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분석 중...
허투루 쓴 시간들이 아니었는데 한 과목이 합격점을 넘지 못했다. 식구들이 내 눈치를 살짝 봤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가만히 두는 게 낫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 난 응시 가능한 시험날을 확인하며 재시험을 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재미에 푹 빠졌기에 반드시 취득하겠다는 욕구에 갈증이 커진다. 그러나 공부 하나에만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까지 하며 병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다마는...)
지난 3개월간 잊고 있었다. 나는 주부, 아내, 엄마로 24시간 풀가동하는 인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더 길게는 올 2월부터 수험생 모드에 취해서 살았다. 공부만 하면 되는 편함이 얼마나 행복한 특권인지 맛보았다. 내가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내 손이 스쳐야 하는 곳들에 숨만 붙들어 두었다. 마비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남편과 책임을 나누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 하나 빠진 곳의 빈틈이 점점 커지는 위기가 왔지만 외면해가며 공부에만 집중했다.
과정적으로는 자신에게 부끄러울 게 없지만 결과가 미안함을 가득 안긴다. 당장 시작할 거냐는 큰 아이, 오늘은 공부 안 하느냐는 둘째, 이제는 나중에 하라는 남편. 심호흡 한 번 하고 정신 차린다. 세 번의 기회는 없음을 알고, 마지막이다. 반드시 마지막이어야 한다. 어쨌든 해를 넘겨 내년을 기약해야 할 상황이 못마땅하지만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알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무엇이든 얻은 결과에 대해 원인을 분석한다. 시간 싸움을 해야 하는 시험에서 정독은 사치다. 눈치 없이 낱자를 공들여 읽는 습관이 첫 번째 불합격 원인이다. 과목별 시간 안배도 실패했고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한 OMR도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왜 그랬을까. 가장 자신 있었던 과목에서 패배를 했다. 자신이 아니라 자만이었다. 다 안다는 자만, 풀 수 있다는 허세, 부족했던 응용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합격한 수험생들이 남기는 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기웃거린다. 내 생활 패턴이랑 맞지 않지만 맞출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다. 결코 가볍게 대한 내용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거라 진심으로 집중했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별수 없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