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진: Unsplash의Bruno Thethe

by 주이슬

몇 주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옆집에 초대받았다. 호연 아주머니와 도훈 아저씨는 평소처럼 음식을 대접해 주고 후식을 먹으며 우리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네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아주머니가 아기를 가지고, 둥글게 불러온 배를 나와 함께 쓰다듬어보고, 어떤 아이일지 궁금해하고, 낳은 뒤 보호소로 보낸 일이 마치 내 꿈속에서만 존재했던 알 같았다. 그게 무척 어색했지만, 그래도 다시 옆집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몇 가지 의문 사항은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파전이며 갈비찜까지 다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은 날 이후, 다시 서로의 집에 들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어떤 친구들은 주춤이에게 돌팔매질하러 매일 나루터를 밥 먹듯이 가는 한편, 나는 주춤이를 낳아서 슬퍼했던 이들의 말동무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스스로 제법 기특했다. 그날 역시 마을 친구들에게 돌 던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 뒤 집에 돌아온 나는, 부모님과 함께 옆집을 방문 중이었다. 거실에 둘러앉아 따끈한 결명자차를 마시면서 뱃속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는 열기를 만족스럽게 즐기던 찰나, 멀리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보소. 있능교?”

이장님 목소리였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쳐다봤다.

“우리 찾나 본데?”

그리곤 문밖으로 나가며 “여 인니더.”라고 대답했다. 그 후 현관문이 닫혀서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심 찔리는 게 있었던지라, 나는 좀처럼 자리에 앉질 못하고 초조하게 창문 앞을 서성거리며 어두워지는 아빠의 낯빛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아름아, 앉아라 쫌. 분답구로.”

결국 엄마가 핀잔을 주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현관문이 열리고, 굳은 표정을 한 아빠가 “민아름이, 나온나.”하고 불렀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장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선뜻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굳게 닫힌 입에서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까 불안했다.

“안녕하세요.”

뒤늦게나마 인사를 전해봤지만 침묵은 계속해서 길어졌다. 두 다리가 뻐근하게 아파져 올 때쯤에야 이장님이 운을 띄웠다.

“야야, 니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보호소 댕겨오는 거 알고 있나?”

나는 손가락을 조물거리며 답했다.

“몰랐어요.”

이장님이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아까도 옷가지랑 먹을 걸 좀 갖다줄라고 후동지로 갔그든? 근데 나룻배가 없는 거라. 딱 보이까네 반대짝에 가 있어. 한참 기다리니까 아들 몇 명이 벼룻길마을 쪽에서 내려오데.”

“…….”

“걔네가 뭐 하고 왔는지는 니가 제일 잘 알제?”

“네….”

“다시는 그카지 마라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죄송해요”라고 대답하자, 이장님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아빠에게 목례했다. 그 다음엔 내 어깨 너머로 다시 한번 목례하고 다른 집으로 향했다.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른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엄마의 표정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점마를 우짜면 좋노’하는, 내가 크고 작은 사고를 칠 때마다 봤던 것이었다. 아저씨랑 아주머니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화가 난 것 같기도,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빠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눈치를 힐끔 살피며 훈계를 시작했다.

“걔네는 우리보다 약하다아이가.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괴롭히면 안 되지.”

크게 꾸중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온화해서 마음이 놓였다.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곧장 억울함이 들어찼다. 잘한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매일 보호소를 방문하는 다른 아이들과 나는 분명히 달랐다. 돌을 던지러 가는 것도 첫날에만 했을 뿐이지, 그 이후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찜찜했다. 나는 조용히 있기보단 변명하는 쪽을 택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 앞이라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다.

“그래도 내는 한 번밖에 안 그캤다.”

아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변명 아닌 변명이 되려 아빠의 화를 부추긴 것 같았다.

“횟수가 중요하나 지금.”

내가 대답이 없자 쌀쌀맞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니는 친구들이 괴롭히면, 한 번만 괴롭혔으니까 넘어가야지 할 거가?”

“걔네는 내 안 괴롭히거든?”

“우째 확신하노, 그걸.”

“안 괴롭힌다고.”

“친구들이 니 꼬리 쪼매하다고…”

“쪼매나다고 하지 마라!”

나도 모르게 씩씩대면서 받아치자 아빠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그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를 이겼다는 정복감 비슷한 것에 휩싸인 상태이기도 했고, 내가 언젠가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 가정한 아빠가 상당히 미웠다. 그 입을 완전히 다물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쐐기를 박아야 했다.

“괴롭히러 간 거 아니고 혼내주러 간 거그든? 알지도 못하면서.”

“혼내주긴 뭘 혼내준다는 거고?”

“금마들은 애초에 태어나면 안 됐는데 주제도 모르고 태어난 거다아이가!”

“민아름이!”

“엄마 아빠도 그렇고 다른 어른들도 다 똑같다. 우리보고는 걔네한테 잘해줘야 한다고 하면서. 지들은 뒤에서 그 새끼들 욕하고 비웃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내만 아나? 우리 동네 애들 다 안다!”

“그만 안 하나, 니?”

뒤에서 듣고 있던 엄마가 내 등짝을 한 대 때리며 성을 냈지만, 한 번 억울함이 밀려오자 이상하게도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엄마랑 아빠도 그렇게 생각한다아이가? 그카이까 아줌마랑 아저씨가 주춤이 낳고 나서 한 번도 안 찾아온 거잖아! 엄마랑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나는 금마들 욕하면 안 되고 왜 혼내주면 안 되는데? 왜!”

뒷골이 당겼다. 스스로가 쏟아내는 두서없는 철자들에 압도돼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씨발. 내한테만 지랄하고, 다들 진짜.”

옷소매로 마구 솟아나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나 하던 말들을 부모님 앞에서 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는지,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하는 중이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진정되고 나서야 아저씨 아주머니가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두 분은 언제 들어갔는지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부모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 셋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자….”

나중에야 들려온 아빠의 목소리엔 맥이 빠져 있었다. 우리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서 내가 한 말들을 곱씹어봤다. 부모님은 내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 자고 일어난 뒤에도, 며칠이 지난 후에도 이날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옆집 아기가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의 일상에서 사라졌듯이, 그날 일도 마찬가지였다. 옆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나를 평소처럼 대해줬지만 괜찮다거나, 너를 용서한다거나, 그러면 안 된다거나, 혹시 아기를 본 적이 있느냐는 등 관련된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나는 죄책감에 그 집에 가는 횟수를 점차 줄여나가다가, 결국엔 발길을 끊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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