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포물선의 끝

사진: Unsplash의Oleksii Piekhov

by 주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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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을 실은 나룻배가 저수지 위를 휘청거렸다. 영욱이가 노를 맡아서 저었지만, 배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수면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저수지에 빠질까 봐 겁이 난 나는 양 손으로 배 난간을 꼭 잡았다.

“잘 좀 해봐라!”

유나가 타박하자 영욱이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성실하게 노를 저었다. 한참 제자리만 돌던 나룻배는 드디어 철벅, 쏴. 철벅, 쏴. 하는 규칙적인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진짜 여기로 쭉 가면… 주춤이들 볼 수 있는 거 맞나?”

영욱이가 힘을 주느라 끙 소리를 내며 물었다.

“맞다고. 몇 달 전에 이장님이 그 괴물 버리러 갔다아이가. 그때 어디로 가는지 몰래 봤다.”

경아의 대답에 나는 입안을 살짝 깨물었다. 경아는 천진하게 검지를 앞으로 쭉 뻗으며 풀이 무성하게 나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짝에 잘 보면 길이 쪼매하게 나 있다. 절로 델꼬 가더라.”

유나는 경아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조약돌을 집어 물수제비를 띄웠다.

“야, 그만 던져라! 몇 개 안 남았다고.”

경아의 핀잔이 무색하게 다시 한번 퐁, 퐁 물수제비 뜨는 소리가 퍼졌다. 유나는 조약돌이 가라앉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꼬리를 좌우로 붕붕 흔들더니 털썩 앉았다. 배가 한차례 출렁였고 영욱이가 비틀거렸다. 유나는 난간을 꼭 붙들고 있는 내 팔뚝을 쿡 찔렀다.

“뭔 생각하는데?”

나는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우리 진짜 이런 짓 해도 되나?”

“개않다. 금마들은 천벌 받은거다아이가. 우리가 혼내주러 가는 건데 뭐.”

유나는 다정하게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귀에 열이 확 올랐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저수지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어른들이 천벌 받은 거 아니라 캤다 아이가.”

“우리 앞에서만 그래 말하고, 뒤에서는 다들 맞다 카더만 뭘.”

“맞다. 다들 그칸다.”

경아가 맞장구쳤다. 우리 엄마 아빠는 안 그런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말이 속 시원하게 나오지 않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유나는 내 손을 다시 한번 힘주어 잡았다.

“유나 니는 아름이만 좋아하고. 그거 차별이다.”

아까부터 왠지 살짝 심술이 나 있던 경아가 대뜸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선은 우리의 손 쪽을 향해 있었다. 나는 민망해져서 유나에게 잡힌 손을 슬쩍 빼낸 다음 뒤를 돌아 목을 쭉 빼고 어디쯤 왔는지 가늠해 보았다. 저수지 너머로 무성하게 우거진 풀과 여러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덧 나룻배를 겨우 댈 수 있는 작은 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다가갈수록 풀이 우거진 곳 사이로 작게 오르막길이 나 있었다. 경아 말대로였다.

“길이 억수로… 쫍은데. 저기로 갈 수 있는 거… 맞나?”

노를 쉴 새 없이 젓느라 얼굴이 빨개진 영욱이가 거친 숨과 함께 겨우 말을 뱉어냈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유나는 대답과 함께 영욱이의 노를 받아 들고 대신 젓기 시작했다. 몇 초간 빙빙 돌던 배는 곧 방향을 잡고 앞으로 시원하게 나아가더니 눈 깜짝할 새 나루터 앞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양손과 주머니에 조약돌을 가득 챙긴 다음 배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나도 돌멩이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배에서 내렸다. 길은 누가 일부러 낸 게 아니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 것 같았다. 험하고 가파른 데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땅이 상당히 질어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발이 갈 길을 잃자 다리도 휘청거렸다. 꼬리로 중심을 잡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길게 자란 풀들을 양손으로 쥔 채 겨우 따라갔지만 이미 친구들은 저 멀리서 걷고 있었다. 그렇게 5분쯤 더 갔을 무렵, 유나가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길이 좀 험하제?”

“어…. 내가 겁이 많아가꼬. 이런 길은 잘 못 걷겠다.”

나는 괜한 말을 덧붙이며 유나의 손에 의지했다. 길은 상당히 좁았지만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지는 않아서 한 방향으로 쭉 나아가기만 하면 됐다. 조금 더 오르자, 길이 점점 평탄하고 넓어졌다. 완만하게 이어진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니 멀리에 큰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저기에 주춤이들이 살고 있는 거가?”

유나의 질문에 경아가 “맞을걸?”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숨을 고르며 조용히 동태를 살폈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한 공기가 마음을 짓눌렀다. 친구들은 돌멩이를 하나씩 손에 꼭 쥐었다. 나도 아까 주머니 안에 쑤셔 넣은 걸 꺼내서 살짝 쥐어봤다. 뾰족했다.

“야, 나왔다! 나왔다고!”

영욱이의 호들갑에 우리는 건물을 응시했다. 커다란 건물에서 몇 명의 주춤이들이 나왔다. 우리보다 더 어린 아이들부터 한참은 커 보이는 언니 오빠들까지.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나이대는 다양했다. 대부분 꼬리가 아예 없거나 손바닥 정도로 짧아서 옷 밖으로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나는 내 꼬리를 손으로 훑어봤다. 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 것은 훨씬 더 길고, 오히려 튼튼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몇 발짝 걸을 때마다 휘청이거나 멈춰 섰다. 지팡이를 짚은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막상 그럴 용기는 없었고, 한편으로는 닿기 싫은 마음이 어중간하게 공존했다.

나무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던 유나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꼬리를 이리저리 휘적이더니 지면을 단단하게 디딘 다음, 힘껏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경아와 영욱이도 따라서 돌을 던졌다. 휙 소리가 무자비하게 허공을 갈랐다. 꽤 멀리서 던진 탓에 대부분의 돌멩이는 보호소 근처까지 닿지 못했다. 지면에 돌이 떨어질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그러던 중 유나가 던진 돌 하나가 제법 멀리까지 날아가 아슬아슬하게 사람들의 발치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주춤이들이 우리를 발견했다. 나는 저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여기까지 뛰어와 지팡이로 우리를 위협하는 상상을 했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주춤이들은 경계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묘한 대치가 이어지던 중, 주춤이 한 명이 진흙에 박혀 있던 돌멩이를 집어 들어서 우리 쪽으로 힘껏 던졌다. 돌은 짧은 거리를 힘없이 날아가다 금방 땅으로 떨어졌다. 그 주춤이는 자신이 던진 돌과 운명을 같이하기라도 한 듯 비틀거리며 고꾸라졌다. 유나가, 경아가, 영욱이가 그 모습을 보며 신나게 웃었다. 경쾌한 웃음이었다.

잇몸까지 시원하게 드러내며 웃던 유나와 굳어 있던 내 눈이 마주쳤다. 손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무언가를 종용하는 듯한 그 시선에 나도 눈을 꼭 감고 돌을 던졌다. 팔을 최대한 뒤로 젖히고, 두 발과 꼬리에 힘을 준 다음 손을 힘껏 뻗었다.

돌이 휙 날아가면서 한 아이의 발치에 떨어졌다. 경아랑 영욱이가 환호하며 내 양어깨를 두드렸다. 유나도 “내보다 더 잘 던지는 거 같노.”라며 한 마디 했다. 친구들의 반응에 슬쩍 자신감이 붙은 나는 경아에게서 돌을 하나 건네받은 뒤 한 번 더 집어 던졌다. 이번엔 돌이 직선으로 빠르게 꽂히지 않고 긴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갔다. 거기 서 있던 모두의 고개가 돌을 따라 돌아갔다. 우리가 고개를 멈춘 곳엔 고작해야 네 살배기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서 있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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