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습니다.
프로의 정의는 "그걸로 돈을 벌었느냐"이다. 아직 이 일로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나는 매주 꾸준히 촬영을 하고 있다. 적어도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을 때'라는 주제에 대해 말할 입장권 정도는 쥔 셈이다.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걸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그 일을 미워하게 될 테니까" 맞는 말처럼 들린다. 논리적이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말엔 결정적인 함정이 하나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일이란 태생적으로 결국 거지 같다는 것.”
일이란 고되고, 복잡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사람 때문에 일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일이 싫어서 사람과 부딪치기도 한다. 워커홀릭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그 일이 마냥 즐거워서 빠져든 건 아닐 거다. 아마도 결과가 주는 성취, 책임이 주는 보람, 타인이 주는 인정 같은 걸 통해 버티고 있는 것에 가깝다.
마치 운동처럼. 운동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그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 뭐가 즐겁나. 대부분은 그 고통 끝에 만들어진 몸, 하기 싫지만 아무튼 체육관에 와서 끝냈다는 성취감 같은 것이 그를 지탱하게 만드는 거다.
물론 김종국처럼 순수하게 ‘운동 자체’에 미친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그냥 예외로 두고.
그러니까, 일이란 애초에 하기 싫은 것이다. 그건 우리가 엔트로피인가 열역학 2법칙인가 뭐신가에 영향을 받기 떄문이다. 그러니 내 제안은 이렇다. 어떤 일이든 힘들 거라면, 그나마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그 힘듦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된다고.
물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는데도, 어느 순간 그 일이 미워질 수도 있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 정말 내려놓고 싶을 때, 그 일을 붙들게 해주는 건, 처음에 가졌던 그 좋아하는 마음뿐이니까. 거지같은 순간을 만날 때마다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로 버텨낸다면, 시간이 쌓이면서 그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전문성이 된다.
어느새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그 일을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지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해야되는 일, 주말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월 - 금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 회사 내 제품의 공급망 사슬 및 생산 계획을 관리하고, 주말에는 웨딩 촬영장에 선다. 이 두 개의 일은 내가 두 명의 서로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게 만든다.
하나는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이다. 공급망 관리라는 건, 말하자면 아주 거대한 시계의 작은 톱니바퀴 같다.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한다. 마치 수십 층짜리 공장의 한 층, 그 중에서도 한 기계만 맡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맡은 일이 실제 어떤 큰 그림 속에 있는지, 혹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날이 많다. 일이 싫지는 않다. 경력이 쌓이면 나아질 거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쏟는 에너지에 비해 돌아오는 건 너무 작다. ROI가 낮다. 더 많이 해봐야, 월급이 조금 오르고 책임이 조금 늘어날 뿐이다. 그마저도 수년이 걸린다.
반면, 주말의 나는 전혀 다르다. 촬영 전날이면 소풍 전날처럼 설렌다. 이번엔 어떤 장소일까, 어떤 커플을 만날까. 현장에 도착해서 셔터를 누를 때면 들뜬다. 나는 그 결혼식의 작은 현장 감독이 된다. 현장에서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오차없이 내려야 한다.
촬영은 늘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같은 날은 없다. 시간에 따라 빛이 달라지고, 신랑 신부의 표정이 달라지고, 현장의 온도가 달라진다. 어떤 날은 되도 않는 농담 하나에도 바로 분위기가 살아나는 커플을 만나고, 어떤 날은 싸운 직후라 서로 말도 안 섞는 신랑 신부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 모든 예측 불가능함이, 나에게는 놀이 같고 실험 같고 도전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진다. 단지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공부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촬영 방식을 찾아보고, 색감이나 구도를 계속 훔쳐본다. 머릿속으로는 다음 촬영을 시뮬레이션한다. 말하자면 나는 이 일을 ‘덕질’하고 있는 셈이다. 몇 mm로 찍어야 왜곡이 덜한지, 어느정도 거리감을 가져야 인물이 예쁘게 나오는지, 이런 얘기를 나누면 이 분야에 대해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이 일에서 누구보다도 앞서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다. 공급망 관리 업무보다도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시간을 들이는 사람이 이길 수 없는 게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들이는 시간과 열정은 그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꼭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물론 모든 사람이 지금 당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다. 나 역시도 사진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에 사무직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좋아하는 ‘가치’를 품은 무언가에 발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사란 결국 피할 수 없는 모순의 연속이다. 회의는 늘 길고, 성과는 모호하며, 동료는 때로 피곤하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 한 발자국 더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은 ‘좋아함’이라는 감정이다. 그것이 남아 있는 사람과, 완전히 식어버린 사람은 결국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물론, 하루의 온 시간 자체를, 혹은 정규직으로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한다면 그것이 가장 best이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모든 날이 반짝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짝임이 사라졌을 때조차도 계속 그 일을 생각하게 되는 상태다. 나는 사진 촬영 일을 그렇게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믿는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결국 언젠가는 이긴다고.
"나는 웨딩스냅 작가입니다"라는 콘텐츠가 당신이 일에 대해서 한 번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