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 수업에서 처음 가져간 시에 대해 합평을 들었다. 사실 앞부분 수업이 길어져 시간이 부족했기에 정식 합평은 아니었다. 선생님께서만 코멘트를 해 주시고 각자 써온 시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내가 제출한 시
나는 너무 잘 작동하는 휴대폰을 들고도 정작 걸 데가 없는 화자의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홉개, 열한개, 별, 물“과 같은 표현들이 모두 너무 상징적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휴대폰이었는데 이걸 더 잘 표현하려면 어떤 게 추가되어야 할까요? 여쭈었더니, 휴대폰이면 그냥 휴대폰이라고 쓰는 게 낫다. 걸 데가 없으면 그냥 걸 데가 없다고 하라고 하셨다. ㅋㅋㅋㅋ
아무리 시여도 상징으로만 그득하면 안 되는 거였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어떠한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
돈 텔 벗 쇼(Don’t tell, but show)가 소설에서만 적용되는 줄 알았더니만, 사실은 에세이도, 사실은 시에서도 적용되는 원칙이었다는 사실… 어쩌면 소설이 너무 어려워서 도망친 거였는데, 여기서도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물론 칭찬받은 부분도 있긴 했다. 고양이 발소리 나오는 부분, 셔터랑 창이 보이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사실 휴대폰 화면을 창이라고 한 건데 창문으로 생각하시고 말씀주신듯... 그래서 따지고 보면 반의 반쪽짜리 칭찬일지도...)이다. 또,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데 닿지를 못하는, 방도가 없는 그 상황 자체가 궁금해져서 좋다고 하셨다. 뒤에가 더 궁금하다고.
아, 그리고 역시나 내 작품이 제일 분량이 짧았다. 이건 에세이 수업 때도, 소설 수업 때도 겪던 건데. 나는 진짜 할 말을 유난히 함축적으로만 하나보다.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 “말을 안 해서 몰랐다”는 말을 몇 번 들었다.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상대에게 다 전해지지 않는가 보다. 글이든 말이든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정확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글쓰기만 배우는 게 아니라, 인생도 같이 배우겠는걸. 이걸 내 강점으로 살릴 순 없나? 입이 무거워야 하는 직업이라던지… 스포 하면 안 되는 영화 후기 쓰기?!
나는 일기장을 봐도 온통 감상과 진술로 가득하다. 그래서 막상 예전에 쓴 일기를 봐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저 그날의 나는 어떤 기분이었고,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다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마치 확진자 동선처럼 세세하게 묘사를 잘하고 싶다. 시로 도망쳐도 또 마주한 ‘묘사하기’. 쉽지 않다. 이 세상에 쉬운 건 없어. 쉬운 건 어차피 내 것이 아니야. (또 깨달음만 쓰는 중…)
일단 선생님께서 내 시를 보고 추천해 준 다른 시를 읽어봐야겠다. 윤은성 시인의 <주소를 쥐고>, 제오르제 바코비아의 <겨울풍경> [납]
그리고 장면을 묘사한 다른 시들을 찾아 필사를 해봐야겠다.
늘 그랬듯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곳에 도착해 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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