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32
“음식을 해도 남기고 먹지를 않아요.
버리는 것도 아깝고, 음식 하기가 싫어요.
그런데 밥은 먹여야 하고.”
어떤 분이 제게 하신 말씀입니다. 무척 공감되는 말이지요. 제가 큰아이 하나 키울 때, 아이 주도로 식사가 이루어지길 원하면서도 아이가 먹는 적정량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차리는 음식을 다 먹길 바랐어요. 엄마가 차린 음식은 기쁜 마음으로 바라봐 주고 요즘같이 푹푹 찌는 더운 여름에 불앞에 서는 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었죠. 이런 저의 과한 욕심은 아이가 왜 남기는지, 왜 저만큼도 먹지 못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던 무지가 원인이었습니다. 아이가 먹는 적정량을 모르는 상태로 밥을 차리는 것이 반복되었어요. 남겨진 밥을 보면서 조금만 먹는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렸고 더 먹이려고 붙잡아 두는 것도 반복했습니다. 적어도 아이의 식욕과 먹성에 대한 차이를 알려고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했던 행위였어요.
아이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내내 먹먹한 가슴을 두드려가며 눈물만 뚝뚝 흘리는 신세 한탄으로 머리가 꽤 복잡했었어요. 제가 참 이기적이었죠. 가벼웠지만 밥 때문에 얻은 육아 우울감이 제 주변을 다 어둡게 만드는 듯했습니다. 아이가 밥 먹기를 싫어하던 때는 저도 덩달아 차리는 것도 싫어지더라고요. 저만의 상황은 아닐 거예요.
보통은 아이 주도 식사(이유식, 유아식)를 하려다가 아이의 마음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게만 됩니다. 결국 숟가락에 밥 떠서 아이 쫓아가며 먹여주고 있거나 아이의 식사를 너무 유심히 바라보고 눈으로 자꾸 참견하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리게 되잖아요. 그때 드는 생각은 ‘차려 줘 봤자 먹지도 않을 거, 생각해서 담은 것들 남길 건데 내가 해서 뭐 하나’에 머물게 됩니다. 우울함이 달리 우울인가요. 우리가 끄집어내서 마음에 자꾸 꽂아대니까 육아가 즐겁지 않고 식사가 지옥 같고 그런 거예요.
큰아이 네 살 때, 하루는 밥 차리는 것이 너무 싫었나 봐요. 아직 차리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남긴 밥을 더는 먹기 싫다는 짜증이 올라오더라고요. 내가 차리기 싫다면 누가 차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이가 하도록 했습니다. 배식하듯이 밥상에 반찬과 밥을 그릇마다 담았어요. 호박볶음 하나, 콩자반 두어 개, 다른 반찬들은 패스하고 밥도 자기 한 주먹 정도였습니다. 한숨이 났을까요, 웃었을까요?
네 살한테 제가 뭘 기대했던 걸까요? ‘먹을 거면 먹어라. 안 먹으면 너만 손해지 내가 신경 쓸 바 아니잖아?’. 마음은 이미 꼬일 대로 꼬여있기에 아주 못된 심보를 바탕에 깔고 시작했잖아요. 다행히 남아있던 이성 덕분에 최대한 목소리와 낯빛은 밝게 꾸밀 수 있었어요. 마음은 이미 엄마이길 포기한 미친 사람 같았습니다. 아이는 몰랐을까요? 아이가 음식을 선택하도록 뒀으면서 ‘이거면 돼? 이걸로 되겠어? 진짜 이거만 먹을 거야?’라며 아이와 그릇을 번갈아 보면서 자꾸 확인합니다. 아이 눈이 흔들려요. ‘내가 뭐 잘못했나? 이러면 안 되나? 나더러 하라며, 그런데 왜?’
여러분들이 느끼는 아이 주도 식사의 함정이 이겁니다. 아이더러 알아서 먹으라 했더니 간에 기별도 안 갈 만큼만 원한다는 게 우리 맘에 들지 않아요. 못마땅합니다. 아이 주도 식사(이유식, 유아식)를 호기롭게 시작하셨다가 좌절하시고 중단하셨던 이유도 같을 거고요.
그 당시 아이는 저의 눈빛에서 모든 것을 읽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참 마음이 아주 아파요. 눈치 보게 했고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이오. 그래서 같은 짓 안 하려고 마음 단단히 먹고는 아이 스스로 원하는 식사가 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엄마가 되고부터는 더 치열하게 유의미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에게만 빠져있는 시간이 나를 사회로부터 격리해 정체되게 만든다는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이겠죠. 주어진 현실을 부정할 수 없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차려내며 제 안에서부터 유의미한 존재임을 하나씩 확인해나가자 다짐했습니다.
하나, 요리책 보며 만드는 재미 가지기
준비된 방법대로 하는 데 문제가 되겠냐며 덤벼봅니다. 아이를 위한 요리를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요. 그래서 제가 먹고 싶은 요리를 선택했습니다. ‘내가 먹고 싶은데, 이걸 아이들이 먹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로 시작해서 작게 잘라준다거나 매운 재료를 덜어낸다거나 해서 저를 위한 만족감을 먼저 채웠습니다. 엄마라고 해서 무조건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단 자신을 챙겨야 아이도 함께 챙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재미를 알아야 아이를 동참시켜 같이 요리할 때 여유도 가질 수 있어요.
둘, 차리면서 만족스럽게 담는 거 느끼기
어떤 그릇에 차릴지, 분홍색 그릇은 누구에게 줄지 생각했고 어떻게 해야 담는 재미가 있고 어떤 순서로 담을지 고민했어요. 마치 혼자서 하는 소꿉놀이 같았습니다. 남편이 볼 때면 무슨 공을 그렇게 들이느냐 했지만, 특별히 공을 들이기보다는 재미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안 먹는다고 버려진다고 대충 담아내려는 마음을 벗어버리기 위함이었죠. 그래야 웃는 얼굴로 아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셋, 내가 만든 거 사진으로 남겨 기록하기
다른 이유가 없어요. 오로지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취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우울과 불만을 너무나 쉽게 가슴이 갖다 꽂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면 다른 걸 해야 하잖아요. 누가 격려해주나요, 누가 북돋워 주나요. 안 해줘요. 그러니 혼자 해야죠. 여러 글에서 제가 셀프 칭찬을 한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주방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 정리를 하고 콧노래도 불러보며 놓인 상황에만 집중하면서 자꾸 찾습니다. 작은 것 하나 잘했다 싶으면 무조건 머리를 쓰다듬거나 엉덩이를 두드리며 저를 칭찬해요. 음식 사진을 찍는다는 건 나를 위한 기록입니다. 타인에게 자랑하려고, 비교하려고 하는 행위가 아니에요.
우리 자신이 굳건하게 서 있어야 아이가 보입니다. 뭘 선택하든 먹으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 있는지 확인하려 관찰했고, 아이가 자라면서는 아이 이해력에 맞추어 행동(음식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아이가 덜먹을지 남길지 거부할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됩니다. 큰아이와의 밥 씨름으로 내적 불행이 최고조였던 시기부터(거의 육아 초반부터) 마음을 다스리며 이렇게 차곡차곡 쌓은 시간이 이제야 큰 빛을 발하게 되었어요.
기나긴 시간이 흘러 지금은 엄마 밥 순이가 된 큰아이. 평일 아침에 눈을 뜨면 밥과 반찬부터 확인합니다. 주말 아침은 평일보다 더 아침밥을 재촉하기도 해요. 너무나 예쁩니다. 이렇게 변할 줄 몰랐거든요. 때로는 주는 대로 불평 없이, 어느 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진정으로 아이와 제가 서로 마음 편히 식사한다는 상상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습니다. 점심까지 약속된 초대였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는 평소 먹던 간식 양보다 더 많이 입에 계속 넣고 있었습니다. 생소한 음식이라 점심을 안 먹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의 말은 달랐습니다. 자기 몫으로 주어진 식사를 다 먹고도 부족해서 더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양이 집에서 한 번 먹는 양보다 적었다고 해요. 제 마음은 두 가지였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 민폐가 된 것은 아닐까?’ ‘먹고 더 먹었다니 너무나 기특한걸?’
빵 아니면 안 먹는다고 해서 토스트만 먹고살던 아이였어요. 이제는 밥이 주된 양식이 되고 새로운 것도 먼저 먹어보려 도전도 하는, 전반적으로 식사의 어려움이 없는 잘 먹는 아이로 자랐어요. 특별하거나 좋은 재료를 이용했던 것도 아니에요. 화려한 음식을 아이에게 차려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음식을 하는 동안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했고 아이의 식사 때는 아이에게만 집중하며 대화를 했어요.
다른 아이들 다 먹는 고기라는데 우리 애는 안심조차 뱉어내고 삼키지를 못함에 속상해하지 마세요. 아이도 안 먹는다 하고 안 해주면 그만인 것을 기어코 먹여보겠다고, 먹는 아이로 만들겠다고 억지로 만들고 계시진 않나요? 먹는 모습을 떠올리기보단 남들과 비교된 상태로 시작했는데 엄마 마음이 즐거울 수가 없어요. 만드는 사람이 즐겁지 않은데 맛이 있을까요? 식재료에 사람의 손맛뿐 아니라 마음의 맛도 더해져야 진짜 음식이 된다고 합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이고 치우는 모든 시간 동안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를 계속 체크하시길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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