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새벽 천둥이 지나고 푹푹 찌는 아침이 열렸다. 급할 거 없는 여름 방학 중 하루를 시작했다. 나의 방학 기간 임무는 특별 과외 교사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과외비는 밥 한 끼와 바꿨다. 하루 두 끼만 먹자며 합의 봤다. 간식은 셀프로 해결하자는 추가 사항도 넣었다.
큰 아이가 스케치북처럼 깨끗하게 모셔두었던 1학기 문제집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꽂아두었는지 새책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아이는 새 책 냄새라며 한껏 들이켜고는 좋다며 웃는다. 애미도 따라 웃는다. 천불 나는 속을 감추고. 학기 중에는 시간 만수르로 살았으니 방학만이라도 달라져야 되지 않느냐며 단호하게 말하고 계획을 잡아줬다.
작은 아이는 한글에 관심이 생겼다. 반 아이들처럼 읽고 싶다는 욕구를 채워주려고 쉬엄쉬엄 해가고 있다. 내년이 학교 입학이기에 시간은 여유롭다. 무리하면 안 된다. 욕심껏 했다간 내가 애를 쳐 잡을지도 모른다. 예민하고 신중하며 다소 시간이 필요한 아이에겐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 그저 기다리고 독려하며 곁을 지킨다. 천만다행이다. 애미 천성이 게을러서 기다리는 건 지겹게 할 수 있다.
벌써 일주일이 사라졌다. 2주만 잘 지내면 된다. 밤마다 정화수 떠놓고 달님께 빌어야 하나 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 두 자식들을 굽어 살피시기보다 내 천불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새치 혀로 급하게 튀어나오지 않게 다스려 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큰아이가 계획표를 보면서도 시간 만수르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가 가요를 듣다가 부른다. 음치 박치다. 춤도 추는데 몸치다. 그러면서 자신 있게 가수가 되겠다고 희망차게 웃는다. 즐기는데 뭐라 할 수 없다. 그저 아이가 웃으니까 따라 웃는다.
작은아이가 온 집안을 들쑤시고 난장판을 만들고도 태연하게 발로 치우고 다닌다. 그러다 서로 레고 지뢰를 밟고는 아파 구르면서도 좋다고 웃는다. 누가누가 더 큰 지뢰를 밟았나, 누가 여기 뒀나, 내가 뒀지 꺄르르르. 지들이 좋다고 합이 맞아서 웃는다. 같이 구르면서 옷으로 바닥 먼지 청소도 자발적으로 한다. 아이들의 무질서 속 웃음에 백기를 든다. 뭐라 할 수 없다.
멍하니 보다가 헛웃음이 터진다. 그래,
너는 오늘도 사랑스럽다.
너는 오늘도 예쁘다.
너는 오늘도 귀엽다.
너는 오늘도 멋지다.
아이를 향한 좋은 감정을 우선에 둔다. 마음의 주문으로 그치지 않고 아이의 양볼을 손에 감싸 눈을 맞추며 표현한다. 애미의 내면 수양 기술이 헛웃음을 통해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