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사진: Unsplash의Ed Wingate

by 주이슬

제단 쪽으로 돌아가자 왁자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의 환호성, 박수, 웃음이 어지럽게 섞였다가 퍼지길 반복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줄다리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유나는 덩치 큰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줄을 잡아당겼다. 비록 승기는 상대편이 잡았지만, 유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손을 가뿐하게 탁탁 털었다. 두리번거리던 그 아이와 내 시선이 서로 마주치던 순간, 유나가 동그란 토끼 눈을 하며 뛰어왔다. 큰 꼬리로 지면을 디디며 풀쩍 뛰어오를 때마다 쿵 쿵 소리가 울렸다.

“니 와 이라노?”

“뭐가.”

“넘어졌나? 옷이 엉망이다.”

유나는 내 등과 엉덩이를 툭툭 털어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답을 듣길 포기한 건지 짐짓 밝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니 내 높이뛰기 하는 거 봤나?”

“응, 봤지. 잘하던데?”

높이뛰기 시합이 진행되는 걸 전혀 보지 못했지만 사실대로 고하면 유나가 크게 실망할 것이 뻔했다. 몇 달 전부터 높이뛰기에서 몇 등을 할 건지, 얼마나 연습을 해왔는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조잘거렸던 유나였기에, 그 시합이 큰 의미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야, 봤으면서 반응이 뭐 그카노.”

유나의 핀잔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올해는 3등 했으니까, 내년에는 진짜 1등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처럼 힘 빠지게 반응하지 마라이?”

어른들도 참가하는 높이뛰기 시합에서 당당히 3등을 차지했다는 말을 들으니 혀끝이 쌉싸름했다.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몰랐다.




가슴과 배를 타고 흔들거림이 전해졌다. 넓은 유나의 등은 푹신하고 안정감 있었다. 어른들은 제단 주변을 정리하느라 아이들 먼저 집으로 향했다. 고된 하루를 보낸 탓에 도저히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아, 돌아가는 길은 업히는 걸 거부하지 않았다.

내 오른손에는 작은 조각상이 들려 있었는데, 유나가 높이뛰기 시합에서 3등을 하고 받은 것이었다. 견하할매가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을 한 조각이었다. 세밀하게 표현된 할매의 긴 꼬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넝쿨과 꽃이 휘감겨 화려했다. 내 꼬리에 괜히 힘을 줘봤다. 역시나 힘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집 화분에 심긴 시누대를 돌보는 게 내 일이 된 이후로, 아침마다 물을 주며 기도드리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견하할매가 말한 다섯 가지 계명도 이만하면 잘 지킨 거 같은데. 정말로 할매가 날 내팽개친 건 아닐지. 물을 주는 걸 깜빡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것 때문인지.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들어서 그런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몇 년간 매일 해 온 응답 없는 고민이었으니. 생각에 빠져 있다가 귓가를 부드럽게 울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유나가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빨갛게 익은 뺨과 입에서 나오는 새하얀 입김의 대비가 탐스러웠다. 내년이면 유나는 정말 높이뛰기 대회에서 1등을 할지도 모른다. 다른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할 거다. 그 아이의 너른 품이 괜히 미워졌다.

“내려도.”

휘파람이 뚝 하고 멈췄다. 유나는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묵묵히 걸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내려도가.”

이윽고 유나가 걸음을 멈춘 뒤 천천히 쭈그려 앉았다. 내가 등에서 내려오다 잠시 휘청거리자, 그 아이는 오른쪽 팔을 살짝 잡아줬다. 나는 그걸 뿌리쳤고, 오른손 힘이 풀리며 쥐고 있던 조각상이 날아갔다.

“야!”

유나가 고함치며 조각상이 처박힌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주변을 걷던 아이들이 우리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니 미쳤나?”

돌아온 유나의 손에는 목 부러진 조각상이 들려 있었다.

“일부러 던진 게 아이고….”

유나는 뒷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니 요즘 왜 이러는데? 툭하면 짜증 내고. 질투라도 하나? 그래서 자꾸 이러는 거가?”

“그래.”

엉겁결에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존나 질투 난다. 힘센 것만 믿고 나대는 것도 꼴 보기 싫고, 아무도 니 안 괴롭히는 것도 짜증 난다. 우얄래?”

“솔직하게 말을 하지 그카면. 내가 그래 싫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같이 놀았는데? 꼴 보기 싫은 새끼 놀아준다고 고생했겠네.”

유나의 눈썹이 한껏 쳐졌다. 그 아래로 새까만 눈동자가 울망거리는 걸 보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싫은 게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자꾸만 나와 비교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한 건 땅바닥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느덧 아이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소곤거렸다. 나는 옆으로 나 있는 샛길을 향해 무작정 걸어 들어갔다.

“야!”

유나가 불렀다. 뒤를 돌아 나를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몰린 아이들의 시선이 두려워 앞만 보고 나아갔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문득 주변이 조용해졌다. 산속에는 내 걸음걸이에 맞춰 뽀득거리는 눈과 이따금 밟히는 나무뿌리의 둔탁한 음만이 존재했다. 그제야 뒤를 돌아봤지만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길. 굵은 나무 기둥에 등을 댄 채로 허전한 마음을 골라냈다.

유나는 분명 내 좋은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다들 날 피하고 싫은 티를 낼 때도 어김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그런 아이에게 자꾸만 샘을 내는 스스로가 미웠다. 유나에게서 도망친 주제에 쫓아와 주길 기다리는 건 또 어떻고. 우습기 짝이 없었다.

살짝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나. 반갑게 고개를 돌렸지만 유나가 날 뒤따라온 게 아니었다. 마을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소리였다. 거기엔 경아와 영욱이도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그 애들이 그냥 지나치길 바랐다.

“어? 민아름!”

영욱이가 반갑게 불렀다.

수요일 연재
이전 14화지워지지 않는 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