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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Oct 25. 2020

차리고 먹일 때 재미가 있나요?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41

  첫째 아이 유아식 시작할 때 5구짜리 스테인리스 식판을 샀습니다. 5구 식판 사용 초기에 칸 채우느라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음식을 아이에게 맞추기보다는 아이를 식판과 식판에 담긴 음식에 맞추려고 버벅거렸습니다. 차린 음식을 어떻게든 한 숟가락이라도 더 입에 넣어주려고 하거나, 한 번이라도 골고루 챙기려고 마음을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또한, 담는 밥이 소복해야 보기에도 좋은데 아이가 먹는 양을 고려해서 담다 보면 양이 적어서 볼품이 없습니다. 저에게 5구 식판은 항상 비어있는 듯해서 허전했고 더 먹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요리 솜씨가 부족하고 국을 선호하지 않으며, 부지런하지 못한 엄마라서 5구짜리 식판은 여전히 버겁습니다. 특히 반찬거리가 없을 땐 구색 맞추어 칸만 채우는 꼴입니다. 없앤 줄 알았는데 5구 스테인리스 식판이 그대로 이삿짐 속에 얹혀 왔습니다.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할 때, 교육부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급식 사진을 접했습니다.       

                   

다 먹지도 못할 거 에미 욕심으로 채우다. ⓒ지예


재료 활용과 음식 색의 다양함에 감탄했고 음식 배치의 새로움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밥이 놓여야 할 왼쪽 아래 넓은 칸에 국이 담긴다거나 국이 담겨야 할 자리에 요리(반찬)가 담겼거든요. 넓은 칸에 주요리가 담길 때면 밥은 반찬 칸에 있는 사진을 여러 개 보았습니다. 저는 왜 음식의 위치를 바꾸려는 생각은 못 했을까요? 변하고 싶고 차리는 지겨움을 피하고 싶던 욕구가 아주 강했었는데도 말이죠.      


생후 36개월이 지나면 아이들의 자율성은 두 돌 때보다 더 커집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 때문인데요. 본인의 의지와 맞지 않을 때는 ‘싫어’ ‘안 해’로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그렇게 되면 차리는 우리는 재미가 없어서 싫증이 나고( 또는 화가 나고) 아이는 비슷한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또 싫증이 나는 악순환이 됩니다. 


제가 겪었던 그 악순환 속에 아이와 저는 늘 울었던 거 같아요. 음식에 대한 경계심에 식욕도 상대적으로 적었던 첫째 아이였습니다. 여러 음식이 놓인 식판은 보기만 해도 답답하거나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음식의 위치를 달리해서 주먹밥은 반찬 칸에 놓아주거나, 조금 신경 쓴 알록달록한 음식은 밥이나 국 칸에 넣어주는 변화를 떠올리지 못했어요. 아이의 흥미와 호기심 자극을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식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겠지요. 5구 식판이 전부라 여기던 시절에 이런 소소한 재미 요소를 가미했다면 서로가 덜 힘들었을 겁니다.                                                      

빵 : 갈라 먹고, 뜯어 먹고, 파 먹고, 발라 먹는 아이의 재미 ⓒ지예

     

한 때, 아이 식사를 잘 챙기지 않으면 그나마 먹던 것도 먹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한 가지 바라던 '엄마 식사' 모습이 있습니다. 토스트에 계란 후라이, 음료 한잔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식사인데요. 언제쯤이면 쉬어가는 듯한 식사를 해보나 동경만 했습니다. 밤새 달라붙은 식도가 물 한 모금으로 열리는 아침이면 더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과 다르게 첫째 아이는 다행히 평일 아침에 반드시 쌀밥과 반찬을 먹어야 하는 식습관을 형성했습니다. 엄마 밥이 좋아서 눈 비비며 숟가락을 드는 아이가 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도록 격려하는 듯합니다. 


아이의 식사 재미는 잘 찾아주지 못했으면서 엄마의 재미만 찾는 꼴의 부끄러운 바람이 몇 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주말이면 가끔 빵으로 한 끼를 해결합니다. 밥보다 든든함은 없지만 저는 설거짓거리가 별로 없는 간편함을 얻고 아이들은 잼 바르고 뜯어먹는 등의 재미에 식사 시간이 흥미롭습니다.             

                                         

콩자반 콕콕! 하얀 애기 물개 얼굴 ⓒ지예

                                                                              

같이 만들어 잡아 먹은(?) 곰돌이 짜장 ⓒ지예


유아식 거부가 길었던 첫째 아이의 유아기에는 이것저것 뭐라도 먹을 가능성이 있는 음식들을 마련하고 눈치껏 알아서 차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식판을 채우는 버거움에서 내려왔고 1식 3 찬이 기본! 이런 거 없던 때가 허다합니다. 되는대로 차리는 게 일상이었으니까요. 상 위에 한 그릇 음식만 올린 적도 많고 1식 1 찬일 경우도 많았습니다. 쌀밥이 아닌 떡이 주 탄수화물일 때도 많았지요. 외식으로 뷔페를 가면 탐탁지 않은 음식을 선택하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만큼 배를 채우면 그냥 두었습니다. 즐거움에 겨운 발짓과 미소를 볼 때면 선을 그어 참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 주도 식사는 한 두 가지만 먹더라도 눈으로 익히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넣어보며 오감을 자극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다양한 식사 차림의 경험과 음식 선택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가끔은 색이나 모양, 위치 변화 등의 재미 요소를 더한 차림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차리는 재미, 먹이는 재미를 각자의 상황에 맞게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식사에 미치는 분위기, 환경, 사람, 도구 등의 ‘재미’는 양육자와 아이의 건강한 육아를 위해 필요합니다.



https://cafe.naver.com/anbab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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