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만도 힘든데 굳이 산을 왜 타?
매주 주말, 사람들과 산을 탄다. 오전 8~9시쯤 만나서 2~4시간 정도 산을 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산을 함께 오르는 것은 왜 즐거울까? 분명 몸은 힘든데, 추운 날도 더운 날도 왜 나는 산을 계속 오르고 싶어 할까? 오늘은 그 이유를 분석해 보겠다.
일단, 등산은 운동이니까 몸에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등산은 하면 무조건 이득인 활동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밑져야 본전 수준이 아니라, 하면 무조건 플러스! 인 거다. 혹자는 등산이 고속노화의 길이라고도 하지만… 그렇게 치면 햄버거 먹고 눕는 건 초고속 노화다.(?)
우리는 좋다는 걸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게 참 많다. 절약하기, 선크림 잘 바르기, 영양제 챙겨 먹기, 맵고 짠 거 적당히 먹기, 채소 많이 먹기, 자기 전에 깨끗이 화장 지우기, 충분히 자기, 집 치우기, 먹고 바로 설거지하기, 책 읽기, 일기 쓰기, 손톱 물어뜯지 않기, 밥 먹고 바로 눕지 않기, 물 충분히 마시기,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 화내지 않기, 예쁜 말만 하기… 등등등 날이 새도록 적어도 모자랄 것만 같다.
함께 산에 오르기 위해 등산 모임에 가입하면 그 힘들다는 운동을 같이 가자고 해주는 친구가 생긴다. 그 친구는 무려 길을 이끌어주기까지 한다. 또, 힘들어할 때마다 할 수 있다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가끔은 오이도 주고, 토마토도 주고, 참외도 준다. 또, 좋은 아이템을 추천해 주거나 인생 꿀팁이나 맛집도 소개해 준다. 게을러지는 주말에 몸에 좋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산에 불러주고, 완등할 수 있게 독려도 해 주고 끝나면 맛있는 음식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등산 모임의 매력이다.
반년동안 경험해 본 바로는, 나와 함께 산을 탔던 사람들은 내가 건강을 생각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깊이 공감해 주거나, 당연히 이해해 준다. 또 내가 건강을 생각해 오늘은 두부 요리를 먹고 싶다, 포케를 먹고 싶다 하면 그 마음에 흔쾌히 함께해 준다. 그래서 나는 본래 산을 타는 목적인 건강을 잘 지키면서도, 좋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산 하나를 온전히 오르내림으로써 성취감까지 얻어서 집에 온다. 이러니 매주 안 갈 수가 없는 거다. 간혹 일정 문제로 못 가게 되는 날이 생기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직장인에게는 평일에 산을 탈 에너지와 여유가 없기 때문에…
올해 장마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헉, 산 못 타겠다. 어떡하지. 마이마운틴이라도 타러 헬스장을 등록해야 하나? 아니면 클라이밍을 가자고 할까?’였다. 정말로 걱정이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산 대신 어디로 가야 할지…
마이마운틴이란?
경사도 조절이 가능한 러닝머신으로 매우 급격한 경사까지 재현할 수 있다.
다시 장점으로 돌아와서, 산을 함께 오르면 완등의 기쁨을 몇 배로 즐길 수 있다.
일단 ‘완등’을 한다. 혼자 갔더라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했을 수도 있는 산을 함께인 덕에 정상까지 여러 번 갈 수 있었다. 정상을 같이 딱 찍었을 때의 짜릿함, 그리고 정상 찍고 다시 평지로 내려왔을 때의 뿌듯함을 온전히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좋다.
팀플로 어떤 대회를 출전해서 우승 트로피를 받는 생각을 해보자. 받는 순간에는 참 기쁠 테지만, 트로피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고 또 그 대회를 준비하고 치르는 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은가? 등산을 하면 대회 우승만큼의 기쁨을 약 3-4시간 정도면 매주 느껴볼 수 있다는 거다.
정상까지 가는 길에는 살랑이는 바람, 예쁜 풀과 나무, 새소리, 물소리도 있다. 정상까지 가는 길보다 하산할 때 더 잘 보이고 들리지만. 가끔 귀여운 강아지도 만날 수 있다. 하산하는 발걸음은 그 강아지 발걸음만큼 가볍다. 이미 정상을 찍었다는 사실을 등에 업으면, 말벌아저씨처럼 호도도도 내려올 수 있게 된다. 사실 난 유명한 하산 전문가다.
완등한 산들이 하나하나 늘어간다는 것도 큰 재미다. 게임에서 레벨 업 하는 기분이랄까. 처음 산을 탔을 때는 고도 295.7m인 아차산도 힘들어서 중간에 고구려정까지만 찍고 왔었다. 사실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인지도 몰랐고, 그냥 이 정도면 된 거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모임에서 갔을 때는 정상도 찍어보고, 이런 산 저런 산 가보면서 아차산 정도는 뒷산처럼 다녀올 수 있는 레벨이 되었다.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가 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293m 대모산이나 339m 인왕산 정도는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522.1m 남한산성, 616.3m 청계산, 632.2m 관악산, 658.3m 검단산을 가보면 까암짝 놀라고 다시금 겸손해진다. 그리고는 또 한 단계 성장해서 돌아온다. 최근에 했던 도전은 먼 동네까지 가서 산을 타는 거였고, 551m 사패산이었는데 가파르게 쭉 올라가는 코스가 길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역시나 완등했다는 사실. 박수!
한참 산을 오르다 보면 다 같이 떠들던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지는 때가 있다. 그때는 이제 각자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바로 앞 계단 딱 하나만 보면서 꾹꾹 밟고 올라가야 한다. 두 손을 허리에도 짚었다가, 짚은 손 방향을 뒤로도 돌려봤다가. 양 허리를 힘껏 움켜잡으며 악착같이 오르기도 하다가. 후후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서 한 계단 한 계단 밟다 보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구간도 나오고, 챙겨간 물도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그렇게 또 정상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인생이랑 비슷하다.
당장 앞에 있는 계단을 하나씩 열심히 해치우다 보면, 그토록 원하는 정상에 도착한다. 얼마나 왔는지 뒤를 계속 돌아볼 필요도 없고, 얼마나 남았는지 계속 위를 올려다볼 필요도 없다. 그러면 더 힘들어지기만 했던 것 같다. 한 계단 한 계단 밟다 보면 정상에 도착한다. 진짜로 도착한다. 내가 정상에 갈 거라는 걸 알고 시작하는 게임이라서, 그 힘든 굴곡들을 모두 견딜 수 있다.
나는 또 평지에 내려와서 이 기억을 떠올린다. 지금 한 계단 한 계단 밟다 보면 나는 목표 지점에 도달할 거라고. 그냥 이 앞에 있는 계단을 꾹꾹 잘 밟자고. 정신 안 차리면 발목 삔다. 이미 벌어진 일, 앞으로 일어날지말지 모르는 일에 대한 잡생각 말고, 앞에 있는 계단이나 똑바로 밟아라!
내가 함께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산을 오르는 건 매우 힘들지만 건강에 좋다.
그 과정에서 딸려오는 소소한 보너스와 재미도 있다.
함께 오르면 등산을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다.
산을 정복하는 경험은 뿌듯하다.
정상을 찍으면 하산은 껌이다.
함께라면 그 모든 재미와 보너스, 기쁨을 두배로 만끽할 수 있다.
덕분에 얻은 뿌듯함이 쌓이면 산 밑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는 왜 자꾸 산에 가는지 스스로도 궁금해서 한번 주욱 써봤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이 글을 보고 한 명이라도 등산의 매력에 빠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특히 지금 삶에서 너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라면 꼭 추천해 주고 싶다. 일단 가입해 보라고, 그리고 올라오는 등산 일정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참여하기” 버튼 눌러보라고. 해 보면 알게 될 거다.
아~ 이래서 추천했구나!
현재 나의 등력은 고도 기준 500~600m 정도까지는 화이팅하면서 다녀올 수 있는 수준이다. 아직 그 이상은 못 가봤다. 앞으로 더 많은 산을 함께 오르다 보면 또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400m짜리 산에 갈 건데, 부디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