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key Tango Foxtrot 를 보고
지금 회사를 다닌지는 2년이 조금 넘었고, 그 전에도 같은 분야의 회사를 다녔었기에 어느새 직장인 4년차에 접어드는 나는 일에 대한 열정이 바닥난 느낌이다. 일 욕심보다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으로 출근을 하고, 회의를 하고 자료를 만든다. 다행이랄까 아직까지 담배는 피우지않지만, 스트레스로 목 뒤가 뜨끈뜨끈 해질 무렵이면 서른살 여자답지않은 욕을 하며 일한다. 그러고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 정말 이렇게 살아야되나 싶어 잠 못 들고 뒤척이곤 한다. 그런 나에게 이 영화는 공감되는 한 여자 직장인의 이야기였다.
킥복싱 수업 친구들이 영화를 보러가자길래 아무 생각없이 같이 갔다. 영화를 봐야겠다는 기대감보다는, 이제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도 술을 파니, 팝콘과 와인을 즐겨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당연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가서 초반에 전투 장면이 나오자 전쟁 영화인가 싶어 짜증이 살짝 났었다. 곧이어 방송국.
퇴근 후 GYM에서 홀로 자전거를 타던 킴은 뉴스에 나오는 그 장면을 보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3개월간 종군기자로 활약할 결심을 한 그녀는 곧 비행기를타고 위험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다.
나중에 나온, 일상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회사 내 자기 책상이 너무 지겨워서, 제자리 걸음만 하는 인생을 산 것 같아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했다는 그녀의 고백이 와닿았다. 3일 이상 출장가기라도 하면, 내 자리에서 일하는게 편했지하며 그리워지는 내 책상, 그나마 회사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내 공간이지만 어느 순간엔 못 견디게 지루한 내 일상의 상징이기도 한 내 자리. 박차고 나가고 싶은데 월급 생각하면 다시 눌러 앉게되는 내 책상.
남자들의 세계에서 몸을 아끼지않고 덤벼드는 킴. 가부장적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그녀는 아마 직장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여직원들의 모습일 것이다. 이메일만 주고받은 상태에서 통화하면 아, 여자분 이세요 라고 놀라는 일이 다반사인 일상. 어린 여자라고 깔보는 것 같아 더 이를 악물고 사납게 덤벼들기도 했었다.
Fuck!Shit!맛깔나게 욕을 해대는 그녀의 모습에서 늘 짜증난 상태로 날카로워진 내 모습이 보였다. 몇차례의 고비를 넘기고 기회를 잃기도, 사람을 잃기도 하는 모습에서 현실감을 느꼈다.
영화 속에서 서른 후반의 여자다운 쿨한 연애도 보여줬다. 일 하느라 놓친 전 남친, 속아넘어갈 뻔한 번지르르한 보디가드, 그리고 아닌 것 같었던 그 남자까지.특별히 야한 장면 없이 자연스레 흘러갔다. 난 연애 영화가 아니예요 라고 말하듯이.
또 하나의 공감대. 직장내 불여시. 예쁘고 쿨한 친구인 척하는 불여시. 꼭 회사에 성격건드리는 것들이 있다. 초반엔 순진한 척, 착한 척 하다가 뒤통수 제대로 날리는 직장 내 짜증유발자들. 하지만 이 영화 속 불여시는 이쁘긴 진짜 이뻤다. 걸크러쉬 유발하는 쿨한 언니.
솔직히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할 지는 모르겠다. 혹시 힌다면 꼭 보시길. 인터넷로 다운받아 일요일 저녁에 맥주 한잔 하면서 봐도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웬지 다시 회사라는 전쟁터에 뛰어들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