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Caroline McFarl

by 주이슬




벌써 네 번째다. 빵빵하게 차 있는 커다란 배낭을 지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저 여자를 발견한 건. 누구나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는 동네 뒷산에 뭘 그렇게 한가득 지고 다니는 건지, 어떻게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묵묵하게 오를 수 있는 건지 볼 때마다 호기심이 일었다.

이직을 준비하겠다며 무작정 일을 그만둔 지 두 달쯤 지났을 시점, 퇴직금으로 연명하는 날들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상념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간혹 여자를 마주치곤 했었다.

여자는 나보다 조금 더 앞서서 걷는 중이었다. 그는 매번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중간쯤에 방향을 틀어 무성한 풀숲으로 사라졌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인적이 드문 쪽을 향하는 듯 보였다. 오늘은 기필코 저 배낭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아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급히 여자의 뒤를 밟았다. 까슬거리는 이파리가 팔과 다리를 긁어댔다. 인적 드문 길이다 보니 여자와 내가 흙을 밟는 소리만 들렸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몸이 뻣뻣하게 굳어 발목이 자꾸만 틀어졌다. 나는 결국 짧은 신음과 함께 미끄러지듯 넘어지고 말았다. 여자는 내가 낸 소리를 듣고 곧장 뒤를 돌더니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선 손을 내밀었다.

“감사…”

“이쪽은 아직 길이 안 들어서 조심하는 게 좋아요.”

여자는 힘을 주어 날 일으켜주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양 배낭끈을 꽉 쥔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흔들림 없이 꼿꼿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20분 정도 더 나아간 후에야 배낭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 다음엔 지퍼를 열더니 무언가를 한 움큼 꺼냈다. 돌멩이였다. 배낭 안은 수많은 돌로 가득 차 있던 것이었다. 저 무거운 걸 매번 지고 올라왔다고? 어떻게? 내가 입을 벌린 채 소리 없이 경악할 동안 여자는 손안에서 돌을 천천히 굴렸다. 맞부딪치며 사각사각 소리를 내던 돌들은 이윽고 쭈그려 앉은 여자의 손에 의해 한 층씩 쌓아 올려졌다. 돌탑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구경하던 중, 여자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올도 빠짐없이 단정하게 올려 묶은 상태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여자의 배낭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쥐어보았다. 매끈하다가도 곧바로 거칠어지는 촉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자는 내가 돌을 쥐든 돌팔매질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거기에 용기를 얻어 조금 떨어진 자리에 쭈그려 앉아 돌을 하나씩 쌓아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견고한 돌탑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내가 올린 돌들은 금방 균형을 잃은 채로 흔들리다 쓰러지길 반복했다. 반면 여자의 것은 위아래로 접착제라도 붙인 건지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여자의 돌탑을 계속해서 곁눈질로 관찰해 가며 돌멩이를 쌓아 올렸다.

쌀쌀한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나뭇잎이 쏴 소리로 화답했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덧 햇살이 물러나고 있었다. 산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곧 어두워질 것이다. 여자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끙’ 소리를 내며 허리를 편 다음 가볍게 스트레칭했다. 그리곤 자신이 쌓은 돌탑들을 망설임 없이 무너트렸다. 내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정돈하던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와르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돌은 여자의 배낭 안으로 돌아갔다. 나도 여자를 따라 허겁지겁 쌓은 것들을 무너트린 후 주워 담기를 반복했다. 배낭 안에서 서로의 손이 스칠 때마다 잠깐이나마 따스한 온도가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나 역시 뒷산을 오르는 날이면 돌탑을 쌓아 올렸다. 여자가 없는 날엔 흙 아래 묻혀있는 돌을 하나하나 파내서 쌓아야 했다. 손톱 사이로 흙이 끼었다. 까끌까끌한 감촉과 풋풋한 향이 본래의 내 것처럼 친숙했다. 두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쌓다가 주변이 고요해지면 돌탑을 무너뜨린 다음 그 위로 흙을 덮고 자리를 떠났다.

여자는 그 많은 돌을 어디서 가져와 왜 다시 들고 가는 걸까? 나는 튼튼한 배낭을 하나 구해서 5kg짜리 아령 두 개를 넣어 다니기로 했다. 길을 오르다 문득 양어깨에 실린 묵직함이 느껴지면 절대 때 묻혀선 안 되는, 고결한 것을 들고 다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절로 경건해졌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친구들의 물음에는 돌탑 사진을 보내줬다. ‘도 닦는 중.’ 같은 말을 장난스럽게 덧붙이며. 친구들은 매일 직장과 부동산, 주식 이야기를 했지만 내 관심사는 그런 것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대신 어떻게 하면 그 여자처럼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을지 궁리하기에 바빴다. 잠자리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머리를 꼼꼼하게 올려 묶는 것이 되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 하던 산행도 거의 매일 다닐 정도로 잦아졌다. 여자와도 여러 번 마주치다 보니 제법 말을 트게 되었다. 이제는 서로를 곁에 두고 돌탑을 쌓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를 마주치지 못한 날이면 괜히 아쉬워졌다. 이름은 무엇인지, 내 또래 같은데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왜 돌탑을 쌓기 시작했는지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지만 여자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 역시 여자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몸을 감싸는 옷감이 포근해지는 계절의 문턱에 들어섰다. 오랜 친구 주원이의 승진을 축하하는 저녁 약속이 잡혔다. 만날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돌탑을 쌓으면서 어떻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는지, 이게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얼른 알려주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에 집중할 때까지만 해도 붕 뜬 기분은 계속되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상상했던 만큼 저녁 자리가 유쾌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그동안 어떻게 치열히 살아왔는지, 덕분에 직장에서 어떤 위치가 되었는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끼어들 틈이 없으니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예진이는 어떻게 지내? 요즘도 돌탑 쌓으면서 도 닦나?”

한참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은 주원이의 물음에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그거 매일 하지 않아? 그것도 몇 시간씩.”

“돌탑을 쌓는다고? 왜?”

친구들의 가시 없는 물음에 되레 내 마음이 뾰족해졌다. 그와 동시에 얼굴과 목에 열이 확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에이, 무슨 매일까지야. 몇 시간 내내 돌멩이 붙들고 있을 시간이 어딨냐. 이직 준비하느라 정신없지, 나도. ”

내가 하는 말들이 곧장 비수가 되어 가슴에 콕콕 박혔다.

“그래,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공백 기간 길어지면 면접 볼 때 그동안 뭐 했냐고 물어본다? 그때 돌탑 쌓았다고 할 순 없잖아. 할 말 없으면 끝인 거야.”

전부 맞는 말이라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걸 조용히 받아들이는 수밖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방향이니 태워주겠다는 주원이에게 볼 일이 있다는 말로 둘러대고 홀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뭐라도 해야지’ 주원이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그동안 뭐라도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친구들과의 만남 이후로 돌탑 쌓는 일은 그만두었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날들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뒷산을 찾았다. 더 이상 배낭에 아령을 넣어 다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무거웠다. 생각을 줄이려고 시작한 산행이었지만 길 위를 오르는 동안에도 잡념은 쉬이 떨쳐지지 않았다. 흙에 파묻힌 돌을 줍다가도 이내 내려놓고 몸을 돌리는 날들이 반복됐다.

매번 관성처럼 돌탑을 쌓던 장소로 발길이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두 발은 착실히 움직여 정상이 아닌 샛길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서 여자의 형상이 보였다. 오랜만에 마주치는 거였다. 여자는 매번 그래왔듯 묵묵하게 돌을 하나씩 쌓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날 돌아보곤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건넸다. 한 올도 삐져나오지 않은 채 단정하게 묶여있는 머리카락. 무의식적으로 내 목덜미 부근에 손을 갖다 대보았다. 분명 꼼꼼히 묶은 것 같았는데, 그새 한껏 흐트러져 잔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한숨을 쉬고 머리를 풀어 헤친 뒤 여자에게 다가갔다. 나도 모르게 날 선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돌탑은 왜 자꾸 쌓으시는 거예요?”

“네?”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놀란 듯 여자의 눈이 약간 커졌다. 조금 민망해서 작게 심호흡하고 다시 물었다.

“계속 쌓고, 무너트리고. 또 쌓아 올려도 어차피 다시 무너지고.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도 매번 반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해서요.”

여자는 배낭 속에서 돌멩이를 한 움큼 쥐었다.

“의미.”

두 음절을 뱉은 뒤 한동안 생각에 빠진 채 손안의 돌을 굴리고 있던 여자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글쎄요, 애초에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러고 보니 이런 의미가 있었네요’ 같은 부연 설명을 기대했지만 뒤따라오는 말은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돌멩이만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꾸준히 올라갈 뿐이었다. 나는 여자의 대답 아닌 대답을 곱씹으며 돌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계속 지켜봤다. 어느덧 햇살이 물러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자는 어김없이 돌탑을 무너뜨렸다. 아까 풀어헤쳤던 머리칼이 이리저리 휘날려 시야를 가렸다. 나는 머리를 대충 묶었다. 그리고 여자 옆에 쭈그려 앉아 무너진 돌들을 차곡차곡 주워 담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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