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현실을 피하는 중이다.
시작의 두려움이나 오지 않은 결과에 대한
핑계인 거 안다.
그럼에도 술로 도피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술은 장식품이자 고기 재울 때 쓰는 도구다.)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고 있다.
품위유지를 위한 단정함이나
아이들 케어나 살림까지.
흐트러지지 않음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열의를 식히지 않는다.
그렇게 아내이자 엄마, 주부의 삶을 잇는다.
책을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인문서는 손을 놓았다.
그들의 바른말 속에 내 삶이 기름 같아서...
문학책으로 사람들 마음을 보고 생각을 엿듣는다.
이렇게 살고 어울리며 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는데
부족하고 무식했던 지난 기억들이
툭 튀어나와 마음을 긁어댄다.
어제는 내 눈에 좋아 보이는 남편을
계속 바라봤다. 시답잖은 이야기라도 경청하며
그의 예쁜 눈을 들여다봤다.
'당신도 나름 애쓰고 있으니
이 생이 아깝지 않을까.'
큰 아이와는 대화를 하다 말문을 닫았다.
'정작 나는 이렇지 못했으면서
길을 제시하는 건방짐이려나'
앎과 실행의 간극을 이미 알면서
아이에게는 입바른 말이 될 것 같다.
"그냥...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기란 어렵고 시간이 필요해.
다양하고 많은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우위에
있으려는 욕심만 가지고
우선은 공부를 열심히 해봐."
아이의 고민에 해줄 수 있는
당장의 조언이었다.
순간 내가 한심했다.
이대로 괜찮지 않다 머리는 아는데
기어서라도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다독이는데 그마저도 놓을까 걱정하면서도
현실을 잊으려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