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얼룩

사진: Unsplash의Kateryna Hliznitsova

by 주이슬

“이짝으로 가는 거 맞나?”

갈수록 길이 험해지는 탓에 영욱이를 채근했다.

“내 여기 스무 번은 와봤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영욱이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게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 눈을 보니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숨긴 채 영욱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걸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시누대만 심겨 있어서 전부 똑같은 길처럼 보였다. 볕이 잘 들지 않아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좀 으스스하다, 맞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을 꺼낸 순간, 저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봤다. 영욱이의 눈이 반가움으로 커졌다.

“니도 들었나?”

“응….”

“저짝으로 가면 될 거 같은데?”

마음이 놓인 것도 잠시뿐,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웃음소리에 곧장 불안해졌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임이 분명했다. 영욱이의 팔을 꼭 잡았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그 애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함쳤다.

“야! 거기 누구 있나?”

정적.

“야! 누구 없나?”

영욱이가 한 번 더 외치자, 뒤늦게 답이 들려왔다.

“니 눈데?”

“내 영욱이! 이쪽 길을 이자뿌려서 헤매고 있다 지금.”

영욱이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는지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온 정신을 두 발에 집중해야 했다.

“김영욱!”

경쾌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또래로 보이는 두 명이 우리를 향해 오는 중이었다.

‘역시나….’

한 명은 경아였고, 그 옆엔 경아 단짝 유민이었다. 경아는 요즘 들어 나를 대놓고 싫어했다. 예전에도 썩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적어도 얼굴 앞에 대고 놀리거나 욕하는 일은 없었다. 요즘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꼭 한 마디씩 비아냥댔기 때문에 이 상황이 영 불편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둘을 향해 빙긋 웃어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들은 표정을 굳혔다. 나는 영욱이를 잡고 있던 손을 조심스럽게 놓은 뒤,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셋이 대화하는 것을 지켜봤다. 경아가 운을 뗐다.

“영욱이 니 주춤이랑 뭐 하는데?”

“야, 영욱이는 주춤이라는 말 쓰는 거 싫어한다. 맞제?”

유민이가 가볍게 핀잔을 줬다. 그러곤 뒤에 서 있는 나를 장난기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니 아름이 맞제? 영욱이랑 둘이서 뭐했어? 외진 곳에서.”

경아가 유민이에게 귓속말하더니 쿡쿡 웃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됐고, 우리 숨바꼭질할 건데 같이할래?”

“애도 아니고 숨바꼭질은 무슨. 우리 제단 갈끼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데?”

숨바꼭질이라는 단어를 듣자 영욱이가 타박했지만, 정작 내 눈은 번뜩 뜨였다. 마지막으로 숨바꼭질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유나랑은 시간을 자주 보내긴 했지만 여럿이서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노는 걸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함께 할 때마다 표정이 별로 안 좋아졌기 때문에 모른 척 끼어드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 길 따라서 저짝으로 쭉 가면 바로 제단인데 뭘.”

“그래. 우리가 델따주면 되지. 놀자.”

영욱이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욱이가 말했다.

“알았다. 하자. 대신에 아름이는 깍두기데이.”

“깍두기 안 해도 된다.”

내 볼멘소리에 경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민아름 니가 술래할래?”

흔쾌히 알겠다고 말하며 바로 앞에 서 있는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얼마 만에 해보는 술래인지. 자꾸만 웃음이 나와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느라 입안을 깨물었다.

“30초 센데이? 하나, 둘, 셋…”

아이들이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부디 너무 멀리 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가지도 않길 바라며 마지막 숫자까지 외웠다.

“…서른! 찾는디?”

뒤를 돌아보는 순간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거렸다. 코 앞에 경아와 유민이가 히죽 웃으며 서 있었다. 둘의 의중을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하게 보고 있다가, 경아의 손을 살짝 쥐었다.

“찾았다…?”

“더럽게 잡고 지랄인데.”

경아는 손을 뿌리치더니 나를 뒤로 세게 밀었다. 내가 힘없이 고꾸라지자,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니 진짜 주춤이새끼 다 됐네!”

“주춤이 아니다. 내는 꼬리가 있다고.”

“주춤이도 꼬리 있을 수 있다. 니처럼 짤막하니까 문제지. 그리고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잘 자라던 꼬리가 갑자기 이 꼴인데?”

“니가 영욱이 꼬셔서 사람들 안 다니는 곳으로 온 거제? 뭐 하려고 그랬어? 니 이상한 소문 돌던데.”

둘의 이죽거림을 듣고 있자니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무를 부여잡고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손이 계속 미끄러졌다. 경아는 다시 한번 나를 뒤로 밀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센 손길이었다.

“진짜 주춤이가 아니면 금방 일어나야지!”

이를 악물고 다리와 꼬리에 힘을 줬다. 마음과는 달리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유민이가 나를 밀쳤다. 자비 없는 손길이었다. 옷이 짓이겨진 풀과 흙으로 얼룩졌다. 이번 산신제 때 입으라고 엄마랑 아빠가 새로 사 준 옷이었다. 살짝 문질러봤지만 당연하게도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유나랑 친하다고 나대지 마라. 유나는 니 불쌍해서 놀아주는 거니까.”

끙 소리를 내며 앓는 나를 두고 두 아이는 유유히 떠났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닦고 싶었지만 손과 옷이 더러워져서 눈가에 가져다 댈 수 없었다.

“탁”

“타닥”

힘이 빠져 가만히 앉아 있던 중, 주변의 질척한 흙이 튀기 시작했다. 두 눈을 꾹 감아서 눈물을 쥐어짠 다음 약간 맑아진 시야로 상황을 확인했다. 두 아이가 가다 말고 멈추어 서서 돌멩이를 내게 던지고 있었다. 허둥지둥 일어나려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돌은 여전히 휙 소리를 내며 계속 땅에 꽂혔다.

경아, 유민이 중 누군가가 던진 돌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돌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목이 경직됐다.

퍽 소리와 함께 왼쪽 허벅지에서 얼얼함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혹시라도 돌을 한 번 더 던지진 않을까. 눈을 감고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돌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두 아이는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깔깔 웃으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내 허벅지를 때린 돌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맞은 곳을 살짝 쓸자 통증이 옅게 퍼졌다. 옷소매를 길게 잡아끌어 깨끗해 보이는 곳을 골라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아이들이 사라진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다음주부터 주 2회 연재하던 것을 1회로 줄이려고 합니다. 공모전 접수 기간이 끝나서 뒷 이야기는 좀 느긋하게 전개를 해보려고요 :D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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