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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Oct 10. 2020

아이 주도 식사의 성공, 결국 경험이다!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38


“계란 먹었으니까 이제 밥 한 번 입에 넣어. 다 먹으면 내가 또 계란 줄게.”

“먹어 봐. 김치도 맛있어. 매운데 맛있어. 먹고 매우면 물 마시면 돼."

큰아이가 작은 아이와 마주 앉아 식사하면서 나누는 수많은 대화 중 하나에요. 밥 위에 반찬 올려 장난도 치고 마법 부리듯 이상한 기합 소리를 넣으면서 식사를 즐겨요. 밥 한번 먹고는 고개 숙여 식탁 밑에서 눈 맞추고 서로 넘어갈 듯 웃어댑니다. 식사 시간은 당연히 길어지죠. 그러나 잘 먹었다며 마칠 때까지 이들의 유쾌함은 식사를 즐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매번 이렇지는 않고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저녁과 주말에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종종 즐길 수가 있습니다. 두 아이의 유쾌한 식사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첫째의 입장에서 동생이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자기를 챙기는 것보다 동생에게 머무는 시선이 많았기에 저를 야속하다며 울기도 했어요. 작은 아이의 식사를 돕도록 어느 정도 큰아이에게 몫을 넘겨주고 먹이는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야 동생이 생긴 현실과 같이 공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큰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식사를 알려주던 어느 때의 차림 ⓒ지예


작은 아이의 아이 주도 식사를 위해 재료들을 손질하며 덩어리로 된 음식들을 줄 때면 큰아이가 신기하다고 반응했어요. 이게 밥은 아닐 텐데 왜 간식 같은 것만 먹이느냐 물었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찐 단호박이나 고구마나 감자, 자른 바나나, 껍질 벗긴 과일들, 거기에 반찬의 재료가 되는 파프리카나 브로콜리 등을 그대로 식판에 올려주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죠. 또 한 가지 반응은 다 먹지도 않는 거 왜 주느냐였고 다른 하나는 너무 더러워서 못 보겠다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아무런 간이 되어있지 않는 것은 먹으려 하지 않던 큰아이는 동생의 식사에 자극을 받아 생야채를 먹어보는 경험을 스스로 하더라고요. 두 아이는 서로가 먹는 다른 음식들에 관심을 가지고 먹어보려는 시도를 계속했어요. 그러다 보니 큰아이의 음식은 간을 약하게 해야만 했고 그렇다 해도 둘째의 간이 된 음식 섭취 시기는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두 아이에게 모든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제게는 별로 새롭지도 않은 것들이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해할 때면 정말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바나나 하나가 3등분으로 갈라진다는 것을 아시나요? 알맹이를 중심으로 길게 3등분으로 나누어지는데요. 아이에게 먹이는 간식이거나 이유식 재료로 인식하지 못할 때, 저 혼자 바나나를 먹으며 장난칠 때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다가 아이 주도 이유식을 위해 바나나를 잘라서 주었는데 아이가 잘 잡지 못하더라고요. 워낙 미끄러운 데다가 작은 손으로 잡기엔 바나나 크기가 컸기 때문인데요. 당근을 찌려고 자르다가 문득 바나나가 3등분이 된다는 사실이 스틱형에 아주 적합하다는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미끄러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손에 잘 잡혔고 입에 넣는 것도 조금 수월해졌어요.


3등분으로 길게 나눠지는 바나나 ⓒ지예


모든 것은 경험에서 시작되잖아요. 사소한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발단이 어떤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경험의 가치는 절대 무시할 수가 없죠. 어딘가에 쓰일 수 있으려면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바나나 3등분이 작은 아이의 아이 주도 이유식을 위한 스틱형 음식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 밥 따로 반찬 따로 먹으려는 동생에게 밥 한 번에 반찬 한 번 먹어야 함을 알려주려는 큰아이의 식사 규칙도 모두 축적되어 체화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단 한 번의 경험일지라도 그것이 아이가 느끼기에 강렬했다면 여러 번의 시도도 필요가 없어요. 


작은 아이가 파프리카를 씹어 먹고 브로콜리를 먹으며 너무 맛있다는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은 큰아이가 보기엔 아주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어른들만 맛있다면서 즐기는 듯한 재료들이, 자신에게 먹이기 위해 일부러 맛있는 척하려는 것으로 판단했던 모습을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동생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엄마, 나보다 나은데? 너무 잘 먹잖아. 이 맛을 아나? 알까? 진짜?” 넋을 놓고 동생이 파프리카를 잇몸으로 뜯어서 오물거리는 모습을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브로콜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먹을 만큼 먹고 즐길 만큼 즐기는 모습에도 빠졌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가지고 있어요. 가족 구성원이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잖아요. 아이가 그냥 밥을 잘 먹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몇 번 시도해보시고 아이 주도 식사(이유식, 유아식)가 되지 않는다고 하시는 유경험자들 역시, 지속해서 3개월 정도의 시도는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 가지 재료에 대한 거부가 줄어들고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8회의 노출이 필요하거든요. 본능으로 물건을 잡고 입으로 가져간다지만 아이의 눈으로 상대의 행동과 말, 표정들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는 놀이 같은 모방에서 식사가 시작됩니다. 아이와 동일한 식사를 차려 먹는 모습을 보여주실 때 아이가 상대방의 표정과 반응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빨리 드시고 어서 먹으라 재촉하거나 이것저것 먹어보라는 권유보다는 비슷한 속도에 맞추어 식사하시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속도 조절을 통해 평소 드시는 모습 그대로 아이가 배울 기회를 주시는 건데요. 그러면서 웃는 얼굴로 아이의 반응에 피드백해 주시면 아이가 음식과 식사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https://cafe.naver.com/anbab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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