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지 않는 문

이미지 출처: Unsplash의Kilian Seiler

by 주이슬




저 멀리 효연 아주머니네 집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곳에 서 있는 네 사람이 누군지 단박에 알아봤다. 엄마랑 아빠, 유나네 이모, 이장님이었다. 네 사람은 동그랗게 모여서 이마를 맞댄 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유나네 어머니도 그 모습을 발견했는지 점차 걸음이 빨라졌다. 거기에 맞춰 내 발도 자연히 바빠지다가 결국 꼬리로 도움닫기를 해가며 뜀박질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매캐한 냄새가 났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는 아니었다. 나는 몇 차례 코를 킁킁대다가 발을 멈추곤 우뚝 섰다. 팔뚝부터 꼬리 끝까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매캐한 냄새에는 풋풋한 향이 약하게 섞여 있었다. 바로 시누대를 태울 때 나는 냄새였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뛰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보통 시누대를 태우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일 년에 한 번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견하할매에게 산신제를 지낼 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름아, 멍하니 서 있지 말고 퍼떡 집으로 들어가라!”

아주머니는 나를 우리 집 마당으로 떠밀다시피 한 뒤 빠르게 멀어졌다.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가만히 선 채로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이마를 맞대고 있던 세 사람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누대를 하나씩 집어 들고는 온 집안과 바깥 주변을 돌아다니며 향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진한 연기가 바람에 실려 우리 집 가까이로 날아왔다. 눈이 따가워서 꼭 감았다. 연기가 날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장님이 큰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하자 단단한 목소리가 지면을 타고 내 발바닥을 울렸다. 그 진동에 맞춰 내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또 한 가지는…….”




“주춤이가 태어나면 일주일 동안 집에 머무른 다음 보호소로 보낸다. 왜 그러는지 아는 사람?”

도훈 아저씨의 경쾌한 질문에 교실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나는 아저씨랑 눈을 마주치면 대답해야 할까 봐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괜히 꼼지락거렸다. 주변을 슬쩍 훔쳐보니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저씨는 짧은 인내심을 발휘해 우리의 대답을 기다려준 뒤, 이윽고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을 이었다.

“니네도 알다시피 보호소가 있는 쪽은 환경이 조금 척박하다. 농사 짓기에는 땅이 걸지 못하거든.”

‘근데 왜 하필이면 그런 곳에 보호소를 지었어요? 더 좋은 땅에서 만들면 되잖아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은 입 안에서만 빙빙 돌다 결국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했다. 그런 질문을 하면 어른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았고, 어른을 곤란하게 만들면 혼날 것 같았다.

“험한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우째야겠노? 견하할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호소에 보내지 않고 일주일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기도해 주는 거야.”

그러더니 아저씨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감싼 보자기를 꺼내 교탁 위에 조심스럽게 펼쳤다. “자, 이거 뭔지 모르는 아 없제?” 아저씨가 물으니 그제야 아이들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시누대요!”하고 외쳤다.

“맞다. 우리 일 년에 한 번씩 제 올릴 때 이거 태우는 거 잘 알고 있제? 제단 터 근처에 억수로 빽빽한 시누대 밭이 있다아이가. 니네 그쪽으로는 절대 가면 안된다이. 거기는 길이 안 나 있어가 잘못하다가는 굴러 떨어지뿐다.”

아이들이 살짝 웃으니 아저씨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알아들었나?”라고 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말이 이어졌다.

“자, 시누대를 태웠을 때 발생하는 연기에는 견하할매의 신성한 효험이 담겨 있다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주춤이가 태어난 집에는 이걸 태워가 온 집안에 밀어 넣어야 한다. 그럼 그 향이 약 일주일 정도 가거든? 그 시간 동안 주춤이는 집에 있으면서 정화랑 보호를 받고 벼룻길마을에 가서도 잘 지낼 수 있게 되는 거라.”


말을 마친 뒤 다시 고운 노란색 비단 보자기로 시누대를 감싸던 아저씨의 미소가 눈앞에 달라붙어 한동안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 아저씨는 알았을까? 아주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가 주춤이라는 사실을. 아저씨는 저 집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뭘 하고 있을까. 가만히 서 있을까? 울고 있을까? 화를 낼까? 웃고 있지 않을 것만은 확실했다.

태어난 아기는 일주일간 집에서 머물다가 곧장 보호소가 있는 벼룻길마을로 갔다고 한다. 보호소에 가려면 후동지를 건너야 한다. 보통은 이장님이 혼자서 데리고 가거나 부모님과 함께 간다. 동네 어른들과 부모님들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만, 귀동냥으로 대충 분위기를 파악해 보니 아기는 이장님이랑 단둘이 떠난 것 같았다.

“그래서 애기 이름은 뭐로 지었다는데?”

내가 엄마나 아빠에게 물어볼 때마다 두 분은 어물쩍 넘어가며 대답을 시원하게 해주지 않았다. 난 그 애가 ‘하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어쨌는지 알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여자 아기인지 남자 아기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기가 태어난 날 이후로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집 밖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작은 텃밭과 논을 돌보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한창 바빠야 할 철이지만 그 집 문은 도무지 열리는 법이 없었다. 항상 파릇파릇했던 마당의 풀과 꽃은 노란빛을 띠며 시들해졌다.

나는 괜히 그 집 앞에 앉아서 소꿉놀이를 했다. 그러면 언제라도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아름아, 니가 좋아하는 수박 사놨다. 얼른 무러 들어온나.”라고 말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소리 높여 혼잣말하는 내 목소리를, 콧노래를 들었을 법한데도 화답하는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면서 온 마을 사람들이 심심하면 도랑에 물놀이하러 가는 시기가 다가왔다. 견하산이 감싸고 있는 후동지는 수심이 3m 이상 되는 매우 깊은 저수지라 여기서 노는 것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몇 언니나 오빠들은 그곳에서 겁도 없이 수영을 하곤 했는데, 나도 따라 들어갈라치면 성난 표정을 하며 쫓아냈다.

나는 바다 위에 누워서 둥둥 떠 있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수심이 얕은 도랑이나 너무 깊은 저수지보다는 병포리 바닷가로 자주 나갔다. 가서 실컷 놀다가 배가 고파질 때쯤 햇빛에 몸을 말리며 집으로 걸어 돌아왔다. 사십 분가량 끝없이 앞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물기는 다 날아가 있었고 팔을 훑은 손가락에는 짠 내가 끈끈하게 묻어났다.

나는 곧 물놀이에 열중하느라 옆집 근처에서 소꿉놀이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매일 밖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그 집을 꼭 한 번씩 쳐다보곤 했다. 간혹 마당에 빨래라도 널려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 외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말이다. 마당에는 무성한 잡초가 자라 뭐가 원래 키우던 풀이고, 뭐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가끔 그 집 마당에 들러 잡초로 보이는 것들을 잠깐 뽑고, 가던 길을 계속 향하기도 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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