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gypt를 보고
고등학교 시절 신화에 푹빠져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동안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또 그 이후엔 이집트 신화에 빠져 이집트와 관련된 소설들은 닥치는대로 읽어댔다.
이집트 신화에 대한 무한애정의 시발점은 역시 소설 '람세스'였다. 그 두꺼운 책들을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내가 이집트에 살았더라면 하는 행복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저건 꼭 봐야해!라며 의지를 불태우다 결국 오늘 영화관에서 관람을 했다.
사실 영화 시작 전 주차장에서 차 문을 안 잠그고 온 듯해 찜찜해 하다가, 영화가 시작되자 그깟 사소한 걱정이 나의 인생영화를 관람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 일은 새까맣게 잊은채 영화에 몰입했다.
사실 이 영화는 이집트 신화와 고대 세계관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철저한 고증에 의한 그 섬세한 연출력이 감탄스러웠다. 만약 이집트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호루스와 세트가 싸우다가 왜 갑자기 매와 자칼로 변신하는지, 왜 세트가 호루스의 눈알을 뽑았는지 (다행히 징그러운 장면은 아니었다) 혹은 왜 검은 자칼의 머리를 한 저승사자가 나타나는지 당혹스러울 수 도 있겠다. 이집트 소설 매니아였던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영화를 봤지만 이집트 신화에 큰 관심없던 남자친구는 그냥 액션이 볼 만했던 영화라고만 했다.
주인공인 호루스와 세트의 싸움은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격렬한 신의 싸움으로 알려져있다. 80년간 싸웠는데 전쟁 뿐 아니라 하마로 변신해 잠수 대결을 하는 등, 화려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후기에는 한동안 호루스가 이집트의 왕권을 부여하는 신으로 숭산받았으며 나중에는 둘 다 파라오의 수호신으로 하 이집트는 호루스가, 상 이집트는 세트가 다스리며 그 둘이 파라오에게 신성한 왕권을 부여해준다고 믿었다.
호루스는 세트의 조카로, 그의 아버지 오시리스는 세트의 형이다. 세트는 오시리스를 죽이고 이집트 전체를 통치하려했지만 기나긴 싸움 끝에 결국 호루스에게 자리를 내놓아야했다.
God of Egypt에서 세트가 노린 호루스의 눈알은 실제 이집트 신화에서도 호루스 힘의 원천 이다. 세트가 호루스의 눈알을 갈갈이 찢어버렸으나 지혜의 신, 토트의 도움으로 오른쪽은 온전히 되찾고 왼쪽은 한 조각을 못찾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화 속 눈알 뽑는 장면이 엄청 징그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신들의 피를 황금색으로 표현하고 뽑힌 눈알은 마치 푸른 드래곤볼 같아, 거부감없이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잘 나타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사후세계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었으며 사후세계에서 불멸의 삶을 얻게된다고 믿었다.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는 죽은자들의 수호신 이었다. 원래 신화에서는 오시리스, 호루스의 아버지가 사후세계의 신이되어 저울로 영혼들의 생전의 삶을 평가해주고, 사악한 자의 영혼은 괴물에게 먹히게 하였다. 다만, 파라오의 영혼은 사후세계에서 신이 되는 것이 보장된다고 믿었다. 영화에서 나온 거대한 저울은 오시리스의 저울이 모티브인 듯 하다. 저울 옆에서 "What do you offer?"을 외치던 심판관들은 아마도 고대 파라오가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희안한 배를 타고 다니는 태양신은 실제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존경받던 신이다. 태양신 '라'는 파라오를 보호하고 왕권을 상징하는 신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력하게 숭배받는 주요 신 이었다. 영화 속에서 다른 신들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태양신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가장 강한 신 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대 이집트에선 쇠똥구리가 신성한 곤충으로 추앙받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쇠똥구리가 똥을 굴리며 가는 모습이, 흡사 태양신이 태양을 굴리는 모습같다며 그들을 태양신의 운반자로 여겼다. 역시나 영화 속에서도 대형 쇠똥구리들을 볼 수 있었다.
이집트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은 것 같은데, 누가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 보기 전에 람세스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아니면 사리오키스 같은 단편 소설이라도 읽고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이다. 왕과 나 이후 이렇게 이집트를 배경으로, 더더군다나 신화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는 처음으로 보는거라 보기 전부터 흥분해 있었는데 보고 나와서도 감동이었다. 이집트 출신인 감독이 이집트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만든 영화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