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을 삶에 대한 별 생각들
내가 목표로 했던 마지막 자격증 도전에 실패하고 닥치는 대로 활자를 읽으며 지내고 있다. 책과 웹으로 글을 읽다 보면 각자의 삶에 충실한 글과 그림에 마음이 간다. 삶이 위태로운 가운데 끈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인내하는 그들의 삶에 주어지는 보상처럼 우연한 기회로 사람을 만난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말과 인연이 엮이면서 주인공이나 글쓴이는 성장한다. 물론 유의미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내게도 우연이나 기회를 잡으려 준비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가장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그때. 왔던 기회는 어떻게 했던가, 이어졌던 인연들은 모두 어딜 갔는가,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은 있기나 했던 걸까, 왔던 기회라도 잡을 만큼 준비는 되어있었던가... 지나친 자괴감에 먹히지 않으려 기억은 더듬지만 깊이 빠지진 않는다.
너는 참 성실해. 근성이 있는 면을 단단히 해 봐. / 너는 글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능력을 키워 봐. /너는 열심히 하는 면이 있어. 단순한 열심히 아닌 속이 찬 열심을 다져 봐.
가족들에게서 듣지 못하고 나와 스치듯 지나간 인연들이 해주었던 말들이다. 반면 지척에서 무시로 듣던 말은 따로 있었다.
너한테 이런 면이? / 네가 뭐라고 감히 / 너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야.
내 안은 항상 허했고 보호막은 허술한 상태로 자라왔기에 외부와의 연계성은 그리 끈끈하지 못했다. 가족이 탄탄히 해주지 못한 내면은 스치는 인연들의 애정으로 채우기엔 매우 부족했다. 나는 어떤 성과를 내더라도 다 내 능력이 아니라며 치부했고 타인의 인정이 진실되지 않다 왜곡했다. 난 가족들의 기준에 항상 루저였으니까.
나와 닿았던 인연들의 애정 어린 말이 당시엔 빛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런 감사함을 쉽게 꺼트린 건 나였고 후회로 남을 거라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좀 더 젊을 때 뼈 있는 말들을 새겨듣고 조금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지금의 나와 많이 달랐을까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실패의 원인을 내 안에서 더 집요하게 찾았을 텐지. 어리석게도 왜 무서워했을까.' 내가 모르는 나의 긍정성을 타인이 안다는 것에 신뢰를 가질 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나를 부정하며 살아왔다.
사람은 가까이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사람에게 상상 이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 가족의 언행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그 영향이 본인들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나를 무너뜨린 지랄 맞은 내 주변의 정서적 환경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미치지 않을 만큼 발버둥 쳤다. 보호해야 할 존재들이 있었기에 다시 산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쌓으며 울타리를 만들었다.
우연, 만남, 기회, 삶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이 마구 떠오르던 날이다. 곁에 있던 첫째 아이에게 정리되지 않아서 더 주고받을만한 이야기라 툭 던지듯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와 OO(둘째 아이)로 인해 나를 평가받아온 시간이 합해서 15년이야. 그러면서 남아 있는 내 기억에는 너희들 성장을 이유로 부정적인 말을 듣거나 욕을 먹어 본 적이 없어.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고민할 때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우리를 응원해주셨어.
그러면서 모두 한결같이 '지금처럼 키우시면 됩니다.'라고 말씀해주셨고. 이 말이 얼마나 힘이 되던지 들을 때마다 목이 메었어. 그 말속에 담긴 무거움을 알기 때문에 단순하게 흘려들을 수 없었거든. 입이 하나인 이유와 귀가 두 개인 이유를 말해줬잖아. 앞으로도 너희들 한 테만큼은 나는 두 귀를 가장 먼저 여는 사람으로 이 자리를 지키려고.
너희들로 인해 엄마에게 닿았던 인연이 성장의 거름이 되었던 건 맞아. 앞으로 네가 만나게 될 사람들도 네 삶에 그렇게 영향을 줄 거야. 그때, 과연 넌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어. 너의 재능 중에 하나는 타인에 대한 마음이 열려있다는 거야. 배려하고 손 내밀어 도움 주려하는 그 선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거야.
만남이 가벼울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깊게 이어갈 존재가 있는지 잘 살펴보는 눈을 가졌으면 해. 네가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고 싶어 하는 일에 서로 가치 있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삶은 실패와 성공의 반복이라고 했잖아. 어떤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지는 죽는 날까지 알 수 없어. 끈기와 노력, 반성과 인정 등 네가 할 수 있는 고뇌들에 공을 들인다면 너를 위한 행복한 인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야.
아이는 나를 자각시키는 진리를 담고 대화를 이어간다.
"엄마,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해냈잖아. 그리고 해낼 거고."
"그렇지. 당연히 하면 돼. 그런데 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 커졌다는 거야."
"아.... 그래도 시작이 중요하잖아."
대면보다 비대면이 익숙해졌다. 대면으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시점에 날개를 펼칠 시간이 언제일지 뜸을 들여본다. 그땐 많은 우연들을 무의미하다 여기지 않겠지, 기회를 엿보려 준비도 많이 할 거고, 일회성 만남이라 해도 약이 되길 바라며 나를 다듬을 테다. 요즘 이상하게도 과거를 계속 더듬는다. 변화가 필요한 삶의 단계에 놓인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