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뉴스를 보다가 산업 스파이 관련 기사를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첨단 반도체 회사에서 모 임원이 영업기밀인 기술 자료를 차에 싣고 나오다가 걸렸다는 것이다. 해당 기술은 수백억 대의 가치를 지닌 자산이고, 만약 그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갔다면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았을지 아찔하다는 설명도 나왔다. 나는 어떻게 기술 유출을 추적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대단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에서 일하는 기분은 어떨까 부럽기도 했다. 내가 24시간 감시받는 그 타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못 한 채...
삼성전자에 들어와서 가장 귀가 따갑게 들었던 것,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듣는 것은 보안이다. 사업장 정문에는 국가 핵심기술 보유 사업장에 대한 보호 조치 방안이 커다랗고 빼곡하게 적혀있으며, 입구에서부터 보안요원이 출입을 가로막는다. 업무상이라고 하더라도 사전 출입신청이 없다면 들어올 수조차 없으며, 만약 출입 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보안 교육과 동의서 서명,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 봉인 후에야 비로소 입장이 가능하다. 들어올 때만 고생스러운 게 아니다. 나갈 때에는 개인 소지품을 엑스레이에 통과시키고, 핸드폰 카메라에 붙어있는 봉인 스티커가 제대로 남아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나올 수 있다.
사내에서도 늘 보안에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무실이나 엘리베이터에 설치되어 있는 TV에는 보안에 주의하라는 영상이 번갈아 나오며, 분기별로 보안 교육을 받거나 보안 테스트 메일도 받는다. 사내 메일로 외부인에게 메일 한 번 보내기도 쉽지 않다. 메일이 외부로 전송되려면 모든 책임은 발신인에게 있다는 경고 메시지에 동의 버튼을 클릭해야만 전송이 가능하고, 만약 메일에 파일을 첨부하려면 아예 부서장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혹시나 어디서 꼬투리를 잡힐지 몰라 긴가민가하면 아예 사외로 메일을 보내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인사팀 동기 형이 삼성의 인사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인사규정 좀 보내줄 수 있냐고 하길래 어려울 것 같다고 완곡히 거절했더니 많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뒤늦게나마 사과문을 구구절절이 써본다. 규정은 규정이니까. 나도 대외비를 막 보내드릴 수는 없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