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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Jun 10. 2021

왜 추적 금지 '요청'인가?

[어휘 선택] Apple 앱 추적 투명성(ATT) 텍스트

넋 놓고 보게 되는 Apple ATT 광고


며칠 전 아침 제 아이폰이 14.6으로 자동 업데이트되었고, 우연인지 어쩐지 3~4개 앱이 한꺼번에 ATT(App Tracking Transparency) 팝업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벤치마킹을 위해 일부러 켜놓은 알림 외에는 모든 권한 허용과 마케팅 활용 동의에 굉장히 냉정한(?) 타입이기 때문에 그동안은 칼같이 거부 버튼을 눌러왔어요.

그런데 어제는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앱으로부터 너무 많은 추적 허용 간청을 받았더니, 팝업 문구를 찬찬히 곱씹어 보게 되더군요. 하나하나 끊어서 읽어보고, 영어와 일본어로 언어 전환을 해서 비교하면서도 보았지만 역시 '번역은 굉장히 정확한데... 엄청 안 읽히네 이 문장...'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기차역에서 앉아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 순간 갑자기 대합실 TV에서 새로운 ATT 정책을 홍보하는 Apple 광고가 나왔습니다. SKT가 지원 사격하는 그 아이폰 ATT 광고요.

한 손에 들린 아이폰에는 ATT 팝업이 떠 있고, 

TV에서는 그들(?)의 추적을 물리치라는 Apple 광고가 흘러나오고. 

크고 작은 스크린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불현듯 이 기묘한 ATT 팝업 문구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광고부터 보시죠. 조금 더 길고 재미있는 미국 버전으로 가져왔습니다. 

86년생 펠릭스의 눈치 보는 표정이 아주 재미있어요!


아이고 애플 씨, 광고를 이렇게 때리면 도대체 어느 앱이 추적 허용 수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ㅋㅋㅋ



ATT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일


Android 사용자이시거나 아직 ATT 팝업을 본 적 없는 분들을 위해 Apple의 새로운 프라이버시 정책인 ATT를 간단히 소개해 볼게요. 

앱 추적 투명성(App Tracking Transparency)은 '다양한 앱,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는 사용자의 활동을 서비스가 추적해도 되는지, 그 여부를 사용자 본인이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어느 앱을 쓰고, 어느 웹사이트를 돌아다녔는지 알고 싶으면 서비스 네가 나한테 와서 먼저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죠. 


그동안은 안 받았냐고요? 네 딱히 안 받았습니다. 기존에는 옵트 아웃(opt-out 일단 사용자 정보를 가져다 쓰고 사용자가 거부하면 개별적으로 취소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젠 옵트 인(opt-in 쓰기 전에 먼저 허락을 받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디어 사용자가 자신의 개인 정보 활용 여부에 대해 강력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ATT는 ios 14.5에서부터 본격 적용되고, 추적 허용 여부를 묻는 팝업은 서비스가 원하는 시점에 1회만 게시할 수 있습니다. 일단 사용자가 거부하면 개인 정보 설정 깊숙한 곳까지 부러 찾아가서 본인 손으로 다시 허용하기 전까지는 계속 추적이 차단됩니다. 

거부했다가 다시 추적을 허용해주는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테니까 사실상 낙장불입. 일단 한 번 거절당하면 거의 끝이기 때문에 각 서비스들은 굉장히 신중하게 팝업 제공 시점을 고르고 있습니다. 앱 진입 시에 허락을 받을 것이냐, 사용자가 어느 정도 앱을 탐색한 후에 수락 팝업을 제시해서 허락을 받을 것이냐는 각 서비스별로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고, 무엇보다 어떤 문구로 사용자를 설득해서 그 어렵다는 정보 트래킹 허락을 받을지를 무척 고민하고 있는 듯 합니다.



Facebook의 ATT pre-prompt와 본 팝업 prompt



 우리가 ATT 팝업을 말랑말랑하게 바꿀 수 있다면


Apple: 여기, 이 자리에 사용자가 너에게 추적 허용을 해줘야 하는 이유를 쓰렴. 물론 아무도 안 읽는 자리지만.



왼쪽 영어로 된 팝업은 2020년 말, Facebook이 Apple의 ATT 정책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주요 일간지에 Apple을 비난하는 전면 광고를 하자 Apple이 그에 대한 답변으로 친절하게 직접(!) 만들어서 보내 준 이미지입니다.

Apple은 macrumors에 보낸 공식 성명에서 '이건(ATT) 사용자 위한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Facebook에게 사용자 추적과 표적 광고 방식 자체를 바꾸라고 한 게 아니에요. 단지 먼저 사용자에게 허락을 받고 오라는 말이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Facebook, 여기에 이 자리에 왜 사용자가 당신들에게 정보 트래킹을 허용해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는 이유를 잘 쓰시면 됩니다'라는 플레이스 홀더를 적어서 Facebook 이름을 직접 넣어 예시 이미지를 만들어줬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웃기는 상황인데, 암튼 되게 Apple 답다고 생각했어요 전 ㅋㅋㅋㅋ 


자, 이제 팝업 문구를 좀 살펴봅시다. 



Allow “OOO” to track your activity across other companies’ apps and websites?
[Please let us track your information, oh please...]
Ask App not to Track
Allow


OOO앱이 다른 회사의 앱 및 웹 사이트에 걸친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
[제발 저희 앱이 추적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해주세요. 제발요...]
앱에 추적 금지 요청
허용



이런 류의 권한 허용 팝업은 워낙에 다루는 주제가 어렵다 보니 쉽게 작성하려고 해도 쉽게 쓰기가 무척 어려운데, 이번 한국어 텍스트는 정보 유실 없이 완벽하게 직역되어서 더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원문 텍스트를 한국어로 UX writing 하는 일을 주로 하지만, 일본 오피스에서 작성된 영어와 일본어 소스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도 맡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재미 삼아 한번 이 ATT 정책을 '당하는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 보기 좋게, 그러니까 말랑말랑하게 번역해 보겠습니다.


[말랑 버전 1]
OOO 앱이 다른 앱, 웹사이트에서 활동한 나의 이동 경로를 볼 수 있습니다. 허용하시겠습니까?
경로 확인 허용
확인 금지

[말랑 버전 2]
OOO앱이 다른 앱, 웹사이트로 이동한 내 활동 경로를 트래킹할 수 있습니다. 허용하시겠습니까?
활동 트래킹 허용
중지 요청 


[말랑 버전 1]은 'track your activity across'를 '내 활동 경로를 볼 수 있다'로 조금 부드럽게 표현한 버전입니다. track을 추적으로 번역하면 정말 Apple이 광고에서 의도한 대로 악당에게 쫓기는 노루, 사슴, 고라니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어휘의 기운을 좀 누그러트려 봤습니다. '보다, 확인하다'와 같은 마일드한 용언(물탄 동사)을 쓰면 '추적'과 같은 본격적인 착취(...) 뉘앙스를 좀 가시게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어 UX writing을 할 때 강렬한 어세를 가진 용어는 잘 쓰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불안해하거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죠. 서비스 입장에서는 '절대 사용자를 놀라게 해선 안돼....'라는 생각을 갖고 온유하게, 심리스하게, 걸리는 거 하나 없이 그분들을 화면 깊숙한 곳으로 모셔야 하니까요.


[말랑 버전 2]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외래어 '트래킹'을 사용해보았습니다. 

외래어를 텍스트에 사용하면 여러 가지 긍정, 부정적인 효과가 나는데 여기에서는 사용자의 이해를 흐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Tracking, Trekking은 각각 트래킹, 트레킹으로 외래어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는 트래킹의 의미를 잘 모른 채로, 그러니까 조금 더 익숙한 후자의 의미로 대충대충 이해하고 버튼을 누를 확률이 높습니다.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선 본인에게 불리한 내용은 가능하면 모호하고, 은근하게, 아주 그냥 꿀렁꿀렁 구렁이 담 넘어가듯 써서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트래킹이라는 외래어에 그런 은근한 의도를 좀 담아봤습니다. 


일반적인 UX writing에서는 이런 외래어 사용은 지양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영어 숙련도나 학력이 서비스 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해야겠죠. 사용자의 연령, 문화, 학력에 상관없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서비스를 소개하는 것이 UX writer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영어를 쓰면 좀 더 힙한 느낌이 난다고, 우리도 다른 앱들처럼 영어 쓰면 안 되냐고 묻는 젊은 UX designer의 슬픈 눈망울을 잘 다독여서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용자를 위한 쉬운 한국어로 작성하자고 차근차근 설득해야 하는 것이죠. (나도 힙해지고 싶지... 근데 우리 앱은 영어 잘하는 사람만 쓰는 게 아니니까...)

좁고 특별한 세그먼트만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UI text는 반드시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써야 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내친김에 팝업 버튼 순서도 바꿔봤습니다. 아무래도 습관적으로 상단 primary, positive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 이 또한 서비스 입장에선 좋은 일이겠습니다.


자, 그럼 행복한 시간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현실을 봅시다.

Apple의 이 ATT 팝업이 얼마나 정교하고 단호하게 작성되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Ask'의 무게 - 왜 '추적 금지'가 아니라 '추적 금지 요청'인가


위와 똑같은 팝업입니다. 스크롤하시기 귀찮을까 봐 가져왔어요.


가장 주목도가 높은 타이틀 영역에 Apple이 작성한 파워풀한 텍스트가 고정되어 있고, 앱은 아무도 안 읽는 작은 바디 텍스트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라고 보는 게 맞겠죠.(지난 글에 설명드렸던 것 기억하시지요? 사람들이 팝업 본문 거의 안 읽는다고...)


일단 저 타이틀 내용이 상당히 강렬합니다. '추적'이라는 단어는 쫓김, 개인 정보 유출, 사용자 권리의 침해 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서비스 만드는 사람들이 입에 종종 올리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단에 '추적'이 노출되는 일은 그동안 별로 없었던 거죠. 여기에 'across'까지 '~에 걸친'으로 직역됐기 때문에 그동안 사용자의 활동 여정 전반에서 이 정보 추적이 진행되었다는 점이 명확하게 표출되었습니다. 


버튼은 어떤가요? Allow ~~?라고 물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positive 버튼 Allow가 위쪽에 오는게 자연스럽습니다. '허용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허용-> 허용 안 함' 순서로 나열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그러나 Apple은 이 좋은(!) Do not Track을 차마 아래쪽 버튼에 배치할 수 없었던 걸까요, 위쪽 버튼에 추적 금지 레이블을 배치시켰습니다. 버튼 위치에 Apple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되어 있네요. 


그런데 버튼은 왜 Ask App not to Track일까요? Do not Track이 아니라? 

한국어로도 '앱에 추적 금지 요청'입니다. '추적 금지'가 아니라요. 

버튼 레이블로써 자연스러운 형태는 후자인데 말이죠. 


제가 이 팝업을 처음 봤을 때 제일 먼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왜 버튼에 요청이란 단어가 있느냐'였습니다. 그동안 Apple은 해야 할 설명을 so coooool하게 말 안 하고 넘어갔으면 갔지, 이렇게 군더더기를 추가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거든요. 지금 이 판국에 앱에게 뭘 요청하고 자시고가 없어 보이는데 왜 굳이 'ask app/ 앱에 요청'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 이유는 Ask라는 한 단어가 Apple의 책임과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고, 만일의 사태에서 Apple을 대변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Apple은 IDFA(Identifier for Advertisers) 외에도 사용자를 우회적으로 트래킹 할 수 있는 fingerprinting 등의 기술이 있는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Apple 시스템이 확실히 정보 추적을 차단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Apple에게는 정책의 문제, 각 앱에게 강요 요구해야 하는 문제이지 Apple 시스템이 사용자에게 책임지거나 보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만에 하나라도 개인 정보 추적 이슈가 발생한다면, 애플은 이 Ask를 통해 그동안 자신들의 의무와 한계가 적절하게 표출되었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아, 이건 제 뇌피셜이 아니라 Apple의 소프트웨어 부사장인 Craig Federighi이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버튼의 비밀입니다. 인터뷰어인 WJS의 Joanna Stern이 왜 verbiage(워딩)이 Ask인지 물었고 그는 거침없이 그 워딩에 숨겨져 있는 Apple의 정책적인 입장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허용된 인터뷰 시간 단 15분, 그 한가운데에 나온 UX writing 질문이었죠. 


저는 인터뷰를 보면서 어휘가 함의하고 있는 첨예한 이슈를 날카롭게 집어낸 인터뷰어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는 인터뷰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Apple 임원으로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과 언어에 대한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ATT가 뭔지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8.69초만에 군더더기 없이 개념을 설명하기도 했고, 지난 글에서 제가 잠시 설명드렸던 다크 패턴이 개인 정보 이슈에 적용된 사례에 대해서 꼬집기도 했어요. 개인정보 허용 팝업에 덜렁 accept만 크게 만들어 놓는 관습적 UI가 정말 사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한 게 맞냐는 거죠.


물론 비단 Apple만 이렇게 신중하게 텍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비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텍스트일수록 작성 시에 정말 많은 요소를 고려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작성합니다. 실제로 그동안 제가 일했던 모든 회사에서 동의, 권한 허용, 자사의 한계, 신고 문구를 UX writing 할 때에는 여러 조건들을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법무와 정보보안팀의 컨펌도 수차례 받아야 하고 각 언어별로 뉘앙스와 의미가 정확하게 표현되었는지도 거듭 검토되었습니다. '아니 뭐 그런 거까지...' 싶을 정도로 어세, 뉘앙스, 오해의 여지 등을 자세히 살피고, 번역 시에도 정보 유실이 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요컨대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단어 하나, 문구 한 줄이 함의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일 수 있고, 그래서 더 신중하게 작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이슈에 대한 서비스의 명확한 입장은 이 Ask처럼 1개의 어휘로도 표현될 수 있고요. 아, 물론 그걸 굳이 사용자가 다 알 필요는 없지만요.


슈퍼맨 크레이그, 그래서 팀 쿡 다음에 사장님이 되시는 건가요?


그래서 우리 이제 어쩌죠? - 그저 열심히 물어보고, 열심히 설득하는 수밖에요.


사용자로서 저는 Apple의 개인 정보 보호 정책에 격한 지지를 보냅니다. 

내 개인 정보의 용처에 대해 통제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신나요! 원래 내가 갖고 있었어야 할 선택권을 돌려준다는데, 그걸 싫어할 사용자는 아무도 없겠죠. 이미 내 개인 정보는 월드 와이드 공공재(...)로 전락한 지 오래이지만요. 이 같은 프라이버시 보호 정책은 분명 향후 Apple의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Android 역시 유사한 개인 정보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이 같은 기조는 곧 모든 OS 기저에 깔리게 될 보편적인 원칙이 될 것 같네요. 


그런데 그건 그거고...

서비스 제공업체의 일원으로서의 저는 마냥 와~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런 글을 쓰며 Apple 정책에 우왕 굿~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이것과 관련된 문구 작성이나 번역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거든요. 


머지않아 내 모습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무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Apple이 제안한 정책에 따라 열심히 사용자에게 의사를 묻고, 추적을 허용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부탁해야 하냐고요? 세상 정직하게 부탁해야 합니다.


하면 안 되는 것을 빡빡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Apple은 pre-prompt 팝업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명확하게 규정했습니다. '허용'을 누르도록 사용자를 현혹하지 말라, 사용자가 냉정하게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라는 엄격한 가이드를 제시했어요. 정책을 촘촘하게 관리한다는 측면에서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역시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아유 빡빡하다...'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허용하면 인센티브 준다고 유혹하는 거 금지, '추적 허용' 용어 빙자 금지, 추적 팝업 이미지 가져다 쓰기 금지, 허용 눌러달라고 시각적인 큐 쓰는 거 금지. 금지, 금지, 다 금지!라구요.


자, 그럼 이제 우리에게 정말 남은 것은 pre-prompt와 ATT 팝업의 설득 문구뿐입니다. 

ATT pre-prompt(사전 교육) 화면을 기깔나게 만들고, 본 팝업의 작고 소듕한(...) 중간 공간에 문구를 잘 써서 사용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겠죠.


사실 처음 ATT 팝업을 주제로 글을 써볼까 했을 때에는 도대체 어떤 문구로 사용자의 허용을 얻어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영어권 사례, 우리나라 사례를 30개 넘게 봤는데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요. 다들 볼드모트 이름처럼 입에 올리기 싫어했던 그 단어, 'ad'를 문구에 포함시켰습니다. Apple 심사 리젝 안 당하려면 결국 솔직하게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전 세계에서 권한 허용 팝업 본문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오직 Apple 앱 심사 직원들뿐인 거 같아요.)

그렇게 이런저런 서비스들의 문구를 살펴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엔 평소에 사용자에게 잘한 서비스가 승리하겠구나.


수많은 앱들이 너도나도 제공하는 pre-prompt, 어려운 ATT 팝업 문구... 뭐가 뭔지 몰라 결정하기 어려울 때에는 결국 그동안의 사용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추적 허용 여부를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나에게 잘한 서비스,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앱이라면 사용자님이 금쪽같은 허용을 눌러 주시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ATT 팝업의 중간 부분 작은 글씨로 쓰인 서비스의 설득 문구도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리라 봅니다. 우리의 절박한 사정을 진심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문구, 정직한 어휘에 대한 고민은 그래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ATT는 그의 작품입니다.


Craig Federighi의 WSJ 인터뷰 중간에 Steve Jobs의 10년 전 D8 Conference 대담이 나와서 전문을 듣고 싶어서 한번 찾아봤습니다.(아래 동영상) 

그는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회사들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하며, 자신들은 그중 상당히 고루한 쪽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프라이버시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밝혔습니다. 



Privacy means people know what they're signing up for, in plain English and repeatedly (...) I believe people are smart and some people want to share more data than other people do. Ask them. Ask them every time. Make them tell you to stop asking them if they get tired of your asking them. Let them know precisely what you're going to do with their data.



아무리 봐도 ATT와 앞으로 펼쳐질 Apple의 강력한 프라이버시 정책은 그의 작품인 것 같아요. 


 프라이버시에 대한 그의 단단한 신념 (1:10:24부터)


 


오늘의 요약


우리는 표현과 어휘를 조정하여 UI text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연막작전을 위해 일부러 텍스트를 오용하기도 하죠. 하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UI text는 연령, 문화, 학력 등의 외부 조건이 서비스 이용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plain Korean으로 똑 떨어지게 작성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용자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한 용어, 명료한 뉘앙스, 쉬운 표현을 사용해 주세요.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단어 하나, 문구 한 줄이 묵직한 무게를 지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비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구들이 바로 그것이죠. 이런 심각한 텍스트들은 여러 사람의 검토를 받아 신중하게 작성되어야 합니다. 코어 텍스트가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경우, 혹시라도 도착어에 중요한 내용이 유실되지는 않았는지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ATT와 관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평소에 사용자에게 신뢰를 주는 것, 그리고 Apple 심사 직원들과 소수의 사용자가 볼 추적 허용 설득 문구를 진심을 다해 잘 쓰는 것. 그게 다인 것 같아요.



덧: 어제 저희 팀의 뛰어난 일본어 UX writer분과 이 건 번역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한국어는 '요청'이지만 일본어로 '요청(要請)'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한 의미이기 때문에 '요구(要求)'로 번역된 것 같다, 뭐 이런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너무 정직해서 무서울 정도인 일본어 ATT prompt 짤방을 하나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너 추적도 하고, 딴 데 네 정보를 팔기도 할거라구! 
あなたのデータが追跡され, 他社に販売されます。
당신의 데이터가 추적되며 타사에 판매됩니다.


음... 여러분, ATT prompt 쓰실 때...이렇게까지는 정직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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