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있어요?!'
마침 읽고 있던 책 속, 이 한 문장이 머리를 맴돌며 여러 기억들을 소환시킬 때였다. 올해 첫 매미 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있는지 제법 또렷하고 크다.
사시사철 동네를 누비던 나는 방학을 해야 여름이구나, 겨울이구나 하며 시작점을 찍었다. 이제는 소리나 내음, 해의 길이 등 자연이 보이는 감각에 더 의지하며 계절감을 느낀다.
매미가 운다. 그러니 완연한 여름이다.
뜨거운 볕을 뚫고 동네 친구 집 담장 아래서 '누구야~ 노올자~~'하던 꼬꼬마 시절이 있었다. 해가 높아 좁게 드리운 담장 그늘 아래에서 친구의 응답을 기다렸었다. 집에 없거나 외면받았던 기억보다 '그래!'라는 반김이 더 많았다.
서로 밥벌이를 하다 어느 여름날 딱 한 번, 내 근무지 근처까지 와서 야식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정 오빠와의 시간도 떠올랐다. 우리는, 아니 내가 좀 더 똑똑하고 현명했다면 친구 같은 남매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떼창이 어울리는 매미가 너무 일찍 깨어나 존재를 알리려 애쓴다. 혼자 저러니 울음이 애달프게 들린다.
전기 설비 점검으로 정전이다. 몇 시간은 외로이 우는 매미와 같이 정적을 채울 듯하다. 같이 소리 내어 줄 매미가 없는데 어쩌냐 괜히 걱정을 달았다.
나는 네 존재를 알아 덕을 보는데 네게 해줄 게 없어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나 혼자 마음으로 친구를 맺었다. 우는 소리를 열심히 들어주고, 소리가 잠시 끊어지면 너도 나도 잠깐 쉬기를 반복할 테다.
얼마 전에 아이들이 내게 엄마도 친구가 있느냐 물었었다. 아이들 기준에서 친구는 매일 만나는 존재라서 나는 친구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춘기 여름날, 담벼락 아래서 급하게 만나 서로 고민을 나누던 친구가 그립다.
매미처럼 불러들이는 노력이 되어야 하는데 내 마음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구태에 머물러 있다. 메신저로 간단히 잘 지내느냐 안부만 전하면 될 일에 왜 이리 머뭇거림이 긴지...
오늘은 매미처럼 내 소식을 먼저 전하려 마음을 기울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