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49
아이의 식습관은 아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아요. 혼자서 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삼시 세끼가 우리에게는 계속된 반복으로 익숙해진 그저 그런 일상 중 일부지만, 식사에 관심이 적은 어린아이일수록 여전히 낯선 시도이고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당연한 일들이 그들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
식사 시간 때 평온하지 않은 얼굴로, 언제 터질지 모를 굳은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계시지는 않나요? 아이에게만 문제가 있는 듯 집중하면 아이의 태도는 식사는 뒷전이고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마음을 기울입니다. 그러면 또 우리는 밥을 먹지 않는 태도가 못마땅하지요. 엄마의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제대로 된 식습관 형성에 도움을 줄 수가 없어요.
아이 주도 식사를 위한 식습관 형성을 식습관 교정(식사 교정)이라 해도 좋고 식습관 개선(식사 개선)이라 해도 좋습니다. 다만, 그 중심에 엄마의 마음 상태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1. 재료와 쉽게 친해질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 마트에서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봅니다. 대화 하나 없이 엄마는 물건만 담고 아이는 어디로 이끌리는지 모른 채 스마트 폰을 쥐고 카트에 앉아 있습니다. 밥을 잘 먹는 아이라 하더라도 역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아이와의 시간을 더 유익하게 보낼 수는 없을까.
밥 때문에 감정 소모가 극에 치닫던 첫째 아이의 생후 24개월 즈음, 하루 한 번은 꼭 마트에 갔습니다. 마트는 카트에 아이를 태우고 농수산물 코너에서 오래 머물러도 눈치 보지 않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관찰 놀이하기 딱 좋은, 기가 막히게 훌륭한 학습장입니다.
당장 필요한 재료가 브로콜리 하나라 하더라도 마트에서 꽤 오래 있었어요. 재료에 대해 알려주고 보여주며 이야기하는 데 집중을 했습니다. 아이가 먹어본 경험이 있는 음식과 연결 짓거나 어디서 자라는지, 어떻게 수확하는지 계속 말해주었어요.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갈 때마다 반복했고 진열된 과일들로 계절의 변화와 연결하는 재미도 찾았습니다. 직접 구매할 것은 손으로 실컷 만질 수 있도록 품에 안겨주었고 아이가 원하는 농산물이 있다면 샀어요.
집과 가까운 마트, 시장은 재료와의 친숙함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는 곳임은 분명합니다. 앞뒤 자르고 잘 먹는 결과만을 얻어 낼 수는 없지요. 무엇이든 반복을 통한 습득이 중요한 아이에게 재료와 친해지는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2. 단순히 각종 이유식, 유아식 책의 레시피만 따라 하는 것은 아닌가?
애써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아이가 거부했을 때의 속상한 마음을 압니다. 버려지는 재료라서 더 아깝게 느껴진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먹고 싶으냐는 의사를 물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집 아이가 잘 먹는다니까, 저 집 아이가 잘 먹었다니까 따라서 만든 음식. 내 아이도 환영해줄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지 못한 엄마의 마음 말입니다.
영양소 비율이 적절하고 성장 시기별로 섭취해야 할 재료와 요리가 정리된 레시피 북은 구세주처럼 느껴집니다.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을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닙니다. 음식을 하기 전, 아이가 거부해도 오케이 할 수 있다! 아이가 안 먹으면 내가 먹으면 된다! 는 마음을 먼저 가지셔야 한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요 집 아이는 먹는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가 아니라, 같은 음식이나 재료를 내 아이에게 노출했던 빈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먼저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셔야 해요. 무조건적인 따름이 절대적 처방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내 아이에게 맞게끔, 아이가 좋아하는 식감이나 크기, 모양 등으로 조금씩 변형을 하면서 요리를 하셔야 아이의 식사 태도에 대한 포용 범위가 넓어집니다.
3. 아이 식습관에 대한 타인의 공격을 감당 할 수 있는가?
밥을 잘 먹는 아이들은 지나가던 아무개도 예쁘다는 말을 남깁니다. 기분이 절로 좋고 고마움이 가득합니다. 아이와 밥 씨름이 한창일 때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 누군가는 뾰족한 말을 쉽게 남깁니다. 애정인 듯 애정 아닌 참견 같은 잔소리는 우리 마음을 더욱 모나게 합니다. 아이를 향한 것이든 우리를 향한 것이든 어쨌든 불편합니다. 당장 목구멍까지 차오른 거친 말이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말과 행동 마음마저 모두 느끼는 아이가 엄마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반응을 보여야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잘 모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여리고 여린 아이에게 우리의 모난 마음이 불똥 튀지 않도록 하는 걸까요.
제대로 못 키우는 거 같다 자책하지 말고, 내 아이 왜 이러냐 책망하지 말며 아이 앞에서 눈 크게 뜨고 환하게 웃어주세요. 동시에 “괜찮아 차차 나아질 거야!”라고 다짐하듯 말씀하시면 됩니다. 어렵지만 해야만 하는 마음 내려놓기, 그거면 됩니다.
아이와 심적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에요. 감정에 이끌려 본능에만 치우치려 할수록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능과 이성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아이를 바라보아야 밥 이외의 다른 육아 요소들도 골고루 챙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무시로 ‘내새끼 예쁘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타인의 따뜻한 진심도 보입니다.
아이와 투닥거리는 지금의 시간은 너무 고되고 힘듭니다. 그런데 첫째 아이 성장 10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고 둘째의 성장은 더 빠르게 느껴지면서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습니다. 아이 성장은 다른 시간보다 더 짧아요. 밥 때문에 밥상 뒤엎는 상상을 시작으로 애를 (쳐) 잡다 반성문만 가득한 성장 기록을 남길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부디, 아이와의 밥시간이 감정 소모가 아닌 긍정적인 감정의 나눔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