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CC(Campus Couple)가 있는 것처럼 회사에도 사내연애가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하루 중 눈 떠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사실 피를 나눈 우리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것이 회사 동료이다 보니, 회사에서 정분이 안 나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일 것이다. 특히 젊은 남녀가 모여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통 사내연애가 시작되는 첫 번째 기회는 연수원이다. 일단 연수원에 들어가는 신입사원의 마음가짐 자체가 연애에 최적화되어있다. 오랜 대학생 시절과 취업 준비 기간을 벗어나 드디어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시작한 순간이기 때문에 마음이 설렌다. 수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굴지의 대기업을 들어왔기에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만나는 사람이 그 누구이던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닐 동기들이기에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신입사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선남선녀가, 합숙을 하며 교육도 받고 팀플도 하고 가끔 체육활동을 하다 보면 당연히 서로에게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때문에 내 남친, 여친이 그룹사 연수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특히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남친과 아직 대학생인 여친이 그룹사 연수 기간 많이 싸운다고 한다. 수많은 과제와 액티비티에 치여 잠도 쪼개서 자는 신입사원 남친과, 아직 취업과 연수를 소문으로만 들은 취업준비생 여친은 사실상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든 연인을 만들어보기 위해 눈이 벌게진 남녀들이 모인 '동물의 왕국'이라는 소문을 알음알음 전해 들었는지 매일 밤마다 전화로 남친을 단속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었다.
사실 '동물의 왕국'이라는 소문이 아예 근거 없는 놀림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예전 회사의 연수원에서도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말이 많았던 한 커플이 있었다. 연수 내내 동기들을 살뜰히 챙기는 형과 그것이 딱히 싫지는 않아 보였던 여자 동기였다. 나는 눈치가 워낙 둔해서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했고 크게 관심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다른 동기들에게는 이 커플의 행방이 관심의 대상이었나 보다. 연수가 끝나고 각 계열사로 흩어진 이후에도 동기끼리 모이기만 하면 이 커플의 이야기로 분주했다. 과연 이 형은 여자 동기에게 정말 관심이 있는 것일까, 여자 동기는 호의를 넘어서서 이성적인 관심이 있는 것일까. 이 관계는 그냥 동기애일까 아니면 썸일까. 만약 썸이라면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을까 등등등...
결국 이 커플은 동기들의 예상대로 사내연애로 발전하여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형의 프러포즈를 받은 여자 동기는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지만 그전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형은 서울에 있는 IT 계열사에서, 여자 동기는 지방 중공업 공장에서 각각 떨어져 일을 하고 있는 장거리 연애 커플이었다. 형은 아내 될 사람에게 서울로 올라오라고 말했고 이 여자 동기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돈을 더 잘 버니 오빠가 지방으로 내려오는 것이 맞지 않겠냐. 나는 아직도 걸 크러시라는 단어를 보면 저 대답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 여자가 잘 벌어오면 남자가 조신하게 집에서 살림이나 해야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