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Unsplash의Pascal Meier
명주 손에는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새빨간 빛이 극명해지다 힘이 빠지길 반복했다. 명주의 시선은 담배 연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다 옅게 빛나는 조명에 잠시 머물렀다. 가로등이 만들어내는 둥근 원, 그 정중앙에 자신이 서 있는지 아닌지를 대충 가늠하는 것은 명주만의 소소한 의식 중 하나였다. 한가운데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골목길을 바라보면 완벽하게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함이 귓속으로 가득 찰 무렵, 가로등이 갑작스레 깜빡거리다 이윽고 캄캄해졌다. 간혹 있는 일이기에 명주는 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이십삼까지 세고 나서야 다시 불이 켜졌다. 번쩍하는 불빛에 눈이 시려 명주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던 순간, 왼쪽 시야 끝에 무언가 걸리는 것을 눈치챘다. 고개를 돌리니 네모난 케이지 하나가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무언가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작게 흔들렸다. 햄스터가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는 중이었다.
명주의 집 한 쪽엔 항상 까만색 비닐봉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간혹 명주는 그 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가로등이 깜빡거리던 그날 이후론 햄스터 케이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비닐봉지는 선반 맨 위 칸으로 옮겨졌다. 명주의 시선은 곧잘 비닐봉지로 향하다가도 삐걱거리는 쳇바퀴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럽게 케이지로 향했다.
처음에는 겁도 없이 햄스터를 손 위에 올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햄스터는 날카롭게 “찍” 소리를 내더니 명주의 손가락을 물었다. 경계하면서도 동결 건조 밀웜을 가져다 대면 주둥이를 움찔움찔하며 다가오는 모습이 퍽 귀여워 손으로 간식 주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명주는 햄스터가 밀웜을 입에 밀어 넣을 때마다 반짝이는 작은 눈을 보는 걸 좋아했다. 어떤 날은 작디작은 분홍색 양손에, 둥글게 튀어나온 코에 시선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러다 간혹, 햄스터보다 동결 건조 밀웜에 더욱 시선이 가는 날도 있었다.
“나는 딱 보면 알아.”
그런 날이면 명주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명주는 자신의 손 위에 한껏 쪼그라든 채 죽어있는 밀웜을 쳐다보며 자신이 잠이 들 때 꼭 이런 모습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햄스터가 쪼그라든 밀웜을 입안에 열심히 밀어 넣는 모습을 목격했다. 명주는 자신이 살린 햄스터와 자신이 건네는 죽은 밀웜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던 명주는 벌떡 일어나 햄스터 케이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새 나무 베딩을 깔고 햄스터가 좋아하는 해동지도 여러 장 찢어서 넣어줬다. 그리곤 깨끗한 물과 먹이를 한가득 새로 채워 넣었다.
청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선 명주는 자신의 검은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딱 보면 알 수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명주는 선반 위로 손을 뻗어 오래도록 닫혀 있던 검은 비닐봉지의 주둥이를 열었다. 알약 상자의 각진 부분과 소주병 뚜껑의 날 선 느낌이 손끝에 스쳤다. 명주는 짧은 한숨을 쉰 뒤 그것들을 빠르게 털어 넣었다. 그리곤 방바닥 위에 천천히 누웠다. 쪼그라든 밀웜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조금 웅크렸다.
명주의 귓가에 삐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소리는 멀어지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머릿속을 울렸다. 방 안은 캄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명주는 지금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분간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속이 울렁거려 입을 작게 벌리고 겨우 심호흡만 몇 차례 반복했다. 작은 신음을 흘리는 명주의 귓가에 계속해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반짝하고 집 안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린 명주는 눈꺼풀에 닿는 빛이 익숙해졌을 때쯤 눈을 겨우 뜨고 방 안을 둘러봤다. 명주의 시야 끝에 작은 케이지가 걸렸다. 햄스터가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며 삐걱거리는 소음을 내고 있었다. 겨우 기어가 케이지 안을 들여다보니 가득 채워줬던 먹이는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았고, 햄스터는 그새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라와 있었다. 명주가 맥 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 기척을 느낀 건지 햄스터는 쳇바퀴에서 내려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땅굴로 사라졌다. 명주는 조금 전까지 열심히 삐걱거리던 쳇바퀴 위를 만져봤다. 따스한 온기가 손끝에 스쳤다. 명주는 속이 가라앉을 때까지 쳇바퀴를 어루만지다 한숨을 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