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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May 20. 2020

"네가 상전일세" - 식사의 기다림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33



아이 주도 식사를 하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둘째의 첫 식사떨리는 마음은 여전했습니다이미 큰 아이의 식사에 대한 번뇌가 있었기에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큰 아이 때 남기지 못한 첫 미음 시식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 세팅까지 마쳤습니다한 숟가락두 숟가락... 뜨기가 무섭게 아이 입이 자동으로 열렸어요닦으려고 준비한 손수건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먹습니다미음 먹이다 정말 울컥했습니다큰아이 하나 키우던 시절에 쌓은 내공 덕분이라는 생각에 집에 돌아온 큰아이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그렇게 시작된 미음은 일찍 접고 스틱 야채들을 내어주면서 본격적인 아이 주도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둘째 아이의 먹성에 큰 파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38개월인 지금까지 식사가 내내 좋았던 건 아닙니다큰아이 때 만큼의 고민과 연구를 위한 시간 투자가 필요 없이 쉽게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정도였어요큰아이에게 정말 고마운 일이죠.


한 번에 먹기 쉽도록, 영양소 골고루 담은 야채밥전


우리 다수가 공통으로 인지하는 식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되면 밥을 차립니다아이의 균형 잡힌 영양을 생각하며 3대 주요 영양소와 무기질비타민까지 골고루 살펴봅니다재료들의 궁합까지 살피시는 분들도 많아요이것저것 차리는 중에도 주식 때 부족할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어 후식이나 간식으로 무엇을 내어줄지 계획하기도 합니다계획대로 잘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합니다그래야 엄마 역할을 다 하는 것 같거든요까꿍이 시절의 아이들을 키울 땐 우리가 철저한 을의 처지입니다그래서 상전 모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기껏 차린 음식이 갑의 처지인 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려집니다다시 해오라는 말도 없이 외면하는 게 우리를 더 속상하게 합니다그런데도 갑의 비위 맞추겠다고 을은 다른 것들을 준비합니다갑의 행동에 인정이 없습니다.


입을 아주 있는 힘껏 다물기.

양손으로 입 가리고 뒤로 넘어가기.

엎드려 코까지 납작해지도록 입 감추기.

구석으로 도망가서 등 돌리고 스스로 벌서기.

갑자기 말을 많이 하며 음식 들어갈 틈 주지 않기.

숟가락이 입을 못 찾도록 LTE 급으로 고개 돌리기.     


혼자 엄청 열심히 먹는 것 같더니 이내 엎드려 식사 중단을 알린다.

아이의 모든 거부 행동의 마음은 단 하나,


나는 먹을 마음이 전혀 없고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왜 이래!’


3, 4세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아가 발달해 가는 시기라서 아무리 우리가 부탁하고 회유를 해도 본인이 싫으면 절대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작은 행동 하나라도 자기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할 때까지 하지 말라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하거든요그러기에 아이 주도 식사를 잘하던 아이들도 요맘때 잘 먹지 않거나 식사량이 줄어들거나밥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들어요그래도 걱정할 부분이 아니에요아이 나름대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이 시기에 맞춰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충실한 행동들이기 때문입니다.




먹성 좋다는 우리 둘째가 이런 행동을 제게 보이기 시작한 게 30개월에 들어서면서였어요제가 아이에게 버리지 마뱉지 마던지지 마.’라는 부탁이 점점 늘어나면서 알게 되었어요아이의 성장은 하루하루가 놀랍죠그렇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당황스럽습니다그래도 괜찮을 거라 여겼어요그러면서 왜 그러는 건지 아이 발달 책도 찾아 읽어보며 원인을 찾아보겠노라 에너지를 조금 쏟았습니다잘 먹고 안 먹고가 일정 주기 없이 들쑥날쑥한 지 몇 개월입니다.


드디어 주된 이유를 찾았습니다아이는 배변 신호가 다소 길었던 겁니다살살 배가 아프다거나 묵직하게 느껴지는 배변 신호를 불편해합니다이것이 아침점심 식사 시간과 겹치면 배변 후에 조금 먹기도 했지만저녁 식사 시간과 겹치면 배변 전후절대 음식을 먹지 않아요그날은 굶고 자는 겁니다어떨 땐, “똥이 뿌직나와서 배가 홀 쪽 해졌는데밥을 먹는 건 어때?”라며 결국에는 오냐오냐하며 입에 넣어줍니다아이는 손으로 신나게 주물러가며 먹고 이유식 시기처럼 난장판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야단치면 스스로 먹었겠죠먹는 척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까요제가 눈 최대한 힘주어 뜨고서 숟가락에 밥 올려 아이 입에 가져가는 위협이 있었다면 더 먹기는 했을 겁니다억지로 아주 조금예의를 차려볼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아이가 한번 결정한 것은 막을 수 없는 본능과 싸우자는 겁니다아이 주도 식사의 기본 중 하나가 기다림이에요이유식 시기에는 놀이처럼 음식을 만지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줘야 합니다주변 시야가 넓어지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한 유아기에는 아이의 성향과 발달에 따라 적절한 식사가 되도록 격려하면서 부담 주지 않고 기다리는 거예요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왜 그런지 이해하기 위한 분석과 관찰의 시간이 포함된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밥을 차려 먹여야 하는 것이 더 우선일 때가 많아요먹여서 재워야 하고먹여서 어디 보내야 하고먹여서 놀게 해야 하는 것인데요우리의 의욕에 먹이는 것이 앞에 서면아이의 다른 것을 잘 감지하지 못하게 돼요아이가 스스로 먹지 않고 뭉그적거린다거나아예 먹지 않는다거나다른 때 보다 딴청을 많이 피운다면 반드시 아이의 몸과 마음에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그때는 아이가 지금은 필요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이해가 먼저여야 해요.



밥 먹이는 고민을 함께 합니다. 카페로 놀러오세요^^

https://cafe.naver.com/anbab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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