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48
“엄마는 그게 맛있어? 왜 먹어?”
제가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 며칠 동안 하루 한 끼는 라면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4일째가 되니까 어린 둘째가 자신의 밥과 왜 다른지 물어봅니다. 첫째 때는 먹고 싶어도 참았고 몰래 먹으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들키면 ‘키가 다 자라면 먹어. 큰 언니 되면 맘껏 먹어.’라는 궁색한 핑계로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가공식품을 피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 첫째는 못마땅함을 담은 눈빛으로 모순적인 저를 지적합니다. 아이에게는 건강을 이유로 즉석 음식은 되도록 먹이지 않으려 하면서 제게는 너무나 관대합니다. 엄마의 건강이 곧 아이의 건강이며 엄마의 체력이 기본이 되어야 건강한 육아를 할 수 있음을 아는데도 제가 무탈하게 자랐다는 옛날 환경만을 생각하며 놓치게 되는 것들이 생깁니다.
■유기농 식품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 하나?■
‘나는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만 내 아이는 안 된다’는 마음은 같을 겁니다. 아이를 위해 되도록 더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주려고 엄마의 레이더는 정보를 찾아 쉴새 없이 돌아갑니다. 그러다 한 번쯤은 유기농 식품 매장을 향했을 겁니다. 정말 유기농 식품은 괜찮을까요? 유기농 식품으로 정성을 다했지만, 아이의 성조숙증 진단에 허탈함과 억울함을 호소하시는 어느 어머니의 글을 봤습니다. 이런 경우가 의외로 흔함을 알게 되고 먹거리 하나 단속만으로는 우리 아이가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음을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생활의 편리를 위한다는 이유에서 환경호르몬 유발 물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치약, 화장품, 핸드워시, 세제류, 놀이 매트 등 생활용품 대부분이 합성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산업화로 인한 오염까지 더해 공기로 뿜어지는 화학 물질의 영향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생활 속 모든 제품의 생산부터 소비까지, 탄소발자국에서 시작되는 고민의 범위는 결국 환경 전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생활 속 습관이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환경호르몬, 아이들이 더 위험하다■
2002년 대한의사협회지에 소개된 ‘내분비계 장애 물질’ 내용은 환경호르몬에 의한 성장의 위험성을 알립니다. ( https://synapse.koreamed.org/Synapse/Data/PDFData/0119JKMA/jkma-50-359.pdf )
“우리가 사용하는 샴푸, 헤어 겔(hair gel), 바디로션(body lotion), 비누 등의 제품에 흔히 포함되어 있는 라벤더향(lavender)이나 차나무기름(tea tree oil) 성분이 남자아이에서 사춘기전여성형유방증(prepubertal gyn ecomastia)을 유발할 수 있다는 최근의 보고는 이러한 내분비계 장애 물질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생활 주변에 들어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내분비계 장애 물질’ 본문 중에서)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지금, 환경 호르몬의 영향이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성조숙증이나 조기 사춘기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2014년에 환경부 국립환경연구원은 ‘어린이·청소년 인체 내 환경 유해물질 농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성인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환경보건기초조사(2009~2011년) 결과와 비교하면 어린이의 내분비계 장애 추정물질의 농도가 높은 수준인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비스페놀 A의 경우, 성인보다 1.6배, 프탈레이트 대사체는 최대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비스페놀 A와 프탈레이트 대사체는 플라스틱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입니다. 비스페놀 A는 플라스틱 제품 제조와 식품이나 음료수 캔의 코팅 물질 등에 널리 사용됩니다.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 가소제로서 각종 폴리염화비닐(PVC) 제품, 목제 가공 및 향수 용매, 가정용 바닥재, 장난감, 가죽 제품, 카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우리의 몸은 호흡과 피부 접촉, 음식을 통해 환경호르몬에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야 비로소 문제의 원인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환경호르몬은 환경에서 분해되지 않고 생물체에 축적되어 장기간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줄일 수는 있다.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는 환경 조성만으로도 관련한 질병 가능성을 낮출 수가 있습니다. 생활용품을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면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하다는 지적보다는 아이와 가족의 건강을 위한 실천으로 생각을 기울여 보았으면 합니다.
■환경호르몬 노출 양을 줄이는 슬기로운 실천 다섯 가지■
1. 아이가 쓰는 용품의 성분이 무엇인지 늘 확인하기
아이가 쓰는 장난감, 식기류, 놀이 관련 용품에는 가소제가 포함된 플라스틱일 경우가 있습니다. 플라스틱도 종류가 많아요. 안전을 위한 아이가 쓰는 플라스틱 제품에 표기된 성분 확인은 필수입니다.
PP, PET 보다 PVC, PS 사용은 피해야 합니다. PVC(폴리염화비닐) 소재의 놀이방 매트를 사용 중이라면 매트 위에 얇은 이불이나 러그를 올려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일수록 피부에 닿는 시간이 길고 그 손을 입으로 자주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2. 안전한 소재 선택
아이들이 사용하는 식기류는 환경호르몬이 배출되지 않는 안전한 소재를 선택해야 합니다. 젖병과 물병에 사용되는 트라이탄, PESU, PPSU들은 신소재로 내열 온도도 높고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소재입니다. 가정 식기류는 재질의 특성은 다르지만 스테인리스, 유리류, 실리콘 제품이 환경 호르몬으로부터 안전합니다.
3. 비닐, 랩 사용을 줄이기
음식을 데울 때 비닐 랩을 씌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달 음식도 비닐랩이 씌워져서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닿게 됩니다. 비닐은 열에 의해 환경호르몬이 쉽게 배출됩니다. 뜨거운 음식을 담아도 되는 적합한 용기인지 항시 확인하고 비닐랩 사용은 피해야 합니다. 집에서 음식을 데울 때는 유리나 실리콘 같은 안전한 뚜껑을 사용하세요.
4. 일회용 종이컵의 올바른 사용
종이컵 내부는 폴리에틸렌(PE)으로 코팅됩니다. PE는 100도를 넘지 않는 물을 담을 때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105도 이상에서는 PE가 녹아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보다 뜨거운 기름 성분이 있는 음식을 담거나, 그런 음식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사 먹는 간식들의 코팅 포장지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5. 잔류 농약 제대로 세척해서 먹기
농약도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입니다. 유기농을 선택하는 이유 또한 잔류농약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함일 텐데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안전한 식자재 섭취를 위한 세척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채소 야채의 잔류 농약은 대부분 물로 씻으면 제거되지만, 일부 남아 있는 것도 가열하면 열에 의해 농약이 분해되어 쉽게 제거된다. 특히 채소나 과일은 바로 흐르는 물에 씻기 보다는 물에 담가 두었다가 손으로 저으며 씻은 후 흐르는 물에 씻는 것이 효과적이다.’(식품의약품안전처 2012년 웹진 중에서 https://www.mfds.go.kr/webzine/201206/pdf/11.pdf )
유전과 환경을 고려한 아이의 최대치 신장만이 건강한 성장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조숙증으로 고민하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뼈 성장의 이른 멈춤으로 유전적 키가 손실되기 때문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도 키는 중요한 시대입니다. 성조숙증 진단으로 아이는 또래와 다른 성장을 인지하고 심리적 불안정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힘겨워합니다.
산업화를 무시한 채,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생활 편의용품들을 전부 바꾼다고 큰 변화를 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운동과 식습관 관리, 생활습관의 변화를 위한 노력으로 성조숙증을 예방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알고 피하기위해 건강한 먹거리 선택과 더불어 가급적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개인 텀블러 사용을 일상화하면서 안전한 성장이 일어날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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