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면류학說] 재택 점심과 송주 불냉면 소스

코로나 시대에 재택근무 점심을 차려 먹는 것

by Joo Jun

코로나 재택으로 인해 Zoom과 팀 단톡 방만이 낮시간의 유일한 소통 채널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회사 점심시간은 제게는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동료들을 만날 수 없고, 12시 25분쯤에 불타는 채팅으로 점심 뭐 먹을지 상의할 수 없고( 팀점 시간이 12시 30분임), 마주 앉아서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부글부글 즉떡 같은 것을 끓여 먹을 수 없고, 저의 즉떡 볶음밥 실력도 뽐낼 수 없고 (밥을 잘 볶으면 다들 잘한다! 잘한다! 해줌), 다 먹고 버블티 한 잔씩 사서 ' 아 오늘 점심 맛있었어요! 오후를 잘 버틸 수 있겠어!" 이야기를 나누며 회사로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집에서 혼자 먹는 점심은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사의 질도, 식사를 대하는 마음도 허전합니다.


이 여름이 시작할 때 저는 송주 불냉면 10인분을 주문했습니다.

송추 가마골 때문인지 자꾸 송추 불냉면이라고 하시는 분이 계신데, 아닙니다 송주 불냉면입니다.

이게 뭐냐면 유튜브에서 한 때 엄청 유행했던 극악의 매운맛 비빔냉면 소스로서, 매운 음식 전문 유튜버 도로시라는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된 안양 지역의 로컬 냉면입니다.

나름 매운 것을 즐기는 저로서는 불닭 볶음면이라든지, 신천의 해주 냉면이라든지 이런 걸 먹었을 때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아니다, 조금 맵긴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했습니다.

그러던 2년 전 여름 문득 저걸 먹어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먹어보고 난 후

'야! 이 고추에 미친 한국인아!@#$%^!'를 외치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게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재택이 장기화되고 혼자 먹는 점심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물냉면 5인분, 비빔냉면 5인분 그리고 무김치, 열무김치 한 팩씩을 구매했습니다.


S__11411482.jpg 판매자 실수로 얼결에 열무김치를 하나 더 얻었다. 무덕후인 나는 기쁘다. 생유.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송주 불냉면 매운 소스 대환장 파티가 되었습니다.

S__11411476.jpg 정상 버전. 열무, 무김치, 계란 2개. 그리고 매운 양념장


처음엔 정상적으로 물냉면 육수에 계란도 2개 삶아서(계란 풀 사이즈 2개는 가정식 냉면의 특권이죠) 한 상 잘 차려 먹었습니다.

매운 양념장을 넣지 않고 반쯤 잘 먹다가 처음 딱 넣었는데

우왕....

2년 만에 맛본 강력한 매운맛은 저의 위를 뜨겁게 지지고 다음날 아침 화장실...(이하 생략)


송주야 오랜만이구나. 내가 너를 잊고 있었다. 하아...


S__11411475.jpg 지금 보니 미친듯한 한 그릇. 물냉 육수와 계란 없이 양념장, 열무, 무김치 only


이날은 또 무슨 일로 빡이 쳤는지 면을 삶아서 육수나 계란도 없이 바로 양념장을 부었네요.

저 날도 먹고 혀가 아파서 한참을 아이스크림 콘을 물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음 날 화장실도 또...(이하 생략)


그런데 이렇게 면과 육수를 하나둘 곶감 빼먹듯 다 먹고 나자 덜렁 양념장만 잔뜩 남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스가 너무 매운 나머지 많이 넣을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씩만 넣다 보니 결국에는 양념장이 그만 반 팩이나 남아 버린 거죠.

그래서 결국엔 이렇게 소스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S__11411479.jpg 오트밀과 당근 라페, 그리고 계란 + 송주 불냉면 매운 소스
S__11411480.jpg 당근 라페, 닭가슴살 + 매운 소스
S__11411481.jpg 수박, 복숭아 계란 +매운 소스
S__11411478.jpg 토마토, 커피, 당근 라페, 양배추 계란+ 매운 소스


지금 봐도 좀 웃기네요.

면이 떨어지니까 그때부터 집에 있는 단백질류, 특히 계란에 매운 소스를 뿌려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떤 맛이냐면, 매운 냉면집에 친구 3명 하고 가서 냉면은 안 먹고 친구들 냉면 위에 있는 계란만 쏙쏙 빼먹는 느낌?

계란을 한 입 딱 베어 물면 "우와 냉면! 비냉이다!" 하는데 그다음엔 면이 없네... 시무룩

누가 보면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고루 갖춘 건강식이라고 하겠지만 위를 태우는 듯한 강력한 매운맛에 점심 한 끼를 먹으면 영혼이 털리는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먹어 나아가고 있는데도 허허 아직도 1/4이 남았네요.

너란 양념장 용량도 크기도 하지.


쓸쓸한 재택 점심을 다 먹고 십 분 정도 쉬고 나면 다시 일을 해야 합니다.

재택을 시작한 지 벌써 6개월이 훌쩍 넘었고 같이 먹는 식사, 같이 먹는 한 덩이 면식의 즐거움도 잊은 지 오래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고 많은 사람이 생존을 걱정하는 힘든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작은 것들이 주는 마음의 위안, 소소한 기쁨, 생활의 원동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 시간들 혼자 먹었던 외롭고 매운 점심을 잊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 한 그릇 국수를 같이 먹는 날...

그날에는 두 배는 더 행복을 느껴야지. 그저 그렇게 다짐합니다.



마무리는 신인가수 캡사이신 님의 '매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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