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목소리 한 번 들을까 말까하는 사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손에 항상 연락 수단을 들고 다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캐캐묵은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살갑지 않은 사이였다. 남 보듯 했고 남보다 더 멀리했으면 어쩌다 보니 한 배에서 시차를 두고 태어난 단순 호적메이트였을 뿐이다.
가끔 조카들 생일이나 기념일에 용돈을 보내며 소식을 준다. 작년에는 큰 조카의 식성을 물었다. 통하는 게 있었기에 스파게티면과 소스를 대량으로 받았다. 그러고 어느 날, 생바질 한 박스가 도착했다.
난생처음 생바질을 보았고 향을 느꼈다. 견과류와 대용량 올리브 오일도 함께였다. 혈연의 배려로 도착했던 식재료들에 잠시 얼이 빠졌었다.
바질페스토를 처음 만들며 주방을 볼성사납게 만들었다. 만든 후에는 식구들 아무도 먹지 않아서 곤란했다. 그 곤란함이 올해도 안겨졌다.
생바질 열 뿌리
이 아이를 택배로 받고 고민을 한참 했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검색하고 보관법을 알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그러다 핸드폰을 내렸다. 내가 왜 이걸 붙들고 있어야 하는지 싸한 기운이 들었다. 당근에 팔까, 지역 카페에 나눔 할까?
가만히 앉아서 바질과 기싸움을 했다. 그리 길지는 않았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 못난 기분을 만들어 스스로 괴로움에 담근다며 반성했다.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 주어지면 당황하는 동시에 곧 솟아나는 뾰족함에 누구라도 찌를 것 같다.
내 사이와는 별개로 조카들을 생각하고 챙기는 고마움을 허투루 봤다. 아이들에게 건강함을 챙겨주는 내 손에 텃밭 작물을 부탁하며 믿고 맡긴 고마움을 쉽게 봤다.
로또 같아서 서로 맞지 않는 존재라 해도 아주 뜸하게나마 이렇게라도 생사 소식을 전하는 고마움도 가볍게 여겼다. 나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이 바질과의 기싸움보다 길었다.
감사히 잘 받았다, 잘 먹겠다, 싱싱하게 잘 도착했다는 짧은 글에 진심을 담아 보냈다. 같이 보낸 파는 벌레 확인하고 먹으라는 답글에는 정이 묻은 무뚝뚝한 음성 지원이 되는 듯했다. 그제야 무농약으로 키운 파가 보였다. 눈이 멀었다는 의미를 실감했다. 부끄러움에 혼자 얼굴 붉히며 멋쩍게 웃었다.
바질을 다듬을 시간이다. 할 수 있는 요리를 검색하다가 잎하나 씻어 생으로 먹었다. 겉절이로 먹는다 해서 맛을 보았는데 향이 심히 강해서 뱉었다. 겉절이는 안 되겠다. 핸드블랜더도 없는데 또 팔뚝 자랑하며 믹서기 들고 흔들어야 하나보다. 올해도 페스토 제조다.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기까지 쉽지 않았을 혈연의 노력과 자연의 수고에 마음 다해 감사함을 되뇌었다. 열어 놓은 박스 귀퉁이로 함께 온 개미 하나가 지나간다. 먼 길 오느라 너도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