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있을까?
학생 때 입던 교복도 성인 되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버렸다. 교복 입고 롯데월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있었던 건데 결국 입고 가본 적은 없었다. 이 뜻에 동참하는 이를 만나지 못했던 건지, 체면이 중요했던 건지. 막상 정말 입으려니 불편할 것 같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10년 전에 산 티셔츠는 여전히 잘 입고 다닌다. 그렇다고 다 입는 건 아니고 안 입고 다니는 옷도 많다. 몇 년째 이번엔 입겠지 하면서 기회를 준 친구들인데, 여전히 그 기회를 못 잡았음에도 생존해 있다.
한 번 산 물건에는 하나하나 저마다의 의미가 생겨서 쉽사리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 못하게 된다. 의미 없어 보이는 서류들도 혹시 나중에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며 보관해 둔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면서.
사람도 잘 못 버린다. 한번 생겨난 인연은 애써 끊으려고까지 하지 않는다. 만나는 주기를 조절할 뿐 차단을 한다거나 대놓고 연을 끊어버리는 건 꿈도 안 꾼다.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도 많은 기회를 줬던 것 같다. 나에게도 기회를 많이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까.
그러다가 한 1-2년 전에 나에게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을 마음에서 지워본 적이 있었다.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당일에 파투. 또 본인이 먼저 만나자고 했으면서 당일에 파투. 둘이 만나는 때가 아니고 여럿이 만나야 했을 때도 이런 적이 많았었는데 다 봐줬었다. 내가 아무리 P라지만, 이건 예의와 존중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속에서 손절했다. 그녀는 아마 본인이 손절당했는지 모를 테지만... 나름 내 인생에서 큰맘 먹고 해 본 첫 손절이었다.
근데 하고 나니, 내 인생에 큰 타격도 없고, 또 마음은 시원하고 내가 왜 여태 이런 사람한테 굳이 시간과 마음을 썼지? 하는 마음에 참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손절 경험이었다. 그 이후에는 손절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던 것 같다. ‘나는 손절 절대 못해’에서 ‘오, 해도 될지도?’ 정도로.
이제는 옷 차례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옷 정리를 조금 해볼까 한다. 근 2년간 입지 않았다면, 과감히 정리하려고 한다. 어차피 요즘 내가 입는 옷을 보면 맨날 입는 것만 입기 때문에 괜찮을 거다. 아름다운 가게나 굿윌스토어나 기빙플러스나... 내 옷을 받아줄 어딘가가 있다면 기부를 해야겠다.
정말 필요하면 또 사면 돼, 쫄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