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판나코타(3)

사진: Unsplash의Denis Blzz

by 주이슬

경선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벽지에 피어 있는 곰팡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방안에는 도배를 새로 해도 영원히 남아 있을 쿰쿰한 담배 냄새가 배어있었다. 바삭바삭한 이불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올라와 코를 찔렀다. 침대에 잠깐 엎어져 있던 경선은 곧바로 바닥에 앉아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 벌 없는 옷과 접이식 등산스틱, 두 쌍의 아이젠 사이로 편의점에서 구매한 음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선은 허겁지겁 햄버거 봉지부터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소스가 손가락에 묻어 찐득거렸다. 차가운 빵은 까끌까끌한 게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경선은 제대로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모든 음식을 두어 번 씹고 나선 꿀떡 삼켰다. 음식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다 가슴쪽에서 뭉쳐 가슴을 퍽퍽 쳐가며 먹어야 했다. 커다란 덩어리가 내려가면서 통증이 느껴졌다. 경선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마지막으로 아껴둔 삼각김밥을 뜯었다. 한 입 베어 물자 딱딱한 밥알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밥 안쪽에 숨어 있던 참치와 마요네즈 덩어리가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고 나서야 겨우 씹는 속도를 줄였다. 곧이어 시원한 사이다 페트병을 반절 정도 비운 다음 트림을 거침없이 해댔다. 삼각김밥까지 전부 해치우자 배가 남산만하게 부풀어올랐다. 잠깐 쌕쌕대며 쉬던 경선은 잠시 뒤 고추장 맛이라고 적혀 있는 감자칩을 뜯어 하나씩 집어 먹으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경선님 도착하시면 눈이 내리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수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경선은 방금 막 인제에 도착했으며, 눈은 내리지 않지만 많이 쌓인 상태임을 보고했다. 곧이어 수현에게서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하트가 가득 그려진 답신이 왔다.

과자 봉지에 손가락을 찍으며 부스러기까지 싹 긁어 먹은 경선은 바스락거리는 봉지들을 대충 한 구석에 밀어놓은 뒤 침대로 올라가 털썩 누웠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들이 정체되어 온 장기를 누르는 것 같았다.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은 휴대폰 화면 속 짧은 동영상들만 의미 없이 넘겼다. 평소에 그래왔던 것처럼 대충 보고 손가락을 밀어 올리던 경선은 다시 황급히 손가락을 내려 이전 영상으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베이킹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계정이었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흰색 푸딩이 눈에 들어왔다. ‘자취생도 만드는 초간단 귤 판나코타’라고 영상 위에 자막이 크게 쓰여 있었다. 경선이 몇 년 전 울진의 한 카페에서 봤던 것과 같은 것인진 모르겠으나 상당히 유사해 보였다. 경선은 그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봤다.

귤은 경선네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집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풍겨오는 새콤한 귤 향으로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다. 경선도 짧은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투명하고 귀여운 병 안에 젤라틴을 넣어 굳힌 새하얀 생크림을 넣고 싶었다. 바닐라 향이 들어가 포근하고 따사로운 겨울의 맛이 완성된 푸딩 위에 새콤달콤한 귤 청을 올려서 굳힌 다음 완성된 몰랑몰랑한 판나코타를 한 숟갈 퍼먹고 싶었다.

하지만 경선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집을 정리하고 구미로 들어가 숙소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음식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마다 술 마시는 엄마의 모습이 눈 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경선은 설거지를 하면서 수도꼭지에 콸콸 흘러나오는 물이 꼭 자신과 엄마의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경선은 본인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고무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채 아주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하거나, 혹은 한 겨울에 아주 차가운 물로 설거지를 했다. 그렇게 하면 본인의 손가락도 빨리 닳아 나중엔 엄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벌을 줘도 엄마의 환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고, 나중에는 설거짓거리를 쌓아두고 곰팡내가 온 집안에 퍼질 때쯤에야 그릇을 닦았다. 더 나중에는 아예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배달 음식만 시켜 먹거나 편의점 음식을 먹었다. 수저도 일회용만 사용했다.

이렇게 지내온지 너무 오래 됐다. 본인의 식습관이 좋지 않다는 것은 십여년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느덧 본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경선은 슬플 때마다 먹었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더욱 심해졌다. 어느덧 경선은 음식을 3인분씩 배달시켜 한 번에 다 먹었다. 혹은 편의점에서 누군가의 몫을 함께 구매하는 척하며 남은 음식을 전부 털어왔다. 그래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이렇듯 먹성 좋은 경선이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일터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고 야야, 니는 그만치만 먹고 힘이 나나?”

“맞제, 언니야. 경선이 니는 가만 보면 아가 참 안 먹더라?”

“니 그카면 살이 좀 빠져야되는거 아이가? 어째 갈수록 더 찌는 거 같노.”

경선과 친밀감이 형성된 사람들은 감사의 표시로 이런 말들을 선물했다. 악의 없는 웃음엔 따스함까지 느껴졌다. 그런 날이면 퇴근 후 숙소에서 혼자 4인분을 먹었다. 눈물이 경선의 소화제였다.

짧은 귤 요리 영상을 반복해서 틀어둔 채 옛날 일을 떠올리고 있자니 경선의 눈가가 점점 무거워졌다. 이윽고 팔에 힘이 풀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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