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지예 Aug 22. 2019

음식에 담긴 추억 - 두 살 반항기를 떠올리며

아이주도식사 솔루션 #23


시원한 음료가 먹고 싶은 날이었어요. 냉동실에 있던 미숫가루를 꺼냈습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둘째가 어느새 제 곁에 다가와 있었어요. 저를 보는 게 아니라 제 손끝에 시선이 머물며 이리저리 따라다니더군요.     


“엄마 뭐 해?”

“응, 미숫가루 타서 마시려고. 같이 마실래?”

“네! 나도 먹고 싶어요.”     


둘째는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는 무모함이 있어요. 무슨 맛인지 알아보겠다고, 무슨 느낌인지 궁금하다며 오감을 동원해서 참여합니다. 자기 몫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아이가 예뻐요. 이날은 첫째의 급식 식단에 미숫가루가 나왔습니다. 아침에 저만 확인하고 등교를 시켰어요. 오전 내내 미숫가루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급식으로 받기만 하고 친구에게 나눔을 할 거란 확신이었습니다. 두 살, 모유 수유를 거의 끊을 때까지 아이가 주로 마신 음료는 물이 전부였어요. 그 흔한 보리차도 거부하며 오로지 생수만 마셨습니다. 우유도 일주일에 평균 한 팩이었어요. 너무 목이 마를 경우에는 시원한 우유 하나 사주면 200mL를 다 먹더라고요. 단, 곁에 우유를 먹는 또래가 자극제가 되어야 합니다. 달콤하다는 각종 과일 주스도 아이는 환영하지 않았어요. 포장지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한두 모금 마시고는 인상 쓰며 제게 내밀었습니다. 먹이고 싶지 않은 캐릭터 음료는 친구들 따라 마셨다가 돈도 음료도 다 버렸습니다. 그러니 입안에 까슬하게 남는 미숫가루는 목 넘김조차 거부하게 되는 음료인 거에요. (급식이 어떠했냐 물었더니 역시, 미숫가루를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에게 '양보'했다고 합니다.)     


자아가 형성되는 두 살에는 나와 엄마가 다름을 알기 시작하죠. 그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아니야’입니다. 이 세 글자 안에 포함된 의미가 있어요.     

   ‘엄마의 의견만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겠어!’

   ‘나도 내 생각과 기분이 있어!’

   ‘내 주변 사물과 상황이 나의 의지로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아이의 행동은 예측이 되지 않으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주변을 탐색하고 실험을 해요. 


그러한 성장 중에서 제 아이가 보인 음식 거부는, 찔끔거리며 간을 보고 ‘이것은 내 입맛에 아니야!’라며 판단하고 선택한 많은 탐색 중의 하나입니다. 물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아무 맛도 없고 자신의 예민한 미뢰를 최소한으로 자극했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로 들었던 생각은 ‘큰아이에게 기억되는 계절 음식이 있을까?’였습니다. 아이가 사시사철 즐겨 먹으려는 스파게티나 토스트는 계절의 의미를 담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꽤 궁금했습니다. 자랄 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일들이 나이 들어서 잔잔하게 전해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제가 느끼기에 지금은 그럴싸한 이슈도 없는 일상이지만 아이는 저와 다르게 따로 부여하는 의미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아이가 더 자랐을 때 저처럼 꺼내 볼 아이만의 식사나 음식 기억이 있기를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미숫가루는 설탕을 섞어 얼음 띄운 여름의 든든한 음료입니다. 여름 방학이면 선풍기 앞에 앉아 미숫가루를 들이켰습니다. 양푼에 타서 오빠에게 나눠 주고 남은 몫은 숟가락으로 떠먹거나 그대로 마시거나 하며 농도나 단맛 조절에 대한 것을 살피고 다음번에는 더 맛있게 탈거라 다짐하기도 했었어요. 유리컵에 담아 마실 땐 겉면에 송골송골 맺힌 물을 긁어내려 컵 속이 더 시원히 들여다보이도록 하며 놀면서 먹었고요. 조금 더 커서는 커피 가루를 타서 먹는 대범함으로 새로운 맛을 개척했다는 희열을 느꼈던 추억의 음식입니다.     


마음으로 기억하는 음식은 손끝으로 재현이 되고 또 다른 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음식이 됩니다. 음식을 완성하기까지의 모든 상황과 그 속에서의 들뜨고 재잘대던 몸짓 하나까지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에 어린 내가 도와 같이해냈다는 기쁨과 음식을 대접받는다는 환히, 맛의 감동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제게 그런 음식이 있습니다. 그럴싸한 고명도 없는 평범한 칼국수 한 그릇은 외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여름 특별식이었습니다.      


동네 작은 제면소에서 갓 뽑아낸 콩가루 반죽 면을 검은 봉지에 담아 오며 고소한 콩가루 향을 계속 맡았어요. 킁킁댈 때마다 콧구멍이 커지는 거 같았고 멸치 육수에 넣어 따뜻한 국수가 되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단번에 심부름에 응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엔 돈을 혼자 쓴다는 것과 국수를 받아온다는 것이 무척 어색해서 싫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는 구수하고 담백한 그 맛이 좋아서 싫어도 할 수 있었어요.     


큰아이가 음식에 도통 관심을 두지 않을 때도 하나하나 다시 만들고 요리책을 보며 연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제 마음과 오감으로 기억되어 이야기된, 제 어린 시절의 음식에 얽힌 좋은 추억들 덕분입니다. 제가 혼날 짓을 해도, 말썽을 부려도, 나중에 먹겠다며 늦장 부려도 밥상은 늘 차려졌습니다. 편식이 있어 가려먹던 때도 가장 좋아하는 배추김치는 꼭 빠뜨리지 않으셨어요. 외할머니께서는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같이 먹자며 권하셨고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조금 덜 먹고 느리게 먹더라도 제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같이 있어 주셨어요. 투박했지만 본인이 알고 계신 범위에서 최대한 보살피셨던 손녀에 대한 배려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큰아이의 이번 여름은 고작 미숫가루나 타 먹던 저의 꼬마시절 여름과는 다르게 흐릅니다.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만든 음식을 가족과 나누는 기쁨에 빠져있어요. 밥 한 톨 남기지 않으려는 동생을 대견하다 칭찬을 합니다. 동생과 단 둘이 점심도 챙겨 먹기도 하고요. 설거지도 하려고 덤비고 스스로 간식도 만들어 먹으려 해요. 당장의 전쟁 같은 밥상과 들끓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다 터뜨려버렸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없었을 겁니다.    

  

18개월 즈음에 말도 제법 하는 아이를 보고는 동네 어른들이 다 키웠다 하시더라고요. 약간의 수월감은 있지만 본격적인 성장 반항과 밥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음식에 강한 거부를 보이며 난감하게 했다가 어느새 다시 좋아지기를 반복했어요. 먹다 안 먹다 하는 아이의 장단에 놀아나다가 진이 빠져 지쳤었고요. 그런데도 긴 육아에 있어 조금이라도 유연하게 아이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계속 마음 훈련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의 온몸에 붙은 밥풀을 보면서는 ‘이건 언제 먹으려고 여기 둔 거야?’라던 저의 너스레와 웃음, 엎어진 국이나 반찬들을 보면서는 ‘몸속 밥 주머니가 텅텅 비어서 허전하겠다’라며 받아치는 순발력, 입에 음식 하나 넣으려고 아이에게 보이던 저의 잔망스러운 잔재주들이 떠오릅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밥 때문에 엄마와 본인이 서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때마다 자신이 느끼는 음식에 대한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다양하게 나타내는 아이의 의사를 저는 캐치하고 이해하며 줄다리기를 한 덕분에 아이는 밥이나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극복해냈습니다. 영유아 시절의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밥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힘겨워 좌절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마구 쏟아 내는 일이 다반사였다면 아이의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았겠지요. 아이가 엄마 밥을 원 없이 먹고 자라는 기회를 충분히 누렸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그러기에 음식과 식사에 대한 따뜻한 기억 여러 개를 마음에 심어주는 과제를 계속 실천 중이에요. 사람과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때 꺼내 볼 만큼 든든함이 되어 주길 희망하면서요.      


대부분의 사람은 음식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기억일 수도 있고 아픈 기억일 수도 있으며 피하고 싶은 기억일 수도 있어요.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 엄마의 밥과 가족의 식사가 어떠했는지 떠올릴 때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되길 바라실 겁니다. 우리의 시간이 온전히 아이의 시간에 들어가 있는 현재 육아 순간이 절호의 찬스라 생각해요. 육아 시간이 다 좋을 순 없을 거예요. 다 좋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성장기를 떠올려 자잘한 기억의 파편들을 모았을 때 ‘그래도 괜찮았다’로 추억되기 위해, 엄마로 주 양육자로 어떻게 식사를 해야 할지 고민을 계속해나갔으면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사 거부 - ② 가벼운 엉덩이 앉히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