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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Aug 23. 2018

먹성의 의미로 보는 아이 주도 식사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04



못 먹는 감 찔러보듯이 신경 써서 차린 음식을 포크로 튕겼다.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밥과 반찬이 트레이를 이탈했다. 그것들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질 때 마음은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았다. 청소할 생각에 경악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내일부터는 부스터를 의자에 올리지 말자. 바닥에서 먹이자. (2017.03)
어질러진 상태의 음식을 손으로 문질러서 그림을 그렸다. 음식이 묻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는 웃는다. 즐거운 상태로 손가락을 입에 넣어 쪽 빨고 이내 다른 손가락도 쪽 빨았다.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밥 한 톨을 발견했다. 입에 넣어 보겠다며 짧은 혀를 내밀었지만 손바닥으로 얼굴만 문질렀다. 콧구멍에 으깬 감자가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계속했다. 결국 실패하고 다른 사냥을 했다. 포크에 묻은 잔여물을 입으로 바로 가져가면 편하련만, 굳이 손으로 만져 떨어뜨리고는 포크만 입으로 가져갔다. (2017.04)



위 내용은 먹성 좋은 둘째 녀석의 이유식 중기 때 기록한 식사 일기 중 일부입니다. 넙죽넙죽 받아먹던 초기 이유식 시기를 보낸 뒤, 스스로 먹으라고 부스터 트레이에 익힌 재료들을 펼쳐줬어요. 여기저기 발라가며 먹는데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더라고요. 그 옆에서 음식 맛을 제대로 모르고 경쟁하듯 먹는 첫째 녀석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배가 고파서 먹었는데 그냥 단순히 배만 부르고 무언가 헛헛하다 싶은 식사가 있죠. 반면에 정말 간단한 것을 먹었는데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든든함이 느껴지는 식사가 있습니다. 식사때 여겨지는 든든함의 차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요. 저는 두 아이의 식사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차이가 보이더라고요. 음식을 대하는 기본 마음 자세에 차이가 있었어요. 


생당근, 익힌당근 가리지 않는다.


둘째 녀석은 뭐든지 먹어봅니다. 말이 트이고 나서는 "나도 먹어 볼래." “나도 먹어도 돼?”를 입에 달고 살아요. 뜨겁지 않다면 말리지 않고 다 먹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그러면 넣었다가 바로 뱉어낼지라도 무조건 입으로 확인을 해요. 당장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가려내더라고요. 호기심에 민들레 씨를 입에 넣은 채로 “이거 못 먹어?”라며 웃음을 줬던 적도 있어요. 


첫째도 잘 먹어요. 그런데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늘 눈으로 모든 것을 확인합니다. 색, 모양, 형태 등 눈으로 맛을 확인하고는 "지금은 별로 안 먹고 싶어."라며 일단 거부하고 봅니다. 눈으로 보기라도 하면 다행이게요. 제가 반찬을 새로 했는데 간 좀 봐달라고 부탁하면 뭐가 들어갔냐는 말만 곁으로 옵니다. 싫은 재료로 조리한 거라면 간 보는 것을 적당히 거절도 합니다. 그렇다 해도 어떨 땐 냄새에 이끌려 군침을 흘리며 속 재료도 모른 채 엄청나게 먹기도 해요.




결과적으로는 잘 먹는다지만 둘째와는 달리 그 과정이 순탄치 않습니다. 먹성이 없던 아이에게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씹고 삼켜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크게 애쓰지 않아도 될 듯한 과정을 거쳐왔기에 하나하나가 여전히 어렵게 느껴져요. 


그런데 먹성이 좋으면 먹는 양도 많은 걸까요? 우리가 만족할 만큼의 양을 비워주는 게 먹성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먹성은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다.’는 의미와 함께 ‘음식을 먹는 분량’의 의미도 있습니다. 다만, 음식을 먹는 분량은 개인차가 있습니다. 엄청 즐겁게 잘 먹고 식사 시간이 짧다 해도 먹는 양은 적을 수 있는데요. 아이는 과식 없이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먹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아이가 배부름을 느끼고 스스로 조절해서 그만 먹는 거예요. 적당히 배부른 느낌을 알고 식사를 마치는 선택은 안 먹거나 과식하는 것과 비교해서 무척 중요합니다. 


잡힐 때까지 시도한다!


주먹을 쥐어보세요. 아이의 주먹도 한번 보시고요. 위는 자신의 주먹 크기 정도에요. 음식이 들어가면 20배 이상 늘어나기는 해요. 하지만 배 속을 늘린다고 따라다니면서 억지로 먹이는 것은 못할 짓이란 걸 일찍이 경험을 해봐서 알아요. 그리고 분명 먹이는 쪽의 심리적인 내적 갈등 때문에 잘 먹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 주도 식사를 시작하고 진전이 없다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실 수 있어요. 이유식 시기, 아이에게 맡겨두면 걱정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바닥에 버려지는 것이 많고 대충 만지다만 상태로 식사를 그만두는 날들이 허다하거든요. 아이 주도 식사(이유식, 유아식)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면 바로 이렇게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아 보인다는 것에 있어요. 


“이러다 키도 안 크고 잔병치레를 하는 거 아니야?” “거의 남기는데 영양분 흡수는 제대로 하는 거야?” 등 주로 엄마의 판단으로 아이 주도 식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먹여주는 엄마의 역할이 더 큰 부담이 됩니다. 마음대로 받아먹어주지 않는다고 아이와 씨름하며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잖아요.      


장점은 부각시켜주고 단점은 개선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어야 하지요. 밥 먹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아이의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기본 먹성을 알아야 해요. 지금 당장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음식을 탐색하며 본인이 먹을 수 있는 만큼 먹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믿어주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식사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유식 시기부터, 아니면 유아식을 하고 있는 지금부터라도 그만 먹는다는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믿어주세요. (아예 먹지 않는다는 것과 구분이 되어야겠지요.) 우리가 원하는 아이의 올바른 식사 태도는 식사를 함께 하는 양육자의 믿음에서 시작되니까요.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은 모든 육아 요소에 적용되는 공식과 같은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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