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Tatiana Rudn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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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의 끝자락, 그날은 마을에서 일 년에 한 번 지내는 산신제가 있는 날이었다. 경상도 쪽이 대부분 그렇듯, 내가 살던 포항 역시 일 년 중 눈이 오는 날이 손에 꼽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 동물적인 감각으로 지금 눈이 오는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시원한 냄새가 집안 벽지에 스며 있고, 쥐 죽은 듯 세상이 고요해지면 눈이 내린다는 표시였다. 창문으로 다가가니 발이 푹푹 묻힐 정도로 눈이 꽤 쌓인 상태였다. 나는 옷도 제대로 걸쳐 입지 않은 채 밖으로 후다닥 나가, 혼자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다. 꼬리나 손가락에 흰 눈이 닿을 때마다 차가운 감각이 선명했다.
제는 보통 오전 11시쯤 시작돼서 오후 3시경에 끝났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어른들은 요리하고 제단을 닦고 근처를 정리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가 눈에 정신이 팔려 밖에서 노는 게 어른들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한참을 놀다가 허기가 질 때쯤 집으로 돌아가니 음식을 하느라 주방에선 식기가 달그락거렸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 집은 매년 동그랑땡을 만들었는데, 갓 구워진 따끈따끈한 동그랑땡을 입에 넣고 씹었을 때 쭉 퍼지는 육즙, 중간중간 씹히는 정구지의 향긋함, 담백한 두부의 조화는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것이었다. 짭조름한 간장에 살짝 적신 동그랑땡, 김치 한 점, 밥 한 숟갈이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접시에 담아준 동그랑땡을 허겁지겁 먹는 날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그 표정을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박고 먹는 데 집중하는 척을 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거울 앞에서 꼬리 모양을 확인할 때면 우리 부모님은 “밥 잘 먹으면 꼬리는 금방 자랄 거니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라”며 내 고민을 일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을 하는 부모님의 표정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특히 근 몇 달간은 밥을 잘 먹으면 될 거라는 등의 경쾌한 해답도 듣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즈음의 나는 오래 걸으면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마을 회관이나 집에서는 꼭 벽을 짚고 걷는 게 습관이 되었다. 걸을 때마다 발이 꼬여서 넘어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뛰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 뜀박질할 때도, 갑자기 방향을 틀면 중심을 잡지 못해서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나는 이끼가 가득 낀 바위를 겁 없이 신나게 오르던 아이에서, 그 모습을 구경만 하는 아이가 되었다. 키는 여전히 또래보다 조금 작은 편이었고 살집 역시 잡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키는 작년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커졌는데 꼬리는 열세 살 때의 모양 그대로라서, 몸이 자랄수록 그 대비가 도드라졌다.
그 무렵 유나 꼬리는 조금 과장해 보자면 나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보호소에 가서 돌을 던지는 일을 그만둔 지 오래된 또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관심을 줄여나갔지만 유나의 곁에는 언제나처럼 많은 아이가 모였다. 내가 유나와 함께 있을 때마다 아이들은 내 꼬리를 집요하게 바라봤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유나가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꼭 음식 때문이 아니더라도 산신제를 지내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마을 산의 평탄한 길을 쭉 따라가면 후동지가 나오는데, 거기를 지나쳐서 40분가량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 오른쪽 갈림길로 꺾으면 산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시누대 숲에 도착할 수 있다. 어린 견하가 손을 다쳐가며 만들었다는 제단 터가 그곳에 있고, 뒤쪽으로는 빽빽하게 심긴 시누대 숲이 있다. 평소에는 제단 쪽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 때마다 이파리가 사락거리며 합창하는 소리를 듣는 건 산신제가 있는 날에만 만끽할 수 있는 특권과도 같았다.
“민아름!”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언제 들어왔는지 현관문 앞에 유나가 서 있었다.
“가자. 델러 왔다.”
유나의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아 윤기가 흘렀다. 눈동자는 여전히 견하할매처럼 새까매서 다른 색이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길쭉해진 허리, 그 사이로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은 두툼한 옷 밖으로 도드라지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살짝 통통하던 얼굴도 이젠 제법 갸름해져서, 친구라기 보다는 언니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자 유나는 자신의 팔을 내주었다. 유나에게서 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우리 집에 오기 전 제사 음식을 한 주먹 집어 먹고 왔을 것이다.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너거 가는 길 잘 알고 있제?”
여전히 음식을 하느라 정신이 없던 아빠가 튀어 나와 소리쳤다. 그리곤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유나가 날 보며 씩 웃었다. 나는 유나를 잡고 있던 팔을 잠깐 풀고 주방으로 가 양손에 오목하게 물을 받았다. 그리고 문 옆 놓인 화분에 심겨 있는 시누대에 물을 주었다. 투명한 방울이 맺힌 파란 이파리가 오늘따라 더욱 싱그럽게 빛났다.
“니 오늘 시합 나가나?”
집 밖을 나서며 유나에게 물었다.
“높이뛰기는 당연히 나갈 거고. 이번에는 줄다리기도 나갈 수 있다고 허락받았다.”
매년 제를 올리고 음복을 한 다음엔 여러 가지 시합이 펼쳐졌다. 원래 줄다리기는 성인들만 참여하는데, 유나처럼 신체 능력이 좋은 애들은 예외로 끼워주기도 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유나의 몸 뒤에서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꼬리를 바라봤다. 나도 작년까지는 높이뛰기에 참여했었는데 올해는 다칠 위험이 있으니 자제하기로 부모님과 약속을 한 상황이었다. 묘한 질투심에 잠긴 채 유나의 꼬리에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나가 내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