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Maksym Pozniak-Haraburda
“만약에 니도 참가하고 싶으면, 내가 몰래 도와줄게.”
“어떻게?”
“내가 니 꼬리가 되어 주는 거지. 높이뛰기 할 때 뒤에서 니 안고 번쩍 들어주면 된다아이가.”
“하하.” 유나의 말에 웃는 것도 잠시, 발목이 눈 사이로 푹푹 빠져서 걷는 데 집중하느라 말수가 줄어들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턱선 밑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쌓인 눈이 내뿜는 습기와 내 땀이 섞여서, 질척거리는 공기층이 만들어진 듯 온몸이 불쾌했다.
묵묵히 산을 오르자 왼편으로 넓은 후동지가 보였다. 언제 찾아와도 고요한 이곳. 물에 잠긴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쌓인 흰 눈이 유독 외로워 보였다. 작은 나루터에 정박해 둔 나룻배는 밧줄로 여러 겹 단단히 매여 있었다. 아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도록 이장님이 조처한 게 분명했다. 저수지 너머를 쳐다봤다. 벼룻길마을로 향하는 좁은 길이 난 반대편 나루터. 보호소에서도 일 년에 한 번씩 제를 지낼까? 그럼 제단까지 가야 할 텐데, 너무 멀어서 이동이 힘들 것 같다.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을까? 배운 바로는 땅이 척박한 곳이라고 하니 이렇다 할 먹을거리도 충분히 없을 것이고, 음식을 마련하려면 장을 보러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춤이들은 배를 타고 건너와 구룡포 읍내까지 일이 여간 힘들 텐데. 그러고 보니 나룻배는 항상 분토골마을 쪽에만 묶여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오른쪽 샛길로 꺾어 들어갔다. 길은 점점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각자 광주리에 음식과 술을 챙겨왔고, 합심해서 불을 피울 나무 장작이나 큰 솥을 옮기는 이들도 있었다. 조용하던 숲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숨어 있던 동물들이 놀라 더 깊은 곳으로 뛰어 들어갈 때마다 사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은데 길은 좁다 보니, 유나를 꼭 잡고 길가에 붙어서 걸어야 했다. 손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 걸 느꼈는지, 유나가 내 앞으로 와서 무릎 꿇었다.
“업혀라.”
“됐다. 내 잘 걷고 있는데 와 그라노.”
“다칠까 봐 그러지. 눈 와서 길도 질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키득거렸다.
“됐다고.”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절한 뒤 혼자서 앞으로 걸었다. 킥킥거리던 아이들이 “주춤이래요.” “주춤이 새끼가 와 여 있노.”라고 놀리며 더 크게 웃었다. 유나가 벌떡 일어나자 곧장 달음박질쳤지만.
“와 자꾸 고집을 부리노? 한두 번 업혀본 것도 아이고.”
“니가 그카이까 다른 애들이 내보고 자꾸 주춤이라 한다아이가.”
“그럼 넘어지든지 말든지. 승질이고.”
유나는 손을 홱 젓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쫓아가기에는 너무 빨랐다. 어떻게 해서든 제단 쪽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길가에 자라 있는 나무를 손으로 짚어가며 천천히 발을 뗐다. 까끌거리는 나무껍질 사이로 새어 나온 차가운 물기가 손을 적셨다.
지나가던 어른 중 누군가가 “아름아, 일로 온나. 같이 가자.” 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못 본 척 앞만 보고 걸었다. 발이 꼬일까 봐 오랫동안 고개를 푹 숙여서 그런지 현기증이 일었다. 다시 한번 땀이 흘렀다. 나만 한 여름에 뚝 떨어진 것 같았다. 계속해서 걷던 내 두 발 앞에 조금 더 커다란 발이 다가오더니 우뚝 섰다.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구의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가자, 인들아야.”
유나가 다시 팔을 내밀었고, 나는 손에 묻은 흙과 나무껍질 등을 털어낸 다음 그 단단한 기둥 같은 팔을 꾹 움켜쥐었다. 차갑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따라 땀에 젖은 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었다.
어느덧 우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꽉 들어찬 제단 근처에 다다랐다. 견하할매의 모습을 큰 나무 조각상 앞으로 돌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제단 위에는 꺾은지 일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파리가 전혀 누렇게 변하지 않았다는, 새파란 시누대가 놓여 있었다. 뒤쪽으로는 소복한 눈이 쌓인 시누대가 빽빽이 들어찼다.
멀리서 할매 조각상을 구경했다. 눈빛은 굳세었고 탐스러운 머리카락과 꼬리가 발 아래까지 길게 내려왔으며, 온몸에는 근육이 솟아 있었다. 제단 앞에 다다른 마을 사람들은 조각상 근처에 놓인 양동이 안에 손을 담가 맑은 물을 퍼 올린 다음 근처에 뿌려댔다.
나도 유나와 함께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이곳저곳이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양말이 내려가 드러난 발목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양동이에 손을 담갔다. 얼어붙을 듯 차가웠지만, 찰랑거리는 물이 손목을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곧 근처에 물을 뿌린 후 절을 했다. 완전히 무릎을 꿇으면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서 살짝 굽히는 시늉만 했다.
절을 마친 후 우리는 또래 아이들이 모여있는 뒤쪽으로 빠졌다. 어른들이 제단 위에 음식과 술병을 바삐 올리고, 촛대와 향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구경했다. 물을 뿌리는 긴 행렬이 끝나자 웅성거림이 조금씩 잦아들고, 곧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고요해졌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침묵을 깼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하얀 도포를 입고 쪽 찐 머리를 한 이장님이 재단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양손에는 축문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긴 도포 뒤로 삐져나온 꼬리는 미처 다 가리지 못할 정도로 크고 굵었다.
이장님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쭉 걸어가, 축문을 제단 위에 올렸다. 그리곤 잔에 술을 따라 동쪽, 서쪽, 북쪽으로 한 번씩 뿌렸다. 다음엔 절을 했는데, 그때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한번 해야 했다. 좁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몸을 웅크리려니 이리저리 치여 휘청거렸다. 그 모습이 웃겨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절을 마친 이장님은 다시 술잔을 가득 채우고, 음식 위에 올라가 있던 수저를 다른 음식 위로 옮겼다. 이어서 또 절을 한 번 했는데, 이때는 이장님 혼자 하셨다. 일어난 다음엔 두루마리를 펼쳐 축문을 읽었다. 단단한 목소리가 활처럼 날아와 귓가에 박혔다.
두루마리를 다시 둘둘 감은 뒤, 제단 위에 올라가 있던 시누대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장님은 그걸 손에 꼭 쥐고 제단을 한 바퀴 돈 다음, 사람들 주변을 크게 돌아서 다시 한 바퀴 걸었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자 매캐한 연기가 코와 목을 괴롭혔다. 다들 코를 막고 콜록거릴 때, 나는 정화와 보호 효과가 있다는 그 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윽고 이장님이 뒤편에 심겨 있는 시누대 중 하나를 골라서 밑동을 자르고, 제단 위에 새로이 올려두었다. 그 시누대는 시들지 않은 채 다음 산신제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보통 공식적인 절차는 여기서 끝이 난다. 그럼 마을 어른들은 음식을 데우고 나눠주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딱히 할 게 없는 몇몇 사람들은 자리에 남아서 둥글게 손을 굴리며 기도하기도 했다. 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제단 근처로 가 눈을 감고 속으로 기도문을 읊었다. 유나는 그때까지도 조용히 곁에 있어 줬다
‘우리는 산신의 형상을 한 아이들로서 축복을 누리려 합니다. 우리는 견하할매의 모습을 한 자들을 사랑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읊던 말들이 그날따라 마음을 쿡쿡 찔러댔다.
‘우리는 풍요를 기쁘게 나눕니다.’
누구와 기쁘게 나눈다는 것일까? 척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벼룻길마을의 주춤이들을 뜻하는 걸까? 왜 처음부터 함께 풍요히 지내면 안 되는 걸까?
‘우리는 힘을 이로운 곳에 씁니다.’
작년, 보호소에 가서 돌을 던졌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던진 돌멩이에 머리를 맞아 자지러지게 울던 어린아이를.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나누어 가집니다. 우리는 외로운 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유나의 팔을 조금 더 꽉 부여잡았다. 그 아이는 나를 슬쩍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이 숨을 막히게 했다.
‘오늘도 견하할매의 보호 아래 서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기도문을 마저 읊은 다음, 유나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러자 유나는 내 손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숨을 쉴 때마다 고요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긴 머리카락 사이로 서려 있는 물기. 나는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기도가 끝난 뒤에도 유나의 손을 잡고 가만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