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눈을 까뒤집는다. 간밤에 꿀잠 자고 일어난 둘째다. 흰자만 보고는 다시 덮어준다. 어서 일어나라는 재촉으로 내 배 위에 누워 열기를 더한다. 굴러서 내려와 곁에 눕는다. 귀에 속삭인다. '책 읽어 줘. 궁금한 게 있어. 이것 좀 봐.' 내 귀가 살짝 열렸다가 다시 정신이 흐려진다.
나는 주말의 자유로운 늦잠을 방해받기 싫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두 아이 모두 말도 제대로 못 하던 꼬꼬마 때, 해뜨기 전부터 일어나서는 사람을 그렇게 깨웠다. 이젠 나에겐 없고 너희들에게만 있는 방학을 맘껏 즐기며 뒹굴거리라 해도 늦잠을 미룬다. 이런 성실함은 넣어두면 좋겠다. 제발.
나의 혼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채 몸뚱이만 일으켰다. 더듬거리며 머리를 묶고 안경을 쓰는 찰나, 아주 환한 목소리가 날아와 귀에 꽂힌다. "엄마, 같이 놀자!". 귀에서 피가 나는 거 같다. 듣자마자 지친다. 다시 눕고 싶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육식 공룡에게서 도망 다녀야 한단 말인가. 사냥당하는 초식 공룡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생하게 체험 중이다.
젠장, 실눈을 뜨니까 공룡 책이 나를 기다린다. 실 웃음이 나온다. 몇 주째 공룡 세상에 살고 있다. 아이는 엄마 반응이 좋아서 덩달아 웃고 내 다리 위에 엉덩이를 살포시 올려 자리를 잡는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순간이다.
아침 기분이 하루를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지낸다. '즐거운 기분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내가 어릴 때부터 원했다. 어느 누구도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야만 하는 순간을 방해받으면 안 된다. 아이도 안다. 늘어지게 자는 엄마에게 어서 일어나라 투정 부리지 않고 곁에 앉아서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다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말캉한 팔뚝을 만지며 이것저것 말을 건다. 그렇게 천천히, 일어날 시간임을 알려주는 친절함에 주말 아침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평일처럼, 먼저 깨어있는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깨어날 때 보이는 엄마의 멀끔한 평일 상태를 바라지도 않는다. 배고픔에 나를 재촉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자기들이 느낀 평온한 아침 기운이 유지되길 바라는 듯하다.
아이의 속삭임에 귀가 열리기 시작하면 또렷하게 들려오는 말, "엄마, 같이 놀자.". 세상 가장 그리워질 말 중 하나임을 알기에 눈 못 뜬 병든 닭의 몰골이라도 "그럴까?"라며 대답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