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을 떠나, 미국 남부에서 고교, 대학 시절을 보낸 7년차 직장인이다.
자동차로 본가에서 1시간 조금 넘는 거리의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또 한 시간 조금 안되는 거리에 있는 한국계 회사에 취직해 대리를 달기까지 나는 조지아에 있는 본가에서 가족과 늘 함께 살았다. 취직을 위해 멀리서 온 유학생 출신 동료 들이나, 다른 주에서 이사 온 회사 친구들은 매일 집에 가면 따듯한 밥에 맛있는 반찬이 있는 나를 많이도 부러워했다. 늘 항상 가족과 함께여서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루 종일 전쟁터같은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어 퇴근을 하면, 우리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한식으로 저녁을 차려주셨다. 가끔은 소고기 전골이 보글보글 끓여져있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한인 마켓에서 좋아하는 쫄깃한 족발을 사다두시거나, 집에 있는 재료로 김밥을 싸 두셨었다.
가끔 내가 일찍 퇴근해 저녁메뉴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나에게 뭐가 먹고싶냐고 물으시면,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김치볶음밥' 이었다.
회사 근처의 한식당에서도 김치 볶음밥이 메뉴에 있었지만, 스팸이며 야채며 다른 재료들이 진뜩 들어간 그 밍숭맹숭한 김치볶음밥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단순히 버터를 한 덩어리 녹이고, 우리집 익은 김치를 숭덩숭덩 잘라 볶다가 밥과 함께 볶아 마무리 하는, 엄마의 그 심플한 김치 볶음밥이 내게는 최고의 보양식이자 최고의 저녁메뉴 였다. 엄마는 그 김치볶음밥위에 잘익은 계란 후라이를 얹어주시거나 같이 먹으라고 양배추를 썰어 간장 소스를 뿌려주시기도 하셨다. 김치 볶음밥을 우물거리고 먹으며 회사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이나 짜증났던 일이나 가끔 있던 좋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한 후라이팬 가득 만든 김치볶음밥이 다 동이 나도록, 두 그릇이고 세 그릇이고 먹어대다가 과식을 하고 후회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주말이면 가끔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자취집에 가서 인터넷에서 본 비법 참치김치 볶음밥을 해주거나 엄마가 외출하시는 날 점심에는 혼자 볶아 먹기도 했는데, 역시 제일 맛있는 김치 볶음밥은 엄마가 해주신 그 심플한 김치볶음밥 이었다. 내 손으로는 안 나는 그맛.
지금의 나는 결혼을 했고, 본가를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신혼생활 과 새로운 직장 근무를 하고 있으며 부모님은 한국에 계시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출장이 잦다. 외국계 회사에 팀원 중 한국인이 나 혼자이다보니 자연스레 한국 출장은 내 몫이 되고, 다행히도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뵈러 갈 수 있다. 13시간의 비행 후 한국 집에 가서도, 서른 셋이나 먹은 이 뻔뻔한 딸자식은 엄마에게 아침부터 매달린다. 몇달동안 못먹은 아쉬움을 담아.
" 마미 나 김치볶음밥 해주세요~"
엄마의 김치 볶음밥은 나에게 최고의 힐링 음식이고, 언제나 최상위의 집밥 메뉴다. 외국에 거주 중인 많은 한국인들에게 그렇듯 진정한 한식은 결국은 우리 집밥이다.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