치 등 전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하라리는 이 모든 발전이 인간의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불안해졌고, 인간이 만든 기술은 이제 인간 자체를 넘어서는 존재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과학혁명은 인간의 지평을 넓혔지만, 동시에 인간 이후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정말 두껍지만, 꼭 한 번은 일독을 권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로 "개안"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사피엔스들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피엔스는 인류의 기원을 다룬 역사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로 읽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삶의 방식, 사회 구조, 가치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묻는 철학서에 가까웠다. 역사를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이 세계는 왜 이런 형태를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신뢰하고 있는 것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내가 믿고 있는 게 허구가 아니고 사실인 것일까.
이런 걸 묻고 의심하게 만드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명의 독자는 데카르트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