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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an 17. 2021

#04. 화씨 451

레이 브레드버리 / 황금가지


"평소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드리고 싶었어요." 스물한 살 생일 때, 친한 후배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사회성이 좋지 않아 공강 시간을 메우려고 도서관에서 아무거나 뽑아 짧게 읽는 게 전부였다. 심리적 도피처였는데 후배에겐 책을 즐겨 읽는 사람처럼 비쳤나 보다.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책을 받았다. 고맙다는 인사와 마주한, 나를 동경하는 듯한 후배의 눈빛은 부담스러웠다.


나는 후배에게 좋은 책 하나 권해줄 자신이 없어서 부끄러웠던 거다. 나는 비슷한 사람을 찾아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튀지 않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실수였다. 당장 앞에 있는 무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나를 버렸었다. 말을 할수록 머리는 비었고 지혜보다는 기술만 남아 실수는 늘었으며 움츠려 들더니 결국, 불편함과 초라함만 남아 마음을 닫았다. 입도 닫았다. 다시 책을 펼쳤다.  한동안 멀리 두었던 독서는 꽤나 어려웠다. 요란한 시각적 자극이나 즉각적인 재미가 없어서 활자에만 집중하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쉬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고 짧고 얕지만 의미를 생각하며 기록하는 행위 덕분에 숨을 쉬었기 때문이다.




"우리 전부가 똑같은 인간이 되어야 했거든. 헌법에도 나와 있듯 사람들은 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또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의 거울이야.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 거지. 움츠러들거나 스스로에 대립되는 판결을 내리는 장애물이 없으니까." p99


화씨 451의 미래 사회는 모든 이가 평등해야 한다는 법 해석 아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모순되게도 책의 문구를 정보 삼아 뱉어내는 방화서장 비티는 정부 검열관이자 집행관 같은 파수꾼이라며 힘을 준다. 책을 태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해야 한다는 비티의 괴변에 탄식했다. 다름에 대한 인정이 인색한 현대 사회는 화씨 451에서 바라본 미래의 단면이다. 비난할 대상을 찾고 입과 손으로 험담하며 아래로 끌어내리는 괴롭힘에 대한 예측이 들어맞았다.

 

"꽃들이 빗물과 토양의 자양분을 흡수해서 살지 않고 다른 꽃에 기생해서만 살려고 하는 세상,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모습이요. p137


화씨 451의 사회는 책을 소장하는 것조차 반정부 행위다. 읽고 사색할 여지를 두지 않으려고 불은 현명하고 깨끗하다는 논리로 모두 불태워버린다. 책(사색)을 대신해 쌍방향 소통처럼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된 TV쇼에 둘러싸여 산다. 내 생각 없이 타인의 생각에 공감하며 그것이 행복이고 완전함이라 여기는 갇힌 상태로 살아야 한다 생각하니 소름 끼쳤다. 책을 장식품으로 조차 두지 못하게 했다는 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진리의 두려움 때문일까. 해석이 필요 없는 정보(사실)가 앎의 전체고 행복하다 착각하며 살도록 인간을 통제하는 데 있어 책은 장애물이 되기 충분하기 때문일 테다.  


"자신의 무지를 감춘다면 아무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겠지. 그 대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거요." p170


명상 에세이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 법정 스님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라고 했다. 책은 삶의 길을 찾도록 돕고 숨 쉬는 신선한 공기가 되어준다. 사색 없는 활자 중독이 되지 않으려고 읽는다. 하지만 사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게 연간 읽는 권수는 중요하지 않다. 배고프면 음식을 먹듯, 심심함을 채우는 여러 요소 중 비중이 조금 큰 하나로 여긴다. 엄청난 지적 소유를 탐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 시점을 잠시 들여다볼 여유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 다 아는 듯해도 글귀로 만나면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분명 알고 있는 말인데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을 땐 더 강하게 의식의 스위치가 켜진다. 책을 읽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파버와 입과 입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옮기려던 철길 위의 사람들과 현실을 깨닫고 도망쳐 나온 몬태그가 책 읽는 자유를 어디선가 나와 같이 누리고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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