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고개를 숙이는 쪽으로 서 보았을 때

같은 공간, 다른 역할

by 청년실격

수요일 점심에 팀 회식으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뷔페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 주 토요일, 나는 같은 장소에 본식 촬영을 하러 다시 들어갔다.


사흘 차이였다.


같은 건물, 같은 로비, 같은 엘리베이터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다. 수요일엔 돈을 쓰러 온 사람이다. 같은 말로 대접받는 사람.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뷔페는 1인당 17만 원이다. 내 돈으로는 갈 일이 없다. 그날 우리 팀이 그곳에 간 이유도 다들 비밀이야 아저씨처럼 미식가이기 때문은 아니다. 연말이 되면 늘 그렇듯 남은 예산을 “잘” 소진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예산은 미묘하다. 올해 100만 원을 받아서 80만 원만 쓰고 20만 원을 남기면, 내년에는 그 100만 원이 다시 오지 않는다. 100만 받아도 다 못 쓴다는 의심과 함께 다음 해 예산은 80만 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울며 겨자를 먹는 마음으로 파르나스를 갔다. 과장이다. 누가 겨자로 5성급 뷔페를 먹냐. 발을 구르며 한껏 들떠서 갔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을 아주 충분히 누렸다. 비싼 호텔은 로비부터 향이 다르다. 친절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택시 문을 열어준다. 직원들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밝은 눈웃음을 짓고, 고개를 각 잡아 숙인다. 내가 특별히 착한 사람이라서도 아니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서도 아니다. 그저 돈 쓰러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뷔페에 들어선다. 코트를 받아주신다. 다 먹은 접시도 샥샥 사라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큰 도움으로 돌아온다. 물도 자동으로 채워진다. 음식은 어떤지, 굽기는 괜찮은지 나를 끊임없이 걱정해 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말을 많이 할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날의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17만 원을 만끽하며 대접받는다.


그리고 정확히 그 주 토요일, 나는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검은 정장을 입고, 양쪽 어깨에 대포 카메라 두 대를 걸고. 코난 범인 같은 복장으로. 설명이 필요 없는 차림이다. 이 건물에서 토요일에 이 차림새를 한 사람은 본식 스냅 작가뿐이다.


직원들의 응대는 여전히 정중하다. 불친절하지도, 무례하지도 않다. 다만 수요일과는 살짝 목소리의 옥타브가 한 계단 낮다. 기분 탓인가?


"오늘 ~~ 신부님 작가님 되시나요", "이쪽으로 이동 부탁드릴게요. 거긴 하객이 많이 다녀서” 말 끝이 조금 더 짧아졌다. 표정도 실무적이다.


그 안에는 이런 뉘앙스가 깔려 있다. 당신도 일하러 왔고, 나도 여기서 일한다. 내가 당신에게 투숙객이나 하객과 같은 응대를 해주길 기대하면 곤란하다. 서로 불쌍한 처지에 뭐 너만 대접받으려 하냐. 각자의 역할만 잘하자. 불쌍한 사람끼리 서로 돕자.


신랑 신부가 도착하고, 촬영을 준비한다. 예식이 시작된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 고급스러운 5성급에서 별 반개의 신분이 된다. 신랑 신부의 동선에 맞춰서 뛰어다니고, 검은 티 안으로 땀이 차오르지만 내색할 수 없다. 무릎이 아프다고 앉을 수도 없다. 신랑 신부 가족을 살피며 심기가 불편한 일이 있는지를 살핀다.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실 수 있으니.

카메라 LCD를 보며 뒷걸음질 치다 하객과 부딪히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연거푸 반복한다. 원판 사진을 찍으며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며 "스마일"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구걸한다.


나는 그 공간에서 가장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된다.


그 말투와, 태도와, 분위기를 나는 견딘다. 싫은 기색을 낼 수 없다. 지금 이 공간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에만 집중한다. 오늘 페이는 20만 원이다. 그 값에 밑바닥 맛도 포함돼 있다.


그 불쾌함을 견디면서 지금의 나와 수요일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떠올린다.


공간은 같다. 내 형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나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이상하게, 그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묘한 쾌감이 든다. 무언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 마치 수요일에 회사 돈으로 누렸던 그 융숭한 대접에 대한 부채를 오늘의 모욕으로 상계시킨 것처럼. 시원한 해방감이 든다.


동시에 내면이 단단하단 사람은 이런 낙차 경험 무수히 가진 사람이지 않을지 생각해 본다.


말하자면 좋은 곳에서 대접받는 법을 알고, 그 대접을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누릴 줄 아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 공간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갔을 때, 그 상태의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견뎌낼 수 있는 사람.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통과하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큰 낙차를 도망치지 않고 감당해 본 사람.

자존감을 높고 낮은 위치의 문제로 말하는 순간, 그것은 위치에너지가 된다. 하지만 자존감은 위에 있을 때 증명되는 게 아니라, 아래로 떨어졌을 때 시험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힘. 그런 의미에서 자존감 뒤에 따라오는 말은 ‘높다’기보다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하다는 표현이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나는 그 낮은 위치와 모멸이 매번 어렵더라. 더 큰 사람이 돼야 할 텐데.


촬영은 잘 마쳤다. 좋은 호텔일수록 촬영이 쉽다. 조명도 좋고 홀도 훨씬 커서.

웨딩 스냅 이야기를 하면서, 별 이야기를 다 했다. 신랑 신부는 만족했고, 나는 다시 카메라를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


인터컨티넨탈을 나서며 묘한 씁쓸함과 함께 촬영을 잘 마쳤다는 단맛을 삼키며 택시를 탄다.


오늘은 치킨을 시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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