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writier 직업 소개: 엄마에게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해 보자.
날이 추워지고 있군요. 가을은 곧 끝날 것 같아요.
지난번 싸주신 장조림과 깻잎장아찌는 잘 먹고 있어요. 어릴 때는 밑반찬이 그렇게 싫었는데, 나이가 드니 왜 밑반찬이 좋은 것인지 알겠어요. 어른의 삶은 밥 한 끼 느긋하게 먹기 힘들만큼 고되다는 걸, 그 와중에도 살려면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한 끼를 후딱 해치우는 데는 이 밑반찬만한 것이 없다는 걸,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 덕분에 저는 늦은 퇴근 후에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냉동밥 반공기에 전자레인지에 데운 소고기 장조림과 깻잎장아찌로 밥을 챙겨 먹고 있어요. 고마워요 엄마.
연말이 지나고 한 달만 있으면 또 설이 되어 친척들이 저의 안부를 묻겠지요.
장례식을 빼고는 친척 모임에 거의 가지 않는 저이건만, 사랑이 많은(...) 우리 일가친지 여러분들께서는 여전히 제게 관심이 많으시다죠. 그분들께서는 제가 L사에서 S사, 다시 다른 L사로 이직할 때마다 '그 애는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회사를 잘 옮겨 다닌대? (고작) 국문과 나와서?'라고 꼬치꼬치 물으신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네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유 뭐, 뭐 라이터?'
지난 추석 후 엄마가 또다시 제게 물으셨을 때 저는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7년 동안 이해시키는데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엄마, 엄마 딸은 회사에서 UX writer로 일하고 있어요.
이 일은 엄마가 휴대폰, 컴퓨터에서 보는 앱과 프로그램에 표시되는 모든 글을 쓰는 일이에요.
IT 업계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멋진 프로그래머가 자판을 몇 번 다다다다닥 두드리면 뿅하고 앱이 튀어나온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은 것이 자동화되어 있고, 사람이 하는 일은 그저 그것들을 간단하게 조합하는 일 정도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화면의 한 귀퉁이, 작은 모서리까지 사람이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는 거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뚱땅뚱땅 두드려가며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엄마는 아마 크게 놀라실 거예요. 엄마가 보는 모든 앱의 글자들 역시 사람이 다 하나하나 쓰고 있거든요.
AI가 막 대신 써주고 그러는 거 아니랍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그 문구가 화면 어디에 등장해야 할지, 어떤 타이밍에 어느 정도 길이로 나타났다가 빠져야 할지, 글자들이 담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충분한지를 살피고 조절하는 일을 해요. 쉽게 말해서 저는 엄마가 쓰는 휴대폰과 앱 위에 고유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 일을 하고 있어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목소리의 톤을 조절하면서도, 잠깐 정신줄 놓고 이상한 쌉소리(?)를 엉뚱하게 말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죠.
아시잖아요. 사람이 가끔 맘은 안 그런데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하물며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드는 커다란 앱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얼마나 쉽겠어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데나 막 쓰면 정말 큰 일이겠죠. 소중한 우리 앱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저는 정신 단디하고 명료한 언어들만 화면에 표시되게 관리하고 있어요.
엄마는 제게 메신저 앱으로 문자도 보내고 음성전화도 걸곤 하시지요. 그런데 엄마는 그 몇 가지 기능만 반복해서 쓰시니까 늘 같은 화면, 같은 버튼만 보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 화면 뒤에는 엄마가 보지 못한 수많은 텍스트들이 존재하고 있어요. 몇 가지 기능만 외워서 쓰는 엄마 같은 사용자가 있는 반면, 콜럼버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호기심 많은 사용자들이 앱의 이곳저곳을 탐험하기도 하니까요.
그들이 휙휙 신나게 열어젖힌 문 너머에는 항상 뭔가 글자가 있어야 해요. 능동적으로 앱을 사용해 보려는 우리 고객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네, 여기까지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순 없잖아요?
앱을 만드는 사람들은 멋진 콘텐츠이든, 겸손한 오류 메시지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미리 많은 극본을 만들어 놔요. 메인 연출자가 전체적인 흐름을 정하면 저 또한 다양한 상황에 걸맞은 구체적인 대사를 여러 개 준비해 놓죠.
모바일 데이터를 모두 소진한 사람에게 할 말, 깜박 잊고 Wi- Fi를 안 켜놓은 사람에게 할 말, 우리 서버가 버벅거려서 제대로 일할 수 없을 때 머쓱하게 할 말, 사용자가 시키는 일을 모두 완료했을 때 당당하게 할 말, 우리들이 준비해 놓은 꽤 괜찮은 기능을 소개하는 안내 문구, 사용자가 좀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할 때 사전에 경고하거나 진정시키는 말, 사용자가 앱 내에서 뭔가를 성취했을 때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는 말...
정말 다양한 상황에 대해 미리 생각해서 저장해 두지요. 촘촘하게, 아주 아주 촘촘하게 사용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거예요. 그렇게 대사를 준비해 두다 보면 앱의 화면 구조나 순서 등에 깊게 개입하게 되어요. 꽤 자주 화면 흐름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글을 쓰다 보면 플로우에 빈 구멍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되어서 설계서를 보완하게 하기도 하고, 도저히 이 자리에 정보를 다 못 넣을 것 같으면 디자인팀에게 공간 좀 더 넓혀달라고 툴툴거리기도 하지요. (아니, 디자이너 선생 인간적으로 이 공간에 그 내용을 어떻게 다 넣습니까... 우리가 통아저씨도 아니고)
이런 일들이 재미있냐고요? 네, 사실 꽤 재미있어요.
종종 누군가를 위해 비밀스러운 선물을 숨겨놓는 기분이 들곤 해요. 예전에 휴대폰 회사에서 일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65 º 또는 -30 º가 되면 고통받던(?) 하드웨어가 자동으로 꺼지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문구를 써야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작렬하는 태양 아래 휴대폰이 불타오를 때, 혹한의 눈보라 속에 기기가 노출될 때.... 그래... 휴대폰은 단말마의 비명처럼 이 팝업을 띄우고 꺼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좀 비장해졌어요. 당시 저는 머리에 터번을 두른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두꺼운 방한복은 입은 러시아 여성을 생각하며 차분하게 휴대폰 종료 메시지를 작성해 두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휴대폰이 기절하기 직전에 무슨 말을 하면 좋지...?
휴대폰의 유언같은 걸 써야하나...나는 간다아...잘 살아라...?'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이 지구 상 어느 누군가는 그 메시지를 보았겠지요. 안타까운 (욕)탄성을 뱉으면서 말이에요.
엄마, 이 일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제가 담당해야 하는 기능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만약 덜렁 메신저 앱의 대화방 기능만 케어만 해도 된다면 저는 무척 편할 거예요. 옆으로 누워서 세상 건방지게 와식(臥式) 라이팅을 해도 될 만큼요.
그렇지만 슬프게도 대화방이나 음성통화 부분에 있는 문구들은 앱에 있는 전체 문구로 봤을 때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아요. 앱 하나에는 정말이지 수많은 다른 기능들이 붙어있어서 마치 거대한 개미굴처럼 끝없이 방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제가 지하도시 데린쿠유의 관리자로 고용되었는데, 몇 날 며칠을 돌아봐도 내가 담당해야 할 이 도시의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기분이랍니다.
그뿐인가요? 앱이 하나면 그나마 어떻게 해보겠습니다만, 우리의 브랜드 이름을 단 새로운 패밀리 서비스와 앱, 기능들은 매일, 매주 새로 추가되고 있어요. 저와 제 동료들은 새로 태어난 서비스들을 위해 적게는 하루 몇십 개, 많게는 몇 백개의 텍스트를 등장 시점과 장소, 맥락, 제약사항을 고려해서 새로 써야 해요.
그 와중에 기존에 있던 기능들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텍스트를 수정해 줘야 하죠.
이 몇 천, 몇 만개의 문구들이 매일 변하고, 가끔 저 모르게 기능이 사라져서(스펙 아웃) 나중에 찾으면 없고(누가 지웠어! 말하고 빼라고!), 없으면 또 없어진 그 상황을 감안해서 기존 문구를 맥락에 맞게 변경해 주고, 이 와중에 연계된 새로운 기능이 생기면 그 부분까지 다시 챙겨서 연결해서 쓰고...
앱에 등장하는 문구의 문체, 톤, 목소리, 어휘가 일관되고 품위 있게 유지되도록 혼자서 튀거나, 다중인격처럼 보이지 않도록 모두 관리해서 넣어두는 것이 제 일이랍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빠르게 새로운 기능들이 생겨나면 그 어려운 기능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일, 가끔 사용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엉뚱한 에러가 발생했을 때 재빠르게 사용자를 안심시키는 일, 인력과 시간이 부족해서 사용자의 기대에 맞추지 못할 때 나가서 정중히 태도로 사용자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몫이에요. 서비스가 문 닫을 때는 문 닫는다고 바이 바이 작별인사 공지를 쓰고, 새로 생긴다면 생긴다고 소개와 안내 인사도 건네야 하지요.
이쯤 되면 엄마는 '얘야, 너 회사에서 윤전기처럼 글 쓰고 있는 거니?'라고 물으실 것 같네요.
그런데 엄마, one more thing...
저는 보이는 문구만 쓰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UI Text 인 접근성 문구(시각장애인을 위한 힌트 등의 문구, Accessibility label)도 저희 팀이 쓰고 있어요. 비장애인들은 거의 눌러보지 않았을 설정 > 접근성 메뉴, 그곳의 옵션들을 켜보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다른 목소리들이 나와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전맹 사용자, 또는 저시력 사용자들을 위해 우리 앱의 모습을 목소리로 설명하는 거죠.
저는 이 버튼을 눌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 아이콘을 누르면 어느 화면으로 연결되는지를 실제로 눈을 감고 상상해 가며 쓰곤 합니다. 화면 진입부터 퇴장까지의 흐름을 눈을 감고 내가 시각장애인 된 것처럼 작성하는 거예요. 이 접근성 문구를 들으며 시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길 바라면서요. 장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무척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놓치지 않고 잘 챙기려고 하고 있어요.
엄마, 가끔은 제 일이 베르사유 궁전의 조경사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끝없이 펼쳐진 꽃들이 각 섹션마다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일관성을 맞추고, 언어 체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보살피는 조경사, 또는 정원사의 일이요. UI text writing과 governing이라고 하는 이런 일을 하며 저는 매일 지내고 있어요. 숨도 못 쉬게 밀려들어오는 대량의 텍스트에 질리는 날도 있지만,
저는 제가 만들어둔 이 거대한 언어의 정원이 마음에 들어요.
수천만의 사용자들이 저 쪽 귀퉁이로 들어와 언어의 꽃들을 스치고 반대편 구역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UX writer.
가끔 제 직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야 할 때 이 영어로 된 멋들어진 이름 대신, 1900년대 초 모던 걸처럼 '안녕하시오? 본인은 조선의 유우엑스 라이터올시다.'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왜 직군명 앞에 '조선'을 붙였냐면, 저는 우리 회사에서 한국어 텍스트만을 관리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일하는 회사는 월 2억 명이 쓰는 글로벌 서비스이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 세트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쉽게 말하면 제가 관리하고 쓰는 한국어 세트 외에도 일본어, 영어, 태국어, 대만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등등 수많은 언어가 동일한 의미로, 동일한 맥락에서 매끄럽게 나타나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사용자가 많은 국가의 언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문구를 준비해야 해요.
글로벌 서비스를 위한 UX writing을 한다는 것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만을 위해 서비스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작업이에요. 내가 작성한 UI text가 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평범한 인류를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거든요. 실제로 글로벌 서비스의 UX writing은 Source text(번역의 근본이 되는 출발 텍스트)를 매우 단단하게,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정확하게 써야 해요. 우리 팀은 단단한 Source text를 만들어서, 그것을 의미의 유실 없이 정확하게 번역하고, 현지의 문화적 특수성까지 반영하여 완성하는 여러 단계의 현지화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어요.
엄마 생각해 보세요.
엄마가 사랑하는 너튜브 앱을 보면 텍스트가 많이 없지요? 텍스트가 있어도 짧고 건조하고 별다른 언어적 기교나 수식이 붙어있지 않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한국어이긴 하지지만, 딱딱하고, 가끔은 어색한 번역문같이 느껴질 때도 있겠죠. 그건 너튜브의 Source text가 영어이고, 그 담백한 Source text를 한국어로 번역한 결과물을 엄마가 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전 인류를 위해 쓰인 텍스트이니 화려하거나 개성적이기보다는 아주 베이식한 스타일인 게 당연하겠죠.
저의 회사 동료들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인, 일본인, 대만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스페인인 이라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세요? 왜 우리 팀이 다국적 멤버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제 아실 수 있겠지요. 각 언어별로 서비스 언어의 정원을 관리해야 하니까요.
다소 복잡해 보여도 요약하면 이거예요.
글로벌 서비스의 UX 라이터들은 각자가 담당하는 언어의 사용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언어의 정원을 관리한다는 것
이것은 단일 언어 사용자들을 위해 프로덕트를 만드는 내수 중심 서비스의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작업이라는 것
그래서 엄마, 엄마 딸은 지금 '조선의 유우엑스 라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학교 때 영어 하기 싫어서 국문과 갔더니만(...) 결국 글로벌 회사에서 영어를 써야 편한 상황에 처해졌네요. (영어 공부 좀 하라고 하셨던 엄마 말 좀 들을걸)
하지만 글로벌 프로덕트의 라이터로 일해 오면서 많은 걸 알게되었어요.
세상이 이토록 넓다는 걸,
우리가 쓰는 문장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고,
서비스 언어가 인간 경험의 지평을 이토록 넓혀줄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물론 내가 텍스트를 잘못 쓰면 여러 사람이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가끔 좀 괴롭지만, 함께 일하는 UX 디자이너들이 우리의 전문성을 존중해주고 온전히 신뢰해 줄 때, 단 몇 개의 단어로 기능의 사용성을 향상시켰을 때 기분이 좋아요. 언어의 힘을 느껴요.
엄마, 다 쓰고 나니 알겠어요.
아무래도 이 글로 엄마를 이해시키지 못할 것 같아요. 다시 읽어보니 너무 어렵네요.
제가 좋아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란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엄마가 일 얘기를 물어보면 왜 화가 많이 날까. 진짜 신기하지? 이상하게 엄마가 일 얘기를 물어보면 대답하기도 싫고 짜증도 나고 전화 끊기 바빠. 전화 끊기. 근데 전화를 끊잖아? 그럼 죄책감과 후회가 막 밀려와.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잖아? 그럼 또 일 얘기를 하거든. 그러면 또 화가.."
엄마가 일 이야기 물어보면 화가 나는 이유... 그건 아마 설명하기 어려워서 제 풀에 지쳐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엄마에게 내가 매일 느끼는 고민과 성장통을 설명하기 어렵고, 그걸 다 말하기엔 내 일이 너무 아득하게 깊고 복잡하니까 그만 막막해져서 화가 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자라 버린 후 엄마와 나는 너무 다른 매일을 살고 있잖아요.
서로의 일을 공유하기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져 버렸어요.
다 제 불찰입니다. 내년 설이 지나고 또 '그러니까 네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유 뭐, 뭐 라이터?'라고 하시면 그때 또다시 설명해 볼게요.
그때는 지금보다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기를 바라요.
뭐, 사실 중요한 건 제가 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일을 좋아하고, 나름 잘하고 있다는 것이죠. 엄마는 제가 행복한 게 제일 좋으시잖아요? 수줍게 고백하건대, 저는 이 일을 하면서 꽤 즐겁답니다.
그럼 된 거죠. 암요.
조만간 집에 갈게요. 장조림 또 해주세요.
결국 밥벌이하는 어른이 되고야 만 딸 Joo 올림
UX writer는 서비스 텍스트를 작성하면서 그 문구가 화면 어디에 등장해야 할지, 어떤 타이밍에 어느 정도 길이로 나타났다가 빠져야 할지, 글자들이 담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충분한지를 살피고 조절하는 일을 합니다. 비유컨대, 서비스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UX writer가 관리하는 텍스트의 양은 굉장히 많습니다. 기능과 서비스 간의 연계성을 챙기고 스펙 업데이트에 맞게 수정, 변경, 삭제하는 일, 즉 UI text governing은 UX writer의 중요한 업무입니다.
UX writer는 서비스의 labeling system을 관리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각 케이스별 문구를 준비해 두는 일을 담당합니다. UX writing은 언어로 디자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면서 필연적으로 서비스의 화면 구조나 순서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코멘트하게 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Accessibility label 역시 UX writer가 담당합니다. 서비스 릴리즈에 쫓기다 보면 이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접근성 문구를 잘 챙기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글로벌 서비스의 UX writing은 내수 대상 서비스에 비해 극단적으로 간결성과 명확성, 일관성을 추구합니다. 여러 언어로 현지화하여 다국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소스 언어 자체가 오해의 여지없이 명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덧: 이 글은 Yuval Keshtcher의 'Mom, I'm a UX Writer.'의 콘셉트를 차용한 글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너무 공감되어서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엄마에게 내 직업을 소개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