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온도로 물을 데워 아이들 보온병에 담았다. 넉넉하게 데운 덕에 남게 된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몸을 깨웠다. 별생각 없이 잠이 들었기에 아침에 뭐 할지 잠깐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으로 손을 뻗어 주섬주섬 잡아 들었다.
칙칙 칙칙, 밥솥추가 돌아간다.
달그락달그락, 조리한 그릇을 바로 씻어낸다.
찹찹찹, 조물조물 브로콜리도 무쳐본다.
별 것 없지만 하나하나 상에 올려지면 뿌듯함이 차오른다. 하루 시작이 좋다며 계란찜에 참기름을 두르고 향을 들이켰다.
사삭사삭, 응? 뭔 소리지?
언제 왔는지 책상에 앉은 큰아이의 성실한 등을 마주했다. 씻으러 가는 소리만 들었는데 무슨 일로 새벽 공부를 시작했는지 고개를 기울여 이유를 찾았다.
일 년 내내 중학 준비를 아주 현실적으로 깨워주시는 담임께서 다음 주,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에 기말고사라는 큰 과제를 안기셨다. 어제는 사회를 다 해결해 놓고 늦게 잠에 들었다. 법적 휴일에 공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투덜거리더니 작정하고 새벽공부를 시작했나 보다. 아... 밥 식는데...
아이는 목표가 정해지면 몰입한다. 아직은 온전히 주도적으로 설정한 목표는 아니지만 권위가 서 있는 사람이 제시한 올바른 방향에 자신을 맞추는 자세를 갖추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음을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아이의 괜찮은 성장에는 양육자의 '적절한 관심'이 큰 역할을 한다. 키우니까 결론이 그렇다. 적절한 관심의 의미와 범위를 정의하라면 개별 특성에 맞는 것, 이라고 밖에는 더할 말이 없다.
큰아이는 내 귀의 피로도를 높이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을 한다. 수행이라 여기고 귀 기울이는 관심으로 아이 주변의 많은 일을 파악하고 상황을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대화를 이어가고 마음을 살피는 일이 12년이다. 그러고는 때에 따라 조언이 되길 바라며 뼈 있는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괜찮은 아이로 잘 성장했다는 중간 쉼표를 곧 받는다. 교우 관계에서 복잡한 감정에 성장통도 겪고 예민해진 지 오래지만 웃음가득한, 그야말로 똥꼬 발랄한 시절이 지나고 있다. 동생을 챙겨 눈 쌓인 등굣길을 나섰다. 눈이 굳어 뭉쳐지지 않으나 실망하지 않고 자기 머리 위로 뿌려대며 좋다고 웃는다. 등교 바로 전, 진지하게 남은 공부를 마무리하던 모습이 순간 스친다.
뭘 해도 될 녀석이란 말이 입꼬리에 묻어난다. 공부할 때 몰입하고 놀 때는 확실히 노는 꿈같은 성장을 아이가 하고 있다. 단 한 번도 아침밥 없이 내보낸 적 없고 끙끙거릴 일에도 아이에게 내색 못하던 고비들이 있었기에 아이가 절로 컸다는 말... 아끼고 싶다.
육아는 졸업이 없으니까 아이의 졸업은 마침이 아닌 쉼표이며 시작이다. 꽉 찬 감정으로 오열하는 추태를 보이지 않게 마음 다스리며 잠깐 숨 돌릴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