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수고, 엄마의 자리
아이가 한창 어릴 때,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나물을 다듬던 분, 작은 정자에 앉아 햇볕을 쬐던 분들이 눈을 반짝이며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제가 “지금처럼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셨어요?” 하고 여쭤보면, 어르신들은 그 시절의 고단함을 웃음에 실어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대화의 끝은 늘 같은 말로 맺어졌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지.” “그땐 다 그랬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거였어.”
그 말들 속엔 분명 고귀한 책임감이 있었고, 말로 다하지 못한 삶의 무게도 느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세상이 좋아져서 애 키우는 게 뭐 그리 어렵냐는 듯 툭 내뱉으셨지만, 저는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지금의 엄마들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고요. 이제는 단지 아이를 돌보는 것을 넘어서, 학습 코칭과 교육 설계, 감정 코칭과 정신 건강 관리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 삶의 예측은 더 어려워졌기에 부모의 역할은 전례 없이 확장되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기본적인 역할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망설였습니다. 저를 찾겠다고 일을 시작하면, 아이를 챙기지 못하는 미안함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할까 봐 회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하며 커리어를 이어가기보다는, 아이 곁에 머무는 길을 택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인의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승화시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엄마라는 자리는 왜 이토록 무거운지, 왜 나만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지 등 마음 속에서 질문들이 잔물결처럼 일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습니다.
희생 아닌 선택, 나의 시간
여러 질문들을 가슴속에서 오래 굴렸습니다. 그러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경제적 책임도 얼마나 무거운지를 상기했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저녁이 되어야 겨우 마주할 수 있었던 어머니, 정서적 배고픔을 채우기보다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그 분의 어깨가 떠올랐던 겁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놓아야 했던 현실 앞에서, 저 또한 이제는 같은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저는 육아를 ‘희생’이라 부르는 대신, ‘내가 선택한 삶’이라 여기기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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