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타기

사진: Unsplash의Roman Petrov

by 주이슬

유나와 헤어진 뒤 집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조금씩 느려지다가 곧 한 자리에 멈춰 섰다. 호연 아주머니와 도훈 아저씨가 마당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삽으로 마당 흙을 퍼 올리는 중이었고, 아주머니는 그 옆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마치 매일 마주친 것만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나는 어딘가에 잠깐 숨어 있다가 두 분이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집 근처에는 논만 널찍하게 펼쳐져 있을 뿐, 숨어 있을 만한 곳은 딱히 없었다. 그 집 마당을 반드시 지나야 우리 집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한참을 서성이던 나는 결국 다리가 아파져서 바닥만 내려다보며 조용히 집으로 걸어갔다.

“아름이가? 어데 댕겨오노?”

아저씨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나는 우물쭈물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아주머니는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잡초를 뽑는 데 집중하셨다. 나는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아까 쑤셔 넣었던 돌멩이가 여전히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손끝이 불편했다.

“그냥…. 후동지요.”

“거기서 물놀이하면 안 된데이? 억수로 깊다.”

“네….”

“우리 집 앞에 감하고 밤하고 가져다 놓은 거 아름이 니 맞제? 고맙데이.”

아저씨가 살짝 웃었다. 나도 함께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도무지 입꼬리가 올라가지를 않았다.

“너거 부모님은 잘 지내나?”

아주머니의 미묘하게 날이 선 목소리가 아저씨와 내 사이를 불쑥 갈랐다. 안 그래도 불편했던 나는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네, 잘 지내세요.”

“맞나? 한 번을 안 찾아오길래. 뭔 큰일이라도 났나 했제, 나는.”

“…….”

나는 손가락으로 조용히 윗입술을 뜯으며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우리 부모님은 왜 한 번을 안 오셨을까? 바빠서?

“그래도 아름이는 우리 꼬박꼬박 찾아와줬다아이가, 맞제?”

아저씨의 말에 네, 라고 대답하려던 찰나 또다시 날이 선 목소리가 날아왔다.

“뭐 한다고 오노, 오기는. 구경이라도 할라꼬?”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주머니는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그냥 찾아왔던 건데요….”

“와?”

‘와?’ 그 한 단어를 곱씹으며 도훈 아저씨를 쳐다봤다. 내심 도와주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아저씨는 묵묵히 땅을 파는 데만 집중할 뿐 더 이상 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걱정돼서요.”

아주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뭐가 그래 걱정됐는데? 내랑 아저씨 꼬리도 갑자기 없어질까 봐?”

아주머니의 비아냥이 계속될수록 점점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그동안 호의를 베풀었으면 베풀었지, 두 분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비난받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니 정도면 양반이다. 니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안 찾아오더라. 그동안 우리가 도와준 게 얼만데. 기가 막혀가꼬.”

“…….”

“고마 하소. 아름이 니도 그만 가 봐라.”

가만히 서서 아무 말도 못 하던 나는, 아저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한 번 끓어오르기 시작한 감정은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아서,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아주 세게 닫는 것으로 표출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내한테 지랄인데, 지랄이. 성격이 저 모양이니까 지들 똑 닮은 주춤이 같은 거나 낳았지.”

씩씩거리며 중얼거리듯 욕지거리를 뱉었다. 가족들 앞에선 물론이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나 혼자일 때도 한 적 없었던 것이 욕이었다. 난생처음 입 밖으로 뱉어보니 어마어마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뒤이어 묘한 쾌감이 따라온 것도 사실이었다.

마음이 진정되는 듯하더니 곧장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혹시나 내가 보호소에 가서 돌팔매질한 걸 들킨 걸까? 그러다 한 아이의 머리에 맞은 게 마을까지 소문이 난 걸까? 그래서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화가 난 걸까? 그때, 부모님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루 종일 이웃집 보수를 도와주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괜히 두 분 앞을 알짱거리면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한 번을 웃지 않았고, 정말로 내가 보호소에 돌을 던졌다는 소문이 귀에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도 꾸중을 듣는다거나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고, 나는 잠에 들 시간이 되어서야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침대에 눕기 전 창문 앞에 가서 섰다. 정말 오랜만에 옆집에서 노란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마냥 반가워질 줄로만 알았지만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 이후로 밤마다 옆집을 살피는 일은 그만두었다.


보호소에 찾아가서 돌팔매질하는 것도 첫날 이후로는 따라가지 않았다. 죄책감이 크기도 했고, 소문이 났을 때 혼날까 봐 두려운 게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미 나와 함께 했던 세 아이가 자랑스레 늘어놓은 무용담으로 인해, 우리 분토골마을뿐만 아니라 후동리의 다른 마을 아이들까지 그 일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마주치는 아이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너도나도 주춤이를 혼내주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아이들 사이에서 나와 유나, 경아, 영욱이는 처음으로 단죄를 시작한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위치가 마냥 싫진 않았다. 또래들은 유나처럼 힘센 친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어 했지, 키와 몸집이 작고 꼬리도 볼품없는 나에게 딱히 관심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으로 쏟아지는 관심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벼룻길 마을로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룻배 주인이 꼭 나와 세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우리에게 사용 허락을 구했다. 노를 어떻게 하면 잘 저을 수 있는지, 돌팔매질은 어떻게 해야 더 멀리 날아갈지 일일이 물어봤다.

그쯤 되니 나는 아이들을 부추기는 역할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테면 “주춤이들은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라고 하거나 “어른들은 주춤이 새끼들이나 우리나 똑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지들도 우리 몰래 뒤에서 주춤이 욕 존나게 해댄다.” 같은 말들을 서슴없이 했다. 비속어는 한 번 내뱉는 게 어려웠지, 이후엔 자연스러운 추임새 중 하나가 되었다. 욕할 때마다 매번 콩닥거리던 가슴도 적응된 지 오래였다.

내가 들려주는 영웅담 중에서 아이들이 제일 많이 환호할 때는 내가 그 어린 주춤이의 정수리에 돌을 맞춘 대목이었다. 나는 갈수록 살을 붙여가며 얼마나 그게 짜릿했는지, 그때 나는 얼마나 고귀한 사명을 띠고 있었는지 등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녔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도 나를 따라서 주춤이들 욕을 했다. 그때 느껴지던 고양감이란.

하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떠든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옆집 마당이 눈에 들어올 때면 내가 그날 한 말과 행동들이 죄책감으로 무겁게 돌아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짓눌러댔다. 나는 그렇게 괴로움과 즐거움 사이에서 매일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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