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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 Glove Jul 31. 2019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어

미움에 죄책감을 갖지말자

진짜 직장생활 해본 사람치고 사연없는 사람이 있을까싶다.

얘기를 나눠보면 얘네 직장에도 또라이는 있고 그래도 내 직장의 또라이가 더 또라이 인 것 같고.

나도 마찬가지다. 첫 직장에서는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여자가 있었고 그다음 직장에서는 진짜 꿈에 볼까 두려운 인간들이 있었고...

그 와중에 놀라운 것은 그들로 인해 내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한가지는 확실히 하자. 자아성찰하며 끝까지 그런 인간쓰레기들을 참고 견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한다. 이것은 진리다. 사람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왕 갈거면 그 또라이가 배아파 할만큼 좋은 곳으로 가자.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스스로도 느낄만큼 스트레스에 취약했다. 회사에서 누군가가 날 미워하면 어떻게든 그 사람 비위를 맞춰가며 눈치를 보고, 그 사람에 나를 덜 미워하도록 애를 썼다. 그런데 위에도 말한 것처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커피를 사다준 날이면 내가 본인의 베프인듯 헤실대다가도, 본사 매니저가 와서 내 칭찬을 하는 걸 듣고나서는 샐쭉해져서 본인이 내게 알려줘야 할 것도 안 알려주고 (결품나서 문제생기면 지가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 들으라는 듯이 내 욕을 했다. 쓰다보니까 또 열받네.

그 여자가 얼마나 싫었냐면, 아침에 출근하면서 출근하기 싫어 눈물이 날 정도로 싫었다. 나는 어렸고, 사회 경험이 적었고, 예민했다. 결국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 여자를 감싸는 매니저에게도 실망했고 (퇴사 후 알고보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나는 내 자존감을 깎아먹으면서까지 그 회사에 남아있어야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대책없이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 근처의 더 큰 규모의 회사에서 그간 회사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뷰에서 내 자신을 충분히 어필했고, 합격했다. 이직 계획을 완벽하게 세운채, 사표를 냈다. 나에게 남아줬으면 좋겠다는 본사 시니어 매니저에게 울며불며 그 여자가 내게 했던 짓들을 털어놓았지만 당장 바뀌는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어렸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 나는 깨달았다. 무식하게 버티는 것만이 답은 아니구나. 회사는 대학이 아니었다. 힘들어도 몇년 버티다보면 졸업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나가야겠다싶은 시기에 준비를 하고 옮겨야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이유가 사람이든, 업무든 간에.

두번째 직장에서 나는 20대 후반의 대부분을 보냈다. 다들 미국에서 회사다니면 8 to 5 인줄 아는데  밤10시, 11시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진급하고 싶었고, 동기에게 지고싶지 않았고, 내 매니저들은 진짜 나를 엄청 굴렸다. 첫 1,2년은 일을 못한다고 엄청 혼나기만 했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 와중에 팀의 여직원 하나는 불여시 같은 게 사람 속을 박박 긁었다. 또 하는 일이 구매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야했고, 나이어린 여자다 보니 업체든, 같은 회사 타부서 사람이든 내 맘 편하게 해주는 담당자가 손에 꼽혔다. 오죽하면 진짜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싶어 1년을 간신히 채우고 사표를 썼다.

사표를 받은 팀장님은 조용히 타이르셨다. 좋은 회사가 있어 이직을 하는 거면 나도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겠다. 하지만 단지 사람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거라면 네 경력을 위해서라도 프로젝트 제대로 하나만 더 하고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팀장님의 말씀 중 다른 무엇보다도 ' 네가 나가면 나와 우리팀이 힘들어질거다' 라는 말씀에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나가고 싶었던 이유는 어쩌면 내가 팀에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팀장님은 내가 사표를 물리고 난뒤,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내가 잘 하는 일로 재배치 해주셨고, 내가 잘하는 일을 하다보니 불여시의 장난질을 비롯한 사소한 일들은 그럭저럭 무시하고 지나가게 되었다. 매일 같은 야근도 버틸만 했고, 결과가 나와서 칭찬을 받으며 상처받은 내 자존감을 다시 치료했다.

 회사는 회사다. 좁은 오피스 공간에서 피치 못하게 매일 마주쳐야 하지만,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거리를 두는 법을 알게되었다. 내가 거리를 두는데도 일부러 다가와서 시비를 걸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싫은 티를 냈다. 상대편이 다짜고짜 큰 소리를 내면, 나도 지지않고 더 큰소리로 싸웠고, 누가 욕을 하면 내도 욕을 했다. 21세기에 아직도 상대에게 욕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게 놀랍지만 상대가 먼저 욕하는데 나라고 상대를 좋은대접 해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회사마다 인사 규정이 다르니 다들 그렇게 하세요라고 장려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하고싶은 말은 누군가가 날 미워하면 나도 똑같이 미워해주면 된다는 거다. 누가 시비를 걸면, 짜증은 나겠지만 성심성의껏 내 분노를 표현해 주자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경력이 본인보다 짧다고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다못해 얘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피곤해진다는 생각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 싸웠다. 내 스스로 출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밤에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열받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20대가 지나고 서른을 맞으면서 나는 한번 더 이직을 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 불만족스러웠던 것도 있었지만, 1차 업체에서 OEM 으로 가 경험을 쌓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다. 당시 업계의 여러 OEM 과 인터뷰를 보았고, 몇년간의 경험으로 단단해진 나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아 두 회사에서 동시에 오퍼를 받는 기쁨을 누렸다. 정말 분노는 나의 힘이었다. 불만족스러웠고, 미웠고, 열받았지만 꾹꾹 눌러 참지않았던 덕분에 어쩄든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지금 회사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등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아는 글로벌 OEM 이다. 하지만 이 회사라고 또라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을 절대 맹신한다. 그 와중에 전 회사에 감사한 것은, 그 회사에서 진상들을 다년간 상대한 덕분에 왠만한 또라이를 만나도 예전처럼 발끈하지 않고 너그럽게 넘길 수 있게되었다는 것이다. 혹은 당장의 사소한 복수를 하지 못해도, 업무 실력으로 누르기 위해 꾹꾹 눌러 참았다가 한번에 팡 제대로 터트려주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반격으로 회의 중 당황한 상대방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쾌감넘친다.

나는 여전하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 싶으면 굳이 다가가려고 하지도 않고, 마음을 돌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나는 사춘기 학생이 아니며, 내게 중요하지 않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 상대방이 내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 내 스스로를 상처 입히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착한 동생들에게,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유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괴롭히는 상대를 미워하는 본인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갖지말라고. 싸워서 이기고 성장하라고 응원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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