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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Oct 25. 2020

더러운 아이 식사, 그래도 다시.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42

 식사 때가 되면 두 아이의 다른 성향은 너무나 크게 보입니다. 이유식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던 돌 무렵을 떠올리면 그 다름이 더 차이가 나네요. 큰아이는 모래며 자연물은 손으로 덥석덥석 잘도 잡았어요. 만지고 뜯고 흩어버리는 등 놀이에 집중할 때 손을 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면서 어쩌다 손에 묻으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불편해하고 징징거렸어요. 


반면 둘째는 놀이를 위한 손을 쓰는 것은 주저했어요. 모래를 만지는 느낌도 싫고 나뭇가지의 거친 느낌도 싫어서 품에 안겼습니다. 대신, 턱받이는 불편하다며 하지 않으면서 음식은 손으로 열심히 주물렀지요. 식사의 자유로움을 즐기면서 음식과 한 몸이 되어 여기저기에 묻혀가며 먹습니다.     

몸으로 나뒹굴던, 두 번째 가을의 한자락(16개월 즈음) ⓒ지예


그런데 희한하죠. 아이들이 바깥에서 지저분하게 놀아도 잘한다는 시선으로 보면서 집에서 더럽게 밥을 먹으면 그게 그렇게 참기 어려웠습니다. 못된 심보입니다. 큰아이는 먹여주는데도 흘려서 격노했었고 둘째는 혼자 먹으며 자꾸 흘려서 참을 인을 마음에 무진장 새겼습니다. 


 아이 주도 식사를 하면 장기적으로야 밥상의 평화가 온다고는 하지요. 솔직히 당시 심정은 지금 당장은 먹여줄 때 잘 받아먹는 것이 최고의 평화이기에 BLW를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첫째 하나 키울 때보단 상황이 나아지고 마음도 넓어진 것 같았으나 아이 식사를 성숙하지 못한 마음으로 여전히 대하는 제가 한심했었습니다.     


원래 더럽다는 것 받아들이기     

 식사를 마친 자리를 청소하다가, 목이며 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음식들 씻기다가, 옷에 덕지덕지 묻은 음식들 털어내고 문질러 세탁하다가 등등,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저조하면 욕 나올 뻔한 상황들이 생겼습니다. 그럴 때면 대단한 각오를 하고 덤벼야 하는 것이 아이 주도 식사인지 물음표를 마구 던지기도 했었어요.      

 

아이의 식사는 원래 지저분하다는 것을 알지만, 아는 것과 실천은 어려웠습니다. BLW(아이 주도 이유식)부터 더럽고 지저분한 식사 후의 모습에 혀를 내두를 때면 아이가 스스로 먹는다는 멋짐 뒤엔 치우는 사람의 공이 더 따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이가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지만 혼자 먹게 두면 정말 난장판이에요.        

 

초기에는 특히, 음식을 탐색하며 ‘먹는 것’이란 존재를 인지할 시간을 주어야 하죠. 모양과 맛, 색감 등에 익숙해지도록 아이에게 맡겨 음식으로 오감이 자극받는 시기는 더러워지는 식사 시간을 인내하고 견뎌야 하는 아이 주도 식사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해요.     

                                      

옷 소매와 옷에 자기가 먹은 거 티 팍팍 내기!!! ⓒ지예


 다섯 살 인생을 사는 제 둘째 아이의 식사 후는 여전히 더럽습니다. 식사 자리와 주변이 아니라 입고 있는 옷이 완전 더럽습니다. 옷이 걸레냐고 말할 정도로 소매며 배에 식사 때마다 먹은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거든요. 그간 버린 옷도 많아요. 지금 입는 옷들도 더 얼룩이 지워지지 않네요. 더러워진 옷이 대수겠습니까? 고비가 있기는 했지만 아이 주도 식사를 지속할 만큼의 가치를 분명히 느꼈기에 내려놓지 못했어요. 식사 자리는 BLW를 시작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참을만한 것을 넘어 깨끗한 수준입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태도 찾기     

 제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기에 아이의 식사 더러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아니에요. 저는 약 6년간 징그럽게 안 먹는 큰아이에게 된통 당했어요. 그 경험은 지금의 번거롭고 귀찮고 더럽다 체감되던 아이 주도 식사와 아이의 밥투정을 조금은 수월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할 힘이 되었습니다.      


 엄마의 입장에서 식사 전후의 수월함을 위하기보다는 놀이 중의 하나로 밥을 대하게 했어요. 그리고 어른의 기준에 의한 밥상머리 식습관 형성이 아니라 아이의 행동 발달과 당장의 기분 상태를 이해하고, 그것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 식사 행동이라 받아들이며 맞춰 주었어요.     


 "밥 주머니 요정들이 어지럽데. 그러면 웩하고 토해."

 “누워서 먹으면 음식이 똑바로 내려가지 못해서 

여기(가슴 부분 가리키며)에 음식이 딱! 멈춰.

그럼 요정들이 왜 밥을 안 주지?? 

배고파~ 힘이 없네~하고 내내 기다려.”     


  밥 먹다가 내려가서 뛴다거나 엎드리거나 하면 해주던 말이에요. 지금은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말을 더 붙여서 이야기처럼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나름의 단계를 두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말해주고 어느 정도 올바르지 않은 행동도 묵인해주고 비위 맞춰주면서 식사는 다른 놀이 활동들처럼 즐거운 행위 중 하나라는 것을 인지하도록 돕고 있어요.       

   

젓가락은 거들 뿐, 배추는 생으로 먹어야 제맛이지~ ⓒ지예

   

"괜찮아, 먹고 씻으면 돼."

"괜찮아, 손 씻어서 만져도 돼."

"괜찮아, 먹다 보면 흘릴 수 있어."

“괜찮아, 집에서는 그래도 돼.”     

라며 엄마의 치우는 부담과 더러워지는 짜증은 되도록 감추고 모른 척 하면서 허용 가능성에 대해 말해주고 무엇보다, 아이가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했어요.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쌓여 생야채들이 반찬이 돼요. 상추보다 배추를 좋아하고 데친 브로콜리는 가장 좋아하고요. 야채들 손질하고 있으면 먹어봐야 한다고 관심 가지고요. 나물 무쳐놓으면 차리기 전에 자기가 간을 봐야 한다고 평가단을 자처해요.      



식사의 평화 내려 놓음 즐기는 시간      

 치즈든 빵이든 주면 옷에 묻혀가면서 뜯어먹고 찍어 먹고 즐기며 먹는 것을 터득해가요. 그러다 보면 아이도 더러운 즐거움보다는 깨끗한 즐거움을 선호하게 되고 음식은 마냥 놀기보다는 먹었을 때 더 보람이 있음을 알더라고요.     


 “음식을 먹는 반듯한 자세 / 음식을 먹는 깨끗한 방법” 이런 것을 우선하기보단 음식을 즐기는 마음이 가장 가장 가장 가장 먼저가 될 수 있도록 엄마가 많~~~~~~~~~~~~~이 뇌와 마음을 내려놓을 일정 시기가 필요해요. 오래가지 않아요. 아이 주도 식사를 언제 시작하셨던지 우리 곁에 아이가 있는 20년 중 초기 4년 정도만 애쓰시면 남은 앞날이 평화로워져요.     


  아이와 둘이 밥 씨름하는 엄마는 외로워요. 엄마만 외로워요. (어느 누구라도 우리만큼 정성을 들여 밥을 먹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오늘 당장 암울하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오늘 조금 수월해졌다고 앞으로 계속 희망적일 거라 속단하지 마세요. 무엇이든 기복이 있어요. 그러면서 아이도 우리도 점점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이 글을 읽으시는 순간!!!! 우리 자신을 위해 "화이팅!!!!"을 외치실 수 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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