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

사진: Unsplash의john xiao

by 주이슬

음복과 함께 잔치가 시작됐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들고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나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높이뛰기 연습을 하는 유나를 구경했다.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겅중겅중 뛰어오르는데 집중하는 얼굴이 퍽 진지해 보였다. 식사를 대충 마친 언니 오빠들과 또래 아이들도 유나 근처에 모여서 간간이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가만히 앉아만 있는 나는 후동리 마을 일원에서 떨어져 나온 돌연변이가 된 기분이었다.

구경만 하는 것도 곧 지루해져서 시누대 숲 주변부를 둘러보았다. 다른 아이들이 노는데 가서 낄 자신은 없었고 혼자서 돌아다닐 요량이었다. 잠깐 앉았다가 일어나는 데도 힘이 들어, 축축한 바위를 디딘 뒤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 오른쪽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밥 안묵나?”

돌아보자 영욱이가 작은 입안에 음식을 한껏 집어넣은 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까 나오기 전에 동그랑땡 집어 먹어서 배가 안 고프다.”

“그카니까 애볐지. 안 그래도 약하면서.”

영욱이는 음식을 꿀꺽 삼키더니 얼굴을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아까 아들이 니 놀리는 거 봤다.”

나는 대답 없이 신발 앞코로 바닥에 쌓인 눈을 쓱쓱 비볐다. 새하얀 눈은 곧 흙과 뒤섞이며 갈색으로 변했다.

“니보고 주춤이라 하는 거 신경 쓰지 마라.”

“신경 안 쓴다.”

영욱이는 쉼 없이 움직이는 내 발을 보더니, 곧 자기도 신발로 눈을 자근자근 밟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번에 니랑 같이 돌 던지러 보호소 갔었다아이가. 그 뒤로도 딴 아들이랑 몇 번 갔었거든. 근데 돌아오던 길에 이장님한테 딱 들켜가꼬야. 큰누야 귀에 들어가가 억수로 맞았다. 괴롭히지 말라면서. 그리고 주춤이라는 말도 쓰지 말라카대.”

“왜?”

“모린다. 큰누야는 내보다 똑똑하니까 그냥 그런갑다 하는 거지 뭐.”

그러곤 “와봐라”라고 하더니 내 손을 잡고 시누대 숲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딱히 길이 들어 있지 않은 데다 나무 사이를 헤쳐 가야 해서 힘들었다. 자꾸만 다리가 하느작거려 결국 빠르게 걸어가는 영욱이의 손을 뿌리쳤다. 영욱이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갑자기 끌고 들어가면 우짜는데!”

“어… 미안. 마음이 급해가꼬.”

영욱이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굵은 손금 세 줄이 선명히 새겨진 그 손바닥을 오 초간 노려보다가 못 이긴 척 내 손을 얹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영욱이가 이번에는 내 발걸음에 맞춰 인내심을 가지고 아주 천천히 걸어줬다. 한창 무성하게 자란 숲을 헤치며 나아가다 보니 옷이 또 한 번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바람이 불어서 체온이 급격하게 식었다. 어깨를 움츠리며 몇 분 정도 더 가다 보니 더 이상 헤치고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시누대가 틈 없이 엉겨 붙은 막다른 장소에 도착했다. 빽빽한 시누대 사이로 새하얀 눈이 끼어 있는 모습은 대밭이 통째로 얼음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은 환시를 일으켰다.

“와, 내 진짜 이런 거 처음 본다.”

감탄하며 이리저리 엉긴 형상 가까이로 다가가자, 영욱이가 서둘러 휘청이는 내 팔을 잡았다.

“조심해래이.”

“니는 여기 자주 와봤나?”

영욱이는 대답 없이 저 멀리 앞쪽을 쳐다보더니, 검지만 펼쳐 자기의 코와 입에 가져다 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내 숨소리도 저절로 줄어들었다. 우리는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잎들을 바라봤다.

갑자기 사락, 하고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누대가 막고 있는 길목 너머에서 나는 것이었다. 영욱이가 내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빽빽하게 들어찬 대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 너머에서 덩치 큰 무언가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보이는 공간이 너무나도 한정적이라 무슨 동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저게 뭐야?”

“내도 모르지. 어쨌든 내가 봤을 땐, 여기가 막다른 길이 아니라 뒤쪽으로 숲이 쭉 이어져 있는 거 같다.”

견하 할매 꼬리의 끝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어쩌면 새로운 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우리 둘은 한참 앞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더 헤치고 들어갈 수 있는지 궁리했다. 하지만 맨몸으로 저 좁은 틈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는 건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니 이 안쪽으로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나?”

“길이 있어야 가지. 나도 맨날 여까지만 들어오고 이쪽 뒤로는 한 번도 못 가봤다.”

“맞나.”

“……호랑이가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영욱이는 본인이 말해놓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람이 불었고, 다시 한번 저 사이로 커다란 것이 ‘사락’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우리는 영욱이가 괜히 호랑이 이야기를 꺼낸 탓에 섬찟해져서 도망치듯 제단이 있는 길로 되돌아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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